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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Sep 10. 2021

반려 2

유원지 惟夗地

Song. All I've ever known - Bahamas










 지하철에서 내린 그는 적당히 높고 큰 건물들과 있을 건 다 있지만 그 모습들이 적당히 구린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을 걸었다. 불콰한 얼굴로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려 내지르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혹시나 컵 안의 물을 쏟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거리를 벗어난 그는 가로등이 의미가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차있는 빌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를 따라 걷고 있는데 이크, 너무 어두워 개똥을 보지 못하고 밟을 뻔했다. 인간이 개와 반려하게 되는 순간, 싸는 건 개의 몫이어도 싼 걸 치우는 것은 인간의 몫으로 자동 계약이 이루어진다. 그럼 이건 개똥이 아니라 인간의 똥인 걸까... 따위의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를 따랐다.


 그는 102동 앞에 도착해 우편함을 잠시 살핀 뒤 안으로 흘러들어 가 계단을 올랐다. 이런,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4층짜리 건물이라니. 너무 오래 걸어서 그런지 시큰거리는 무릎을 손으로 밀어내 가며 그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301호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치는 그의 뒤에 서자 그는 나를 뒤돌아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저 이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하며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굳이 거짓말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내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한 속임수가 뭔지 알 수는 없지만요"


"뭐가 궁금하신가요? 들어오세요, 당신이 도둑이라면 이 집엔 훔칠 것이 없고, 당신이 살인자라면 굳이 출근길부터 나를 따라 올 이유가 없었겠죠 그렇다면 남은 건 목적 불명의 손님뿐이니 문전박대하진 않겠습니다 들어오세요" 그는 타인이 자신에게 던지는 궁금함에 대해 꽤나 익숙한 듯 보였고 그가 낯선 나를 반갑게 들이며 짓는 표정에서 고독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 남자는 뭔가 달랐다. 내가 찾는 표본에 딱일지도 모를 인간이었다. 그는 부엌으로 곧장 향해 싱크대 앞 작은 화분들이 올려져 있는 선반에 컵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향해 손을 씻고 어색하게 거실과 부엌 사이 그 어디쯤에 표류하고 있는 나를 식탁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으로 청했다.


"아무래도 물에 대한 궁금증이겠죠?" 그가 의자를 땅에 끌리는 소리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빼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일어났다. 남자의 부엌 창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건물들의 머리가 들쭉날쭉 나지막이 보였고 그 위로 새빨갛게 타오르며 내려가는 태양과 검푸르게 식어가는 하늘이 만나 구름들을 묘한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컵을 들어 식탁으로 가져왔다. 그리곤 냉장고의 문을 열어 투명한 액체가 담겨있는 분홍색 스프레이 통을 꺼내 컵 안에 칙칙하고는 액체를 뿌리며 말했다.


"배고프시진 않나요? 저는 원래 저녁을 안 먹어서"


"저도 잘 먹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저는 안 먹지만 이 친구는 식사를 해야 해서요."


나는 도통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 표정을 눈치라도 챈 듯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다 말씀드리는 게 이해가 빠르겠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컵, 그러니까 컵 안에 담긴 물은 제 반려 물입니다."


반려 물이라니 나는 그 단어가 어이가 없기도, 귀엽기도 하여 픽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남자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멈칫하며 남자의 표정을 살폈는데, 남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같이 미소 지어주고 있었다.






[반려] 계속

유원지 惟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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