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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Dec 16. 2019

책벌레를 키우는 도시,뉴욕.

아이들 생활 곳곳에 스며든 '책'을 만나다

아이가 이 곳 (미국 뉴욕) 학교의 유치부 과정에 입학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가 쓸 줄 아는 몇 가지 글씨들을 집에 와서 여러 번 반복해서 쓰기 시작하더니, 학교의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등... [책]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지는 시기가 도래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학교에서 진행하길래 아이의 관심이 이렇게 급속히 높아진 것인가 들여다보았더니 다양한 방식의 여러 활동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에 클래스별로 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도서관에 가서 좋아하는 책을 빌려서 교실로 가져와 읽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활동. 그리고 이와 함께 저학년과 고학년의 학생들을 1:1 매칭 해주는 [Book Buddy] 프로그램이 더해지고 있었다. 이 북버디라는 활동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만나 고학년인 언니 오빠가 유치원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글씨를 가르쳐주는 활동을 지칭하는데 이를 통해서 큰 아이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서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고, 어린아이들은 어른이 아닌 또래의 언니/오빠가 읽어주는 시간을 통해 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키워가고 있었다.


매일 오늘은 무슨 책을 읽었고, 오늘은 북버디랑 무엇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친구가 먼저 읽기 시작해서 못 보고 와서 슬펐다... 와 같은 책에 관련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들으며 아이 손을 잡고 돌아오는 하굣길이 자연스러워지는 만큼, 아이가 '책'이라는 것에 대해서 가지는 호감을 키워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를 통해 아이가 글씨를 통해서 소통할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아이의 생각상자 속에 본격적으로 글과 그림과 같은 재료들을 더 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창의력이라는 것이.. 아닌 비어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자라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자극은 기폭제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by khamkhor

음악, 미술, 신체활동과 같은 것들이 글씨를 읽기 전에 필요한 자극이었다면, 활자를 접한 아이들에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책”. 그래서 집에도 다양한 책을 구비하려 애쓰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 선정이나 양으로는... 도서관을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도 사실인데 그렇다고 끝도 없이 책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뉴욕, 맨해튼에는 다양한 형태로 아이들의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공간과 계기들이 가득했다. 

공립 도서관 내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들

미국 내에서도 국회도서관 다음으로 가장 큰 공공 도서관인 '뉴욕 공립 도서관 New York Public Library (NYPL)'은 소유하고 있는 장서의 양- 무려 5천3백만 권-은 물론, 그 규모로 만도 전 세계 3위일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뉴욕시 내에만도 총 92개의 지점이 있고 그중 39개의 지점이 맨해튼 내에 위치하고 있다. (뉴욕 시 내에서도 브루클린과 퀸즈 지역의 경우, 자체적으로 별도의 공공도서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브라이언트 파크의 공립도서관의 상징 사자상도 목에 리스를 둘렀다:)

대부분의 도서관 지점들이 규모의 크고 작고에 상관없이 대부분 공간 내 아이들을 위한 서가와 테이블 등을 모두 마련해 두고 있는데, 뉴욕의 대표 공립도서관인 42번가 브라이언트 파크에 위치한 중앙 도서관의 Children's center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접근이 쉬운 1층 입구 근처에 큰 방을 할애하여 아이들을 위한 서가를 만들었는데,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책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한 켠에는 유모차를 대는 곳까지 마련해 두어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부담 없이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42번가 브라이언트 파크의 뉴욕 공립도서관 Children’s Center/ 위니 더 푸우 작가에게 영감을 준 인형들이 실제 전시되어 있기도 한다

중앙 도서관처럼 대규모가 아니라, 공간이 한정적인 소규모의 지점일지라도 조용히 독서 중인 어른의 공간과 조금 떨어진 반대편이나 다소간의 소음으로부터 너그러운 입구 쪽에 아이들의 공간을 마련해 두는 것은 잊지 않는다. 로워 맨해튼의 배터리 파크 시티에 위치한 공립 도서관 지점 안을 보면, 정확히 전체 공간의 중심부에 reception이 자리하고 우측 편의 모든 공간을 아이들을 위한 서가로 활용하고 있었다. 매트가 깔려 있는 넓은 곳에서는 스토리 텔링 이라던지, 유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각종 교실도 진행되기 때문에 단순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책도 볼 수 있는 놀이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까지 비치되어 있는 도서관

이와 같이 큰 곳이던 작은 곳이던,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내의 공간에는 모두 아이들이 아이들이 마음껏 앉거나 서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카펫과 작은 책상은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다. 또한, 책의 표지를 적극적으로 노출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진열 방식을 대부분 택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색칠공부도 하고 놀 수 있는 테이블 옆에는. 벤치역할도 대시하는 책꽂이가 자리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그래서 실제 학교 내에 도서관 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소형 유치원이나 유아원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의 공립 도서관으로 적어도 한 달에 1번 이상은 소풍을 가서 다 같이 책을 빌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가지고 놀다 돌아오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이 놀러 가고 소풍 가는 곳이... 도서관이라니!
공간을 나누어 다양한 경험을 선사해요.
퀸즈 공립도서관

뉴욕 도서관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퀸즈 공립 도서관은, 정해진 도서관 내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나누고 운영 가능한지, 그리고 그에 따라 도서관 내에서의 경험의 폭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곳은 단순히 책을 보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놀이와 학습, 체험의 공간으로 도서관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도서관의 공간은 크게 모두를 위한 일반 서가, 아이들을 위한 서가( Discovery!), 10대 청소년을 위한 서가(Teens)로 분리되어 있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Discovery! 의 입구
3-12세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Discovery!"

 공간의 입구부터 이 곳이 아이들을 위해서 기획되었다는 것을 컬러풀한 색감과 이미지들로 알려준다. 어른들의 공간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면, 아이들을 위한 이 공간은 채광이 좋은 쪽에 위치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더 밝고 경쾌한 느낌인 것은 물론,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으로 아이들이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도서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활동과 발생되는 소음의 정도에 따라 공간을 구성했다는 점! 입구 쪽에는 어린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동화책을 포함한 Fiction류, 가장 호기심 있어할 만한 분야인 Science 관련 책들을 진열하고, 서가 사이사이 아이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다양한 과학 교구들과 이미지 등을 혼합하여 진열하고 있었다. 이런 공간들은 입구 쪽에 배치하여 아이들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체험하면서 나는 발소리나 소음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반면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공간은 입구를 지나 있는 책장 뒤편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과 함께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안쪽의 조용한 독서를 위한 공간. 보호자인 어른용 의자(노란색)과 아이들을 위한 의자(주황색)이 낮은 테이블에 함께 준비되어 있다

또한, 책을 읽을 수 없고 보호자가 책을 읽어주어야만 하는 연령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도서관의 제일 안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곳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놀이방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워낙 다른 공간과는 분리되어 있다 보니 이 곳에서는 아이가 좀 울거나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줘도 주변의 방해가 되지는 않을 환경이었다.


이렇게, 1층이 체험공간 + 영유아를 위한 공간과 더불어 픽션과 같은 책들을 주로 비치해 두었다면, 좀 더 고학년들이 읽을만한 전기물 류의 책이나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공간은 아예 2층에 비치하고 있었다. 가만히 되돌이켜 보니, 이 역시 이러한 류의 책과 시설을 주로 이용할 연령에게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정도는 크게 무리가 아니라는 점과 다소 부산한 느낌의 1층과 분리해서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공간 운영이었다. 

10대들을 위한 도서관인 Teens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학업 관련 각종 정보지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안내 부스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 날의 강좌나 필요한 정보를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Non-fiction 논픽션 코너가 학생들을 맞이한다. 입구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조용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 바로 이 곳. 실질적으로 학업 등에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을만한 각종 자료가 비치되어 있는 이 공간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각자의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교실과 같은 공간이 하나, 그리고 Quiet Room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 하나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이 두 방이 위치한 입구 쪽에서는 다들 굉장히 각자 조용히 독서와 사색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 입구쪽 각종 프로그램 안내/ 2. 논픽션 서가 / 3. 콰이어트룸

이 두 공간 사이의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 편에 각종 영상물을 시청할 수 있는 작고 고즈넉한 공간이 있었다. 앞쪽의 공간이 숨죽여 무언가에 집중하는 곳이었다면, 이 곳에서는 영화나 만화 등을 보며 자유로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개방된 곳에 의자를 두고 둘러앉아 TV를 시청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fiction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들이 청소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가지 눈에 띄게 아이들만을 위한 서가인 Discovery와 달랐던 점은 바로 비치되어 있던 의자와 테이블들이었다. 개성에 대한 인정 못지않게 또래 문화도 중요시하는 연령에 대한 이해가 기초로 , 같은 도서관의 개방된 공간 내에도 같이 또는 따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의자와 테이블들이 준비되어 있던 것. 


같은 테이블에서도 서로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파티션이 부착된 형태의 테이블과, 아예 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의자. 그리고 토론도 해 볼 수 있는 테이블까지 각양각색의 가구들이 학생들이 이 곳에서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조용히 유도하고 있었다.


상업 공간인 서점 내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들

도서관이 끝인가...라고 이야기하자면, 책을 다루는 상업적인 공간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이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다. 반스 앤 노블 같은 체인형태의 복합 서점 중, 인근에 유소아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굉장히 넓게 마련해두고 이 곳에서 다양한 스토리 타임과 이벤트를 함께 진행한다. 또한, 판매용으로 진열되어 있는 책이라도 아이들이 얼마든지 가져다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언제 가도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북적북적한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반스앤 노블의 키즈 섹션 : 아주 넓은 공간에 


반스 앤 노블이 미국 전역에 지점이 있는 서점의 형태를 보여준다면, 뉴욕의 소규모 독립서점 중에 아동서적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 가장 대표적인 아동서적 전문점 "Books of wonders"는, 아이들 만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 형식의 스토리 타임은 물론, 이미 절판된 오래된 아동서적의 소장본이나 아동서적 전문 일러스트레이트나 화집의 전시와 판매를 겸하는 등 아동 서적 관련 전반적인 콘텐츠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동서적 전문점 북스오브 원더!

미국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주로 이곳에 살며 아이를 키우는 분들의 SNS를 열심히 살피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한국에서 자주 못 보았던 포스팅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어딜 가나 책을 손에 서 놓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포스팅이 각 부모들마다 한두 개씩을 꼭 있었던 것. 굳이 '책벌레'라 칭하지 않아도 여행지에 가서도 식당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걸어가는 길에도 책을 들고 걸어가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이 곳 부모들의 포스팅을 보며 '마침 내가 팔로우하는 이 사람들의 아이들은 책을 참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살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들이 곳곳에 매일 존재하고 있었다. 테마형 특이한 동화책 가게부터... 근거리에 있는 공공도서관의 지점들과,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학교 내 라이브러리, 공원에 비치되어 있는 동화책들까지.

브라이언트 파크에 비치되어 있는 책들과 작은 테이블

그렇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우리도 모르게 많은 생활의 접점 속에서 책을 마주하게 되는 날들이 늘어나며 아이들이 아주 조금씩 서서히 책과 함께 하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mommy poppins 인스타그램 - 뉴욕시 내의 키즈카페에 대한 포스팅 중, '아이들을 위한 책'이 가득한 공간에 대한 소개. 키즈카페와 책이라니?!

세계 0.2%의 인구로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2%, 아이비리그 졸업생의 30%를 배출하는 유대인 교육의 핵심도 독서와 토론이다. 미국은 '국립 읽기 위원회(NRP: National Reading Panel)'를 두고 학생들의 읽기능력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또 다른 교육 강국인 일본은 핀란드의 독서기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 모든 교육적 노력의 핵심은 딱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힐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길러낼 수 있는가.

- 공부머리 독서법/ 최승필-


정보의 바다도 아닌 정보의 '우주'즈음 되는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어쩌면, 거꾸로 '잘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그 어떤 시대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할 수 있다. 넘쳐나는 수 많은 정보 중, 정보의 중요성을 판단하고 이를 빠른 시간에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능력은 아무리 최첨단 기술의 스마트기기라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그래서 한국의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가 아닌 제3의 공간에서도 좀 더 책을 자주 접하고, 이를 통해서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게 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참고 사이트

https://www.queenslibrary.org

https://booksofwon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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