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 아이패드로 전시할까?

붓을 꺾는다는 것은 미술을 한다는 것일까? 안 한다는 것일까?

by 표선희

'변기도 예술인 시대에 어떤 작품을 해야 되겠냐?'며 시각예술을 하는 동기들에게 시대를 한탄해 본다. 마르셀 뒤샹이 엊그제 발표한 작품도 아닌데 바로 얼마 전에 공개된 것 마냥 이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일하느라, 살림하느라, 작업하느라 바쁘다. 가족들을 위해 찌개를 끓인다. 콩나물을 무친다. 멸치를 볶는다. 그리고는 나를 위해 컵라면을 먹는다. 자극적인 MSG가 내 몸에 들어와야지만 백신을 맞고 면역원이 생기듯, 외부의 자극에 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처럼 행동을 한다.

문득, 조문 갔던 일이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미술학과 동기들을 만났다. 아직도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며 격려를 해 주었다.

그 동기들을 향해

"살기 위해, 작업한다."라는 말을 뱉었다.

그러고 나서 마음속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많이 부끄러웠다. 내가 많이 심오해 보이기도 하고, 무식해 보이기도 하였다.

무의식이었는지,

전의식에 있다가 다시 나온 생각인지,

진심이면서 변명인 듯,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진지해진 내 모습에 쑥스럽기까지 했다.

'살기 위해서'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죽음과도 같았던 지난날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인생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미술작가로 사는 삶'이 목숨 같았을까?


IMF는 대학을 휴학하게 만들었다. 가난한 가족은 나를 외롭게 하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복학하고, 졸업하고,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게 되었다. 숨 돌릴 틈 없이 살다 보니, 내 인생 60살 안에 개인전을 할 수 있을까? 죽기 전까지는 개인전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의문이었다. 달팽이처럼 살았다. 아이 셋의 엄마가 되었다. 미술교습소, 미술 기간제 교사, 미술 방과 후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만 애쓰며 살았다.

사람이 운이 좋아지는 징조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거라던데, 대학 선배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어 2015년 첫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느리고 축축한 내 인생 꿈꾸는 달팽이로 살아갈 수 있었다.


4회 개인전까지 하고 늦은 나이에 대학원도 진학했다. 공부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개념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미술은 철학이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척 어렵다.

'그림의 역사는 동굴에서 시작해서 아이패드까지'라고 데이비드 호크니는 말한다.

붓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인가? 진정 붓을 꺾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림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쓰였던 '붓을 꺾는다'는 의미가, 지금 동시대 미술을 하는 작가에게는 중요한 선택이 되어버렸다.



TV '신박한 정리'에서 배우 신애라 님도 사진이나 앨범 없이 파일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척 신박했다.

나도 신박한 작품을 하고 싶다.


동굴에서 아이패드로 전시할까?


기획서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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