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린 아이와, 감기에 걸려서는 안되는 나
39.6도.
주말 내내 몸이 좀 처진다며 누워있던 아이가,
저녁을 먹고 나서 체온계를 잰 뒤 놀란 토끼눈이 되어서 내게 보여준 수치였다.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이고, 조금 있어보자고 했지만... 약을 먹고 삼십 분 즈음 후.
아주 약간 떨어지나 했던 열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고, 기존에 먹던 이부프로펜으로는 열을 잡을 수 없어 교차 투여가 가능한 해열제까지 동원하느라 밤 10시를 5분 남겨두고 약국으로 달렸다.
그렇게 공수해 온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내 몸에도 알람이 울렸다.
이미, 하루의 끝에 다 달아 내가 가진 배터리도 0에 수렴하고 있을 즈음이었지만, 아이의 체온이 좀 떨어지고 잠들 수 있는 상황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서 한걸음 떨어져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며 기다리던 중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들어가서 자."
"아... 응. 열 떨어졌나 보자."
"떨어졌을 거야. 아까보다 많이 덜해."
하지만 많이 덜하다고 한 아이의 체온은 여전히 38도 이상에 머물고 있었다.
38.3
조금 떨어진 체온을 보며, 일단 잠을 자보겠다는 아이는 마스크를 끼고 세 걸음즈음 떨어져 나에게 외쳤다.
"엄마! 굿 나이트 인사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될 것 같아. 엄마 걸리면 안 되니까."
엄마는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바이러스에 취약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아이는 열이 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가급적 나와의 접촉을 피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자기를 간호해 주어야 할 엄마이기도 하지만, 감기를 옮겨 엄마인 내가 아프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두 배 세배 더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아이.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엄마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면 자기가 너무 속상할 것 같다 말하는 아이.
그래서 아픈 와중에도 내내 의연하게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켜켜이 쌓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30분.
아이가 어떤지 눈이 뜨이자마자 확인하러 갔는데 밤 새 좀 나아졌으리라는 희망이 무색하게, 열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가 39.7-8을 오가며 더 맹렬하게 그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최근에 이렇게 아팠던 적이 없는데...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그냥 감기가 아닌 듯하네...'
열 때 문인지, 잠 때문인지 비몽사몽인 아이를 흔들어 깨워 해열제를 먹이면서, 주말에 조금 몸이 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먼저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던 스스로를 참 많이 자책했다. 조금 더 먼저 데려갔으면, 이렇게 밤새 아프지 않았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자책을 하면서 또 내 몸을 살폈다. 어제보다 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더 쑤시거나 아픈 곳은 없는지 체크하며 그저 계절성일 바이러스에도 한없이 몸을 사려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자에게 감기란, 이미 약으로 낮게 유지하고 있는 면역체계로 인해 자주 맞이하게 되는 불편한 손님이지만, 동시에 감기로 인해 흔들리는 면역체계는 자가면역질환 자체를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걸리기 전에도 걱정이요 걸린 후에도 걱정스러운 질병이 되는 셈.
아이가 감기나 수족구 같은 유행성 질병으로 고생중일 때, 감염이 걱정되어 쉽게 안아주거나 손으로 쓸어주기 주저되는 마음. '제가 걸려도 좋으니 아이만 낳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던 날들과 달리, '제가 걸리면 아이 곁을 오래 비우게 되니 제발 걸리지 않고 넘어가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 날들은, 부모로의 자아가 병이라는 무게에 옅어진 것 같기 때문. 돌보아야 할 가족이-특히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도 돌봄의 대상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나의 안위도 같이 그 선상에 두어야 할 때 스스로가 한없이 이기적인 부모가 된 것 같은 마음에 자책하며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아이를 살핀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고열로 얼굴에 열꽃이 핀 아이가 잠옷 차림으로 "엄마. 너무 사랑하는데, 안아줄 수가 없어!"라며 웃는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척, 기운이 없지만 예전처럼 엄마에게 매달려 징징 거릴 수 없는 아이는 이제 거리를 두고 앓고 지나가는 법을 배우려는 것일까. 그런 아이 곁에서, 이렇게 서서히 또 다른 삶의 방식을 하나 더 얻었다 생각하며 첫겨울을 지난다.
[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자의 독감에 대한 의사 선생님의 가이드 공유]
- 병원에서 독감 환자와 독감환자의 밀접 접촉자에게 안내하는 사항에 따르면,
보통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독감 판정을 받은 아이의 보호자에게도 예방적인 차원에서 독감 수액이나 약물 치료를 제안한다. 하지만, 자가면역질환자의 경우, 발열이나 기침 등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방차원의 치료를 진행했을 때, 예방과 증상의 완화 모두 크게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치료가 까다롭기에, 주치의와의 면밀한 상담이 필요.
- 독감의 경우, 바이러스성 질환이므로 증상이 발현된 시점으로부터 48시간 내의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 루푸스 환자 중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있는 경우, 스테로 이로 인해 발열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으니 단순히 발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신체컨디션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가족들 중,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한 가족 구성원이 감기증상을 보일 경우, 병원을 내원하여 테스트를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조치가 가능한 것은 물론, 가족 내 자가면역질환자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