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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Aug 24. 2021

반려

유원지 惟夗地


Song. Sunsetz - Cigarettes After Sex                                                                           





 上





 인간은 참 특이한 동물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미워하고 제거하려 드는데 반대로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마음에 들면 정을 주고 온 정성을 다해 아낄 수도 있다. 나는 그 ‘마음’이라는 것의 원동력에 대해 항상 의문이었는데 최근 한 남자를 관찰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어슴푸레 깨닫게 되었다.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진행 중이던 연구를 위해 반려동물이 필요했고 적당한 조건의 것을 고르기 위해 서울시내에 나가 있었다. 강남역 사거리, 답답하고 재미없는 표정을 한 인간들이 줄줄이 쏟아져 내려오고 올라가는 그 길에서 그 남자를 발견했다.


 복장이나 외모는 평범했으나 그의 특이함은 행동에서 발견됐는데, 그는 자그마한 컵을 들고 걷고 있었다. 크기는 소주잔 정도의, 도자기로 만들어진 재질의. 그 컵 안에는 무엇인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컵 속 정체불명의 물체가 쏟아지지 않도록 팔꿈치를 몸에 딱 붙인 채 조심조심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컵 안의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려면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그를 기다려야 하는데, 내가 사전에 조사한 바로는, 아침 출근길의 강남역 대로 한복판에서 가만히 서있을 수는 없다. 그건 마치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주차를 해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 하나 때문에 모든 흐름이 막혀버릴 수도 있다. 인간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솟아 올라간다. 자연이 계곡을 아래로 흐르게 만들고 바닷물을 하늘의 구름으로 퍼올리며 조정하듯 인간들도 무엇인가에 의해 조정된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흐름에 개입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길의 가장자리로 빠져 인파에 실려 떠내려오는 그를 기다렸다. 그가 둥실둥실 내 일 미터 거리쯤 떠내려 왔을 때 나는 행렬에 합류해 그와 나란히 섰다. 나는 계속해서 되뇌었다. '가득 찬 기대와 흥분감에 휩싸여 너무 대놓고 바라보고 살펴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나 자신을 억제시키며 고개를 삐걱삐걱 돌려 흘끔 바라본 그곳엔 물이 담겨있었다. 너무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광경에 나는 한편으론 김이 새어버려 흥미를 잃어버렸으며 한 편으로는 그런데 왜?라는 새로운 흥미가 돋아났다.


 저 물을 마시려고 들고 다니는 걸까?, 아니야 아니야 마실 거라면 훨씬 큰 컵에 더 많은 양을 들고 다녀야 할 텐데 저 정도 양으로는 앞니 정도나 겨우 적실 거야, 나를 조종하던 논리가 그 남자의 목적을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자 과학자의 재능인 과한 호기심이 조종석에 대신 올라탔다. 나는 그를 조용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큰 빌딩으로 향했다. 그곳은 강남역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큰 건물이었다. 로비의 출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에게 꾸벅 인사를 한 그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나를 제지하는 경비원과 눈을 마주치며 "저 이 회사 직원입니다."라고 하자 잠시 흐물 해졌던 경비원의 동공이 다시금 꼿꼿해지며 "예 죄송합니다." 하고는 나를 들여보내 주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혹시 사람들에게 밀려 물을 한 방울이라도 쏟을까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는 컵을 가슴 쪽에 꼭 끌어안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그는 보험회사 직원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간 그는 주변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며 책상 구석자리에 물컵을 올려놓았고 그 위를 뚜껑으로 덮어놓았는데 맞춤 제작이라도 한 듯 그 넓이며 손잡이의 모양이 컵에 딱 알맞았다. 그를 좀 더 가까이 관찰하려 다가가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 사무실의 모두는 비슷한 방향으로 넘긴 머리에, 같은 모양의 정장에, 색만 다른 옷을 입었기에 나로선 그들을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넥타이 색과 패턴을 외우며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 동양인종이 서양인종을, 서양인종이 동양인종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거야' 생각했다.


 초록 넥타이는 나에게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역시 "저 이 회사 직원입니다." 하며 눈을 마주쳤고 그도 경비원과 같이 이내 "예 죄송합니다." 하고는 본인의 일을 찾아 떠났다. 그 이후로는 남자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강남역 인간 물결들이 짓던 그것과. 그렇게 그는 하루를 보냈다. 전혀 특별할 것도 재미도 없는.


 하루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7시 30분, 그는 자신의 자리를 주섬주섬 정리한 후 컵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는 또다시 그 물결에 올라타 둥둥 뜬 채로 집까지 향할 것이었다.


 나는 그의 집에 가봐야만 했다.

 




[반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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