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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Aug 14. 2021

미운 오리 새끼

유원지 惟夗地

백조에게.

 

 너는 날 어떻게 기억할까. 아마도 널 괴롭히던 악당 형제 3 정도로 기억하겠다 싶네. 사실 난 널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도와주지도 않았고, 우리 형제들은 생김새도 다 비슷했으니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네 잘못은 아니겠다.

 

 나 셋째 오리야. 널 유난히도 괴롭혔던 첫째와 막내 오리를 바라만 봤던 방관자고.

 

 든든한 첫째도 아니고, 장난꾸러기이고 집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해 관심과 걱정을 한 몸에 받는 둘째도 아니고,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도 아니고, 어중간한 셋째.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많이 달라졌더라. 어느 날 호숫가로 놀러 나갔던 막내가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오며 너의 소식을 알렸어. 막내는 널 알아보지 못했는데 너는 막내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며? 그렇게나 너를 괴롭혔던 녀석인데, 너는 깔보거나 무시하거나 복수하지도 않고 친절하게 대해 줬다고, 자기가 너무 부끄러웠다고 말하더라. 그걸 듣는데 ‘너는 정말 모든 걸 타고났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네가 미워지더라. 내 형제들은 어릴 적의 너를 미워했었고 지금의 너를 동경하는 모양이지만 난 어릴 적의 너를 동정했었고 지금의 네가 너무 밉더라.


 많은 동물들이 너를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부른다며. 남들과 다른 외모로 미움을 받던 새끼 오리가 알고 보니 백조였고 모든 걸 극복하고 아름다운 백조로 자라나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이야기가 담긴 좋은 뜻으로 말이야. 하지만 백조야, 너는 오리가 아니잖아. 모든 걸 타고 난 너는 백조고 아무것도 타고나지 못한 오리는 나니까. 미운 오리 새끼는 나니까.


 너는 궁금하지 않겠지만 내 형제들은 꽤나 괜찮은 모습으로 살고 있어. 어렸을 때부터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던 첫째는 지금도 빼어난 외모로 유명하지. 모험을 좋아하던 둘째는 어디에 맛있는 벌레들이 사는지, 어디에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지, 어느 길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척박사가 되어 많은 오리들이 그의 도움을 받고 있고. 막내는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빨리 헤엄칠 줄 알았었지, 그 때문에 네가 형제들의 괴롭힘을 피해 호수로 헤엄쳐 나가도 어느샌가 막내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었잖아. 지금도 그 실력은 그대로야. 헤엄을 잘하는 오리는 어디에 나가서도 굶어 죽을 일이 없지.


 나는 너를 괴롭힐지, 너를 괴롭히는 형제들을 말릴지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던 어릴 적 모습처럼 내 삶에 대해서도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며 살아왔어. 어느 것을 제일 열심히 해야 할지, 어느 것을 제일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나는 뭐라도 찾아 떠나야 했어.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 그렇게 하면 답답하고 의문 투성이인 내 삶에 조금이라도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


 여정의 초입에 백조들이 모여 있는 호수를 지나쳤어. 그곳엔 너도 있더라. 하얗고 멋진 날개를 양 옆으로 활짝 폈다 접고, 누구보다 빠르게 헤엄치면서. 같은 백조들조차 너를 바라보며 감탄하더라고. 그런 멋진 삶은 역시나 타고나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길을 재촉했어.


 처음엔 수탉을 찾아갔어. 그의 모습은 정말 멋졌지. 딱 벌어진 가슴, 튼튼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발과 발톱, 왕관처럼 곧게 씌워진 벼슬, 그를 따르는 수많은 닭들까지. 수탉은 내게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 하지만 그는 너무 날이 서 있더라. 항상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는 중인 것처럼 보였어. 다가가서 말만 걸었는데도 날 쏘아보고 공격하더라고. 기억에 남는 건 잠시 동안 마주친 수탉의 잔뜩 지쳐있던 눈뿐이야.


 다음엔 농부의 사냥개를 찾아갔어. 사냥개야말로 못하는 게 없지, 힘도 세고 달리기도 잘하고, 수영도 할 줄 알고. 그야말로 나에게 답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멋지게 살 수 있나요?”

라고 묻는 나에게 그는

“당연히 타고나야 하는 거야! 내 멋지고 큰 이빨을 봐, 널 한 입에 삼켜버릴 수 있는 큰 입은 또 어떻고? 날 때부터 단단하고 길쭉하고 건강한 내 몸은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날 멋지고 강하게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하며 으스댔고 그 말에 나는

‘역시나 타고나는 거구나…’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구기는 행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 그때 저 멀리서 술에 취한 농부가 비틀거리며 욕지거리를 뱉더라. 그러더니 자신이 먹던 음식들을 한데 섞어 땅바닥에 쏟아 버리더라고. 그런데 내가 놀랐던 건 그걸 바라보던 사냥개가 뛰어가더니 땅에 떨어져 흙과 먼지가 섞인, 농부가 먹다가 남겨 버린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는 거였어. 사냥개는 왜 그런 멋진 모습을 타고나서 그런 대접을 받는 걸까 의문스럽더라.


 그날의 만남중 어느 것도 내게 도움이 되진 못했어. 날은 이미 져버려 어두운 밤이 되었고, 나는 힘 빠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지. 그 길에 다시 백조들의 호수를 지나치는데 그곳에 네가 혼자 있더라.


 ‘물 위 백조의 모습은 고상하지만 물 밑 그의 다리는 헤엄치느라 허둥지둥 바쁘다’라는 말, 우리 모두 그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 백조만큼 우아하고 느릿하게 물을 젓는 동물이 또 있을까, 오히려 허둥지둥 바쁘게 다리를 움직여 물을 저어야 하는 존재는 우리 오리들이지. 그런데 그 밤, 그 호수에서의 너의 모습은 오리였다. 헐떡이며 발을 빠르게 젓는 연습을 하고, 품위 없이 바쁘게 퍼덕거리는 날갯짓을 연습하는. 절박해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너의 발이 첨벙첨벙 물을 튀겼고 그 물들이 네 주변에서 푸르게 빛나며 사라졌다. 하늘에 닿을 듯 높게 펼치고 물결을 부채질하던 너의 날개는 달빛을 받아 부드러운 은빛을 냈다. 너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어.


 그때서야 무엇인지 알겠더라. 수많은 닭들을 이끌던 수탉의 모습보다, 커다랗고 단단한 이빨을 가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던 사냥개의 모습보다, 모두가 잠든 밤 고고하게 혼자만이 깨어 움직이는 너의 몸짓에서. 왜 네가 그토록 멋졌는지 왜 네가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 내 삶을 괴롭히는 이 허전함을 대체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그날의 네 몸짓 덕분에 지금의 나는 꽤 잘 살아가고 있어. 남들보다 잘생긴 외모도, 넓은 날개도, 튼튼한 다리도 원하지 않게 되었거든. 그냥 지금의 나를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 그날 이후로 너를 본 적은 없지만 너는 여전히 멋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 아무 날도 아닌 어느 날 밤, 네가 있던 그 호수에 있던 달처럼 오늘 유난히 달이 밝길래 네가 생각이 나 이렇게 편지를 써본다. 네게 항상 고마워. 항상 행복하기만 할 순 없는 삶이라지만 범람하거나 마르는 일 없이 그저 잔잔히 잘 흘러가기를 바란다. 너도, 그리고 나도.


미운 오리 새끼가.




[미운 오리 새끼] 끝

유원지 惟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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