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부터 켜지는 붉은 신호등과 함께.
민화에는 ‘바림’이라는 기법이 있다.
먼저 바탕이 될 색을 고르게 깔고, 그 위에 조금 더 진한 색을 얹는다. 그리고 물기를 머금은 깨끗한 붓으로 두 색 사이의 경계를 살살 풀어낸다. 그러면 뚜렷했던 선은 사라지고, 평면이던 화면에는 깊이가 생긴다.
바림의 독특함은, 이것이 완전히 지우는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도 아니라는데 있다.
이미 깔려 있는 색이 있을 때에만, 그 위에 얹힌 농담이 의미를 갖는다. 실수를 했더라도 연해지게 만들 수는 있지만, 없던 일처럼 덮을 수는 없다. 바림은 늘 그렇게, 남아 있는 것들과 함께 드러난다.
수채화가 물의 농도로 깊이를 만들고, 유화나 아크릴화가 물감의 두께로 깊이를 만든다면, 민화의 바림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조금 전의 붓질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방금 찍어 올린 색이 물과 함께 스며들며 흐려지기도 한다. 그 애매한 경계가, 이상하게도 그림을 가장 그럴듯하게 만든다. 마치 이미 지난 일들은 되돌이킬 수 없지만, 또 그 안에서 그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우리처럼.
민화를 그리던 어느 날, 빨간 물감으로 찍어 내려간 맨드라미 꽃봉오리가 문득 내 이마에 핀 붉은 반점처럼 보였다. 잠시 손에 힘이 더해진 순간, 생각보다 큰 점이 찍혀버렸다.
아차…
이미 한 번 그어버린 붓질이라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새 붓으로 물을 얹고 여러 번 닦아내자 처음보다는 조금 연해졌다. 완전히 지울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두고 볼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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