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씨

바다는 나의 놀이터

by 표선희

어렸을 때, 나는 '깜씨'였다. 서울에서 이사 오신 옆집 부부께서 붙여주신 별명이다.

'깜씨'라는 별명이 마음에 안 들었다. 시골아이를 비하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 '깜씨야'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다를 주셨다. 그리고 우유를 주셨다.

그리고는 또 '깜시야'라며 부르신다.

아이참, 왜 자꾸 부르시지.

그리고는 웃으셨다.

어느 순간 '깜씨'라는 별명에서 애정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깜씨'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름이면 마당에 수영복이 마르기도 전에 바닷가에 갔다. 백사장이 넓은 바다와 가까운 거리에 집이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한식당과 중식당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어린 막내딸을 살뜰하게 살필 여력이 없었다. 시간만 나면 친구들을 따라다녔다. 바다에서 놀거나 쑥이나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다. 야무진 친구들은 인동초 꽃이나 지네를 잡아 팔기도 하였다. 쑥이나 고사리를 꺾어 살림살이에 보탤만한 수준은 못되었다. 소꿉놀이하는 수준이었다. 일머리가 없던 나는 수확한 양이 친구들 사이에 항상 꼴찌라 매번 약이 올라 있었다. 겁도 없이 나무에 올라가 내려올 방법이 없어 한참을 엉엉 울기도 했다.


바다는 달랐다. 바다는 재미있고, 행복한 공간이었다. 자유롭게 이끌어 주고, 편하고, 둥둥 떠 있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당캐에 사는 친구들에게 헤엄치기와 보말, 조개잡기에 대한 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당캐-당나라와의 무역항이라는 말도 있고, 바다에 제사를 지내는 당이 있는 마을-는 바다마을이다. 당캐 아이들은 아버지가 어부이고, 어머니가 해녀였다. 그리고 농사도 지었다. 이렇게 아이들은 부모님의 보살핌 없이 들이나 바다에서 놀았다.


까맣게 그을린 소녀에게

바다는 추억이고,

노래이고,

즐거움이며 자유였다.

지금도 그 놀이터가 생각이 난다.

파도 줄넘기

너울 말타기

잠수 숨바꼭질

조개 소꿉놀이.

살암수다(아크릴-모래, 갈매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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