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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Sep 06. 2024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

마더 테레사, ‘나의 기도'

첫 번째 아이.

아라의 이야기


엄마의 두 번째 재혼이었다. 첫 만남에 사업하시는 분이라는 엄마의 소개에 턱을 슬쩍 들어 올리고는 안경 너머로 날 쳐다보던 아저씨는 집도 상가도 여러 개라 했었다. 한 달에 기백은 필요한 생활비도 턱턱 줄 정도는 된다며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처럼 들떠있던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건 아저씨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상가 분양을 받아준다며 외삼촌들과 이모 명의를 빌려갔는데, 상가대신 신용불량자 딱지를 선물했다 했다. 한때나마 존재했던 12첩 반상이 차려져 있던 저녁 식탁은 사라졌고, 집 안에는 숨쉬기 힘든 무거운 공기가 깔렸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들이 무서워 오빠와 함께 tv를 크게 틀어놓고 있던 토요일 저녁이었다. 내 동생들 어쩔 거냐며 악다구니를 쓰며 악귀처럼 손톱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엄마를 피한 아저씨가 주방 서랍에서 식칼을 꺼내는 것을 본 날. 이 재혼도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다.

"이모, 이모부.... 큰일 났어.. 울 엄마 살려줘요. 지금 우리 집으로 와줘요... 제발."

정신없이 눌러댄 전화 끝에 이모와 이모부가 나타나기까지 온 힘으로 아저씨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던 오빠와 얼결에 꺼낸 식칼이지만 휘두를 담력은 없었던 아저씨의 지질함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날 끝난 것은 엄마의 재혼이 아니라 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밤중에 정신없이 달려온 이모와 이모부의 등장으로 육탄전은 휴전을 맞이했다.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며 들여보내진 방 안에서 머물면서 온 정신은 문 밖에 둔 밤이 지나가는 동안, 오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는 우리를 흔들어 깨운 사람은 엄마였다. 지난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손목의 멍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내게 어서 짐을 챙기라고 속삭이는 엄마의 표정은 다급함이 서려있었다. 몇 시인지도 보지 않고, 책가방 안에 옷가지들을 집히는 대로 주섬주섬 넣으며 물었다.

"엄마.. 우리 어디 가는데?"

"일단 짐부터 싸. 얼른. 시간 없어."

"엄마, 엄마... 학교는??? 학교는 어떻게 해?"

"엄마가 연락할게. 일단 가자"

아무 말도 없이 먼저 짐을 다 싼 오빠가 방 문을 열고 나갔다. 그냥 이대로 가면 되는지, 엄마는 남겨두고 가도 괜찮은 건지 무엇부터 어떻게 걱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하는 우리였다. 현관문 앞에 서서 신발을 다 신고도 주저주저하는 나와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어제 너무 진을 빼서 감정은 1도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오빠의 손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었다. 신발도 신지 안고 현관문에 서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히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엄마의 눈은 내내 안방으로 향했다.

"이 돈으로 터미널에 가서 버스 타고, 이모네로 가. 엄마가 곧 따라갈게."

"엄마.. 같이 가. 엄마 혼자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해. 아저씨가 못 가게 하면 어떻게 해."

"아냐, 엄마 금방 따라갈게. 금방 가. 진아, 아라 잘 챙겨서 고모집으로 가서 전화해."

시끄러워지면 안 된다는 말에, 마치 눈알이 빠져나오려 애를 쓰는 듯 온 얼굴이 저릿저릿하도록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목구멍 뒤로 넘어가는 쓴 맛 나게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오빠가 말했다. 아직 해 뜬 지 오래되지 않아 푸르스름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이미 오래되어 반질반질하게 변한 돌바닥 안의 작은 반짝임 들도 빛을 잃은 그날, 그날이 우리가 그 집 앞을 거니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약속을 지켰다. 아니, 지키지 않았다. 아니, 지킨 걸까. 거취도 정해지지 않은 채, 고작 책가방에 들어 있는 옷 몇 개와 신발 하나로 사나흘이 지났을까. 엄마가 나타났다. 우리를 데리고 나가 옷이며 신발을 사주고 다시 이모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는데, 마치 어릴 때 주말이면 이모네 놀러 오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무 일도 없이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빠와 이모부가 한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엄마는 이모와 저녁을 만들고. 나는 사촌들과 함께 오빠가 건드리지 말라는 게임기를 건드려 기어이 오빠의 화를 돋우던 그런 주말.. 말이다. 눈앞의 봉투에 담긴 옷가지들이 그건 추억이고 꿈이라 말해주고 있었지만, 깨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물어보면 어떤 답이 나올지 무서워 말을 건네고 있지 못하는 내 마음과 마찬가지인 걸까. 하지만 물어야 했다.

"엄마.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조금만... 있어 여기. 학교에는 엄마가 이야기해 두었어."

".... 여기?? 엄마, 곧 방학인데?.... 오빠!!!!"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오빠가 일어나 나가버렸다. 아무 표정 없이, 그렇게 나가버리는 오빠를 바라보던 엄마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좀.. 있어. 여기"

그리고 엄마는, 얼마 있지도 않은 설거지를 밤새도록 하고 또 하며 이모네 싱크대 앞에 서있었다. 마치, 그릇을 닦고 또 닦으면 엄마의 선택들이 지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엄마의 '좀'이 내가 가늠하기 어려운 단위라는 것을 꽤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두 주를 내리 학교를 가지 못한 채 불안과 무료함과 전투를 벌이던 우리는, 그 뒤 다시 외삼촌 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두어 번을 다시 외삼촌과 이모네를 오가다, 결국 이모네 방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마치 오랜 친적집에 명절에 인사 오는 사람처럼 우리가 머무는 곳에 잠시 얼굴을 비추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엄마가 다녀가고 나면 한동안 잠이 쏟아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눈을 떠도 졸리고, 감아도 졸리고, 배도 고프지 않고 누워만 있고 싶었던 시간 속에 이대로 눈을 감고 깊고 깊게 잠이 들어 눈을 뜨지 않아도 좋겠다 생각했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눈꺼풀도 내 의지를 벗어나니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내가 눈을 뜨지 않으면 엄마는 달려올까, 혹 어른이 되어 힘이 생기면 이 모든 것이 달라질까 궁금했다. 그 이후로도 세 번 즈음 잠자는 곳을 옮기고, 한 켤레뿐이었던 신발이 6개로 늘어날 즈음, 나는 엄마가 우리 곁으로 오지 않으리란 것과 그 아저씨를 떠나지 않을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오빠는 다시 학교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자리를 알아본다더니 어느 날부터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지낸다며 간간히 나에게 용돈을 부쳐주며 잘 지내고 있으라 말하는 오빠에게 나도 오빠랑 같이 지내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자리 좀 잡고. 아라 넌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래지 않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이모집 근처의 중학교로 전학을 하고, 반년을 보내는 동안 이모와 이모부는 두어 번을 더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뛰어나갔다. 내가 어딘가 좋지 않은 예감에 무슨 일이냐 물어도, 그저 동생들하고 집에 잠시 있으라며 나가던 이모의 얼굴에 어린 불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해가 바뀌고 그토록 바라는 어른으로 한 걸음 가까이 가는 동안, 큰 가방을 손에 든 엄마를 다시 만났다. 엄마는 이젠 돌아가지 않겠다 했다.


그 뒤 우리 셋은 얼마간 함께 살았다. 정신없는 시장통 골목길에 있는 방 2개짜리 빌라에서 지내는 동안 엄마는 끝없이 어디선가 무언가를 가져왔다. 옆집에서, 앞집에서, 옆 아파트 단지에서 누가 새 물건을 내놓았다며 가져오는 것들은 서랍장인 날도 있었고, 선반인 날도, 의자인 날도 있었다. 마치, 어느 구석이라도 허전한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크지도 않은 공간을 물건들로 꽉꽉 채워갔다. 하루는, 나도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 알고 있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글이 적힌 액자가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한쪽 귀퉁이가 깨져있는 액자를 들어 올리며 "벽에다 걸어두면 예쁠 것 같지 않아? 이쪽 깨진 데는 안보이잖아."라고 말하며 엄마는 웃었다.  


깨진 모퉁이는 엄마 말대로 벽에 걸어보니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깨진 액자는 언젠가는 완전히 깨져버릴 텐데. 다시 온전해질 수 없는데. 언젠가 산산조각 나버릴 텐데. 엄마는 모르는 걸까.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


하지만. 난 사랑받고 싶은걸. 사랑받고 싶었는걸. 사랑했는걸. 기다렸는걸.

액자의 깨진 모퉁이를 만지작거리니 날카로운 플라스틱 모서리가 손끝을 찔렀다.  


"....... 너무 아프잖아."

"뭐?"

"이거, 너무 아프잖아."

"뭐 어디 다쳤어?.....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디.."

"너무 아프다고! 이렇게 아프다고!! 눈물 나게 아프다고!!!"

짐승처럼 통곡하는 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서있는 엄마의 등 뒤로, 수명이 다해가는 주방 전구가 정신없이 깜빡였다.


"얘는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난리야, 어디 봐봐."

그 순간, 깜빡깜빡.. 그리고 팟. 점멸하던 전구가 영원히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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