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바람은 몇 살이야'
“여러분의 자녀가 먼저 좋은 친구 되어주고 좋은 학생이 되어주면, 어느새인가 자녀분들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해질 것입니다…. “
오랜만의 학교, 강당이라는 곳에 앉아 ‘훈화 말씀’ 같은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 입학식날이 어제 같은데, 내 아이의 입학식에 와있다니. 그런데 가만히 귓가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인 교장 선생님이라는 분은,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고작해야.. 큰 사촌형 정도 되었을까. 아아… 아니지, 고작이라니. 내 나이를 또 잊었다. 교장 선생님이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든 것이리라.
“…. 앞으로 겪게 될 다양한 여러 가지 일들에서 남의 자녀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을 가져주시고, 내 아이에게는 좀 더 엄격한 잣대의 가준을 세워서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
운동장으로 가득한 수백 명의 아이들 사이에 하나였던 내 가슴에는, 흰색 손수건과 이름표가 함께 달려있었다. 등에 메고 있는 배낭도 어색하고, 엄마 곁이 아닌 친구들과 섞여서 한 줄로 나란히 서 있어야 하는 경직된 분위기도 어색해 자꾸만 눈으로 뒤에 있는 어른들 중 엄마와 아빠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자꾸만 눈물이 나려는 찰나, 엄마가 나를 먼저 보았는지, 긴 팔로 크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 옆에 누나의 동그랗고 빨간 모자 끄트머리가 보였다. 한 발 뒤에 서있던 아빠는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그날만은 뭐가 그리 흐뭇한지 온 얼굴 가득 웃음이었다.
".... 학교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연습해 보는 작은 사회입니다. 이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크고 작은 관계에서 실망하기도 할 것이고 상처를 받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입학식이 끝난 뒤, 학교 근처 백화점 지하 1층의 돈가스 집으로 모두 함께 걸어갔었다. 학교와 함께 벽을 나누어 쓰고 있던 백화점의 지하 식당가에는 세상 모든 음식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이 돈가스였다. 매일 먹고 싶다 말했지만 아마도 빠듯한 살림 때문이었는지, 엄마는 자주 사주시는 법이 없었다. 태권도장에서 띠 색깔이 변할 때나 한 번씩 맛볼 수 있던 특식이라 해야 할까. 그러니, 그 집에서 파는 돈가스를 온 가족이 함께 가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바삭한 튀김옷이 달콤 짭짤한 소스와 만나 완벽히 눅진해진 돈가스를 기다리며, 포크와 나이프를 먼저 들고 의자에 앉아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기다리던 설렘이 운동장에서 들었던 교장선생님의 말씀보다 더 선명히 기억난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모두의 축하받는 시작이라는 느낌이 각인된 것도 그 돈가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이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크고 작은 관계에서 실망하기도 할 것이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울기도 하겠죠. 자기 뜻을 받아주지 않는 학교와 선생님과 친구들 때문에 많이 속상해하기도 하며 때로 쓰러지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모든 순간을 부모로서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부디. 아이들이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입학한 학교를, 3년을 매일같이 누나와 함께 등교하고 하교했다. 첫 담임 선생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리고 짧은 다리에게는 길고 길게 느껴졌던 등하굣길 내내 꼭 잡고 돌아온 누나의 손과,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 엄마와 셋이 집으로 걸어오며 우리 뒤로 남는 발자국을 구경한 어떤 날들을 그림처럼 기억한다. 그때는 학교를 오가는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매일들이, 매일 아침상을 먹으며 보는 TV 속의 뽀뽀뽀처럼 변함없이 그저 계속될 이야기인 줄 알았다.
"...... 부모님들께서도 부모가 되는 일이 초보인지라, 서툴고 모르는 것이 굉장히 많으실 수 있습니다. 서툴고 잘 모른다는 사실을 부모님들께서는 인지해주시고 그래도 나보다는 조금 더 교육 전문가인 선생님과 학교를 믿고 의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연습해 보는 작은 사회입니다...."
‘살아갈 세상을 연습하는 사회라..’
그렇다면 내가 나의 연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회를 마주해야 했던 것은.. 뭐라 설명해야 할까.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갑작스러운 끝이자 시작이었다. 4학년 여름 방학을 맞아 식당을 운영한 이래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떠난 여름휴가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전복된 차와 함께 엄마와 아빠를 잃었다. 많이 다쳤던 누나와 누나 덕에 큰 부상 없이 살아남은 나였지만 살아남은 나와 누나. 우리 둘을 함께 돌보아줄 만큼 넉넉한 형편의 친척들이 없었기에, 우리가 함께 하는 등굣길은 더 이상 우리의 삶에 남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있었던 두 번의 입학식에 함께한 누나 역시, 나의 마지막 입학은 함께하지 못했다.
"... 아이들이 다양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돼주십시오. 그리고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지도 부탁드립니다."
강당 밖 창으로 어느새 굵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송이로 뭉쳐지지 않는 가는소금 같은 눈가루가 아침부터 내리더니, 온통 하얗게 덮어버리고 말겠다고 조용히 외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아내가 무릎을 살짝 친다.
-여보, 무슨 생각을 그렇게 멍하니 하고 있어.
-아아, 아냐. 그냥. 옛날 생각.
-이제 이제 애들 다 반으로 이동한대. 우리도 같이 가자.
교장의 이야기가 끝난 뒤, 생애 첫 교실로 담임 선생님을 따라서 이동해야 하는 아이의 작고 까만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그날의 나처럼,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나의 아이가 저기 있다. 그날의 나처럼 아내의 손짓으로, 나의 웃음으로 마음을 놓는 아이가 나를 본다. 아침부터 엄마가 열심히 다려놓은 셔츠를 입고 긴장해 한껏 솟아있는 작은 어깨로, 옆에 선 친구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아이가 저 앞에 서있다.
"자. 1학년 4반 친구들 다 자리에 앉았나요? 새로운 시작을 환영합니다. 저는 앞으로 여러분의 담임 선생님이 될 김세나입니다. 우리 인사할까요?'
이제야. 그날. 아빠의 얼굴에 피었던 웃음의 이유를 알 것 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이 느낌, 나의 손으로 키워낸 작은 이를 처음으로 타인들 속에 세워두고 그 시작을 지켜보는 이 마음이었으리라. 아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곁에 선 아내의 웃음을 본다. 교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이 시작의 흥분과 소음을 덮는다. 과거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새하얀 빈 종이 같은 오늘. 아이의 시작에 늘 뒤에서 오래도록 손 흔들어주리라 마음에 적는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무사하였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아이의 시작을 오래도록 응원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