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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Sep 27. 2021

반려 3

유원지 惟夗地






 멋지고 매혹적인 미소였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같이 물을 새로 뿌려주다 보면 결국은 처음과 다른 물이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머릿속의 질문을 꺼내어 그의 미소를 망칠 순 없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눈빛과 끄덕임을 통해 그에게 전달했고 남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순간을 간절히 기다려오기라도 한 듯 쉴 새 없이 줄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반년 전쯤이었나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었어요."


"제가 지금 서른 중반의 나이인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해보니 내가 삼십몇 년 동안 뭘 하며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행복함, 즐거움, 기쁨, 재미... 이런 감정들을 진심으로 느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어요."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재미있었던 기억의 마지막은 십 대 때 아무 걱정 없이 친구들과 이리저리 쏘다니던 시절에 멈춰있었죠."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산 대가로 난 지금 무엇들을 얻었는가 돌이켜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 빚과 노쇠해 내가 아니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어머니, 주름과 관절통과 나이, 그뿐이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좀 있었는데 당시의 제 벌이만으로는 매달 빚에 대한 이자를 갚아 나가는 것도 벅찼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유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매 순간 고민을 했죠."


"제가요, 어릴 땐 참 잘하는 일이 많았었거든요, 사실 뭐든 배우기만 하면 곧잘 평균 이상 해냈었죠, 좋아하는 것들도 어찌나 많았었는지... 음악, 그림, 요리, 광고, 디자인... 그런데 그 많은 것들 중 어느 것도 직업으로 갖지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어쩌다 그랬을까요?"


"생각을 집중해보면 이유를 알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 싫었습니다. 끔찍하게 싫었어요. 그 이유를 떠올린 순간 삶이 참 비루하게 느껴질 것 같더라고요."


"그런 상황들 속에서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요. 그때 제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은 회사의 옥상 주차장뿐이었어요. 집은 절대로 안정을 찾을 수 없었죠, 지금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집인데... 층간소음이 엄청난 집이었거든요 위층에선 애들이 뛰고 옆집과 화장실이 연결되어 있어서 오줌줄기가 물에 튀기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이를 닦다가 우웩 하는 헛구역질 소리까지 다 들렸고요. 아랫집에는 젊은 친구들이 살았는데 가끔 지인들을 불러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이면 새벽 4시 5시까지 떠드는 소리가 귀 옆에서 떠드는 것 같이 크게 들렸었어요. 내가 조용하고 싶을 때 조용할 수 없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나는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는 공간도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정말 미쳐버릴 것 같더라고요."


"정신적으로 최악의 상태까지 몰려 있던 거죠."


"그날도 회사의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오늘처럼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에 의지하고 싶다. 아무런 대가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한 명만 세상에 있어도 너무나 힘이 될 것 같다.라고요."


"죽고 싶진 않으셨나요?"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의 이야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질문을 했다. 나의 갑작스럽고 자극적인 질문에도 그는 놀라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그 멋진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니요, 지금 같은 삶을 살기 싫었던 거지 죽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당연히 살고 싶죠, 잘 살고 싶은 게 문제였지만."


"여하튼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는데 앞에서 찰박하는 소리와 아이씨 하는 어떤 목소리에 놀라 쳐다봤어요."


"어떤 남자 둘이 지나가다가 물웅덩이를 밟아 신발이 젖었다며 불평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물웅덩이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어요. 아무런 존재의 이유가 없었죠. 존재함으로써 단 한 개의 좋은 점도 없는 존재였어요."


"있어봐야 모기나 길러낼 뿐, 더럽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앞으로 남은 운명이라고는 천천히 썩어가다가 어느새 메말라 버릴 그런 존재였다고요."


"근데 물웅덩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그냥 비가 내렸고 이곳에 떨어졌고, 그곳이 움푹했고, 그래서 고였을 뿐이죠."


"아무도, 정말 아무도 사랑할 일이 없는 존재.”


물웅덩이를 바라보느라 겨우  입정도 피운 담배는 어느새 길고 위태로운 재로 변해 손가락 끝에 걸려있었습니다. 저는 담배를 버리고 물웅덩이 앞에 다가가 섰어요. 그리곤 내려다봤죠."


"물 웅덩이는 역시나 더러웠습니다. 색깔은 뿌옇게 탁했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검은 알갱이들이 그 속에 가라앉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죠. 그 더럽고 탁한 물에 제 얼굴이 비쳤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하늘에서 아름답게 불타던 노을과 구름들까지도."


"그 순간 저는 망설임 없이 사무실로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고 종이컵 하나를 뽑아 들고 다시 올라왔어요. 그리곤 그 물 웅덩이에서 종이컵만큼의 물을 덜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종이컵에 담겼던 물이 지금 보고 계시는 제 반려 물이에요."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몸을 부풀렸다가 흐음 하고 코로 길게 내뱉었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내 머쓱하게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었네요... 그래서 왜 이 물을 애지중지 관리하느냐 물으신다면... 답은 그냥입니다.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그 이후 나는 남자와 몇 마디를 더 나누었으나 도통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남자가 한 이야기가, 남자 뒤로 보이는 작은 창 속의, 그리고 남자가 처음 바라본 물웅덩이의 비쳤을, 하늘들 만큼이나 아름답다고 느꼈고, 나는 처음으로 느껴본 그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혼란스럽고도 황홀한 어떤 세계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섬주섬 그의 집을 나설 때 그가 말했다.


"그래서 제 이야기가 무슨 글 같은 것으로 쓰이는 건가요? 인터뷰? 에세이? 소설?"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네 아마도요."


남자는 말했다. "멋지네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어느새 어두워진 밤길을 지나 도시를 벗어났고 교외의 숲으로 향했다. 숲은 사방이 캄캄한 어둠뿐이었으나 은은한 희고 검푸른 빛을 내는 달빛은 길을 내어줄 만큼 충분히 밝았다. 풀들을 바스락바스락 밟고 스쳐가며 지나 비행선으로 돌아왔다.


"어 잘 다녀왔어? 표본은?"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동료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구하긴 했는데 진행 중인 실험에 쓸 표본은 아니고 다른데 쓸 거야."


"야 부장님이 인간 불행 저항도 실험 당장 이번 주 안으로 확인해야 된다고 노발대발인데 구해온 거라도 여기에 그냥 써."


"안돼 안돼 이 표본 지난 실험 있지? AAA-048, 그거에 넣어줘."


"AAA-0... 행복 한계도? 이건 실험대상 지금도 넘쳐서 필요 없는데? 굳이 왜 이 인간을 이 실험에 넣어야 되는데?"


"그냥, 이유는 없어."


동료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


나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금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그러고 싶거든."




Song. 읽히지 않는 책 - 곽푸른하늘




[반려] 끝

유원지 惟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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