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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ho Jul 17. 2019

내가 아는 미국의 절반 — 포틀랜드

포틀랜드에 가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밴쿠버에서 차로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시애틀보다는 재밌을 것 같았으며, 마침 대미언 라이스의 콘서트가 있었다. 누군가를 언제부터 좋아했다고 말하는 건 애정의 척도를 과시하는 동시에 적극적인 변명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 번 멈출 수가 없다. 십수 년 전에 듣던 엘에이 부틀랙 콘서트를 틀며 콘서트를 예매했다.

구글 맵에 목적지를 찍었더니, 도착지까지 6시간이 걸린다고 알렸다. 기계가 하는 팔자 좋은 소리였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 한 번씩 들려야 했다.

처음 출장을 갈 때 우버를 썼더니, 나도 모르게 리프트를 잊고 있었다. 블루 스테이트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기사가 자기도 리프트를 선호한다 말하며 처우가 조금 더 좋다고 했다. 한국의 택시는 어떻게 될까.

다시 가자고 다짐한 여행지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표현하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후에는 일단 엑셀 파일 하나와 구글맵을 만든다. 가고 싶은 곳들을 하나씩 정리한 뒤에는 동선을 보며 일정을 정하고, 유명하지만 가고 싶은 곳과 무명하지만 가야만 하는 곳들을 번갈아 가며 찍는다. 매번 좋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은 성공한다. 가보지 않은 곳의 유의미한 정보를 훑어내는 일에 익숙해진다.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여행지에서 식사와 숙박에 지불하는 정도가 늘어간다. 작년보다 나은 올해는 내년에 더 나을 예정이다.

교사와 경찰관을 포함하지만 소방관이 국가직 공무원이 아닌 나라는?

소금과 초콜렛을 판매한다고 써붙인 상점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다가, 그곳을 굳이 찾아간 우리가 있었다.

리틀-빅-버거 라고 이름 붙은 이 장소는 이름 그대로였다.

걷고 마시고 걷고 먹고 걷고 마시고 걷고 잠들었다.

포틀랜드행이 마치 대미언 라이스를 보기 위해서인 것 같이 써놓았지만, 표는 아주 뒤늦게 샀다. 이미 좋은 자리는 다 나가 있어서, 우리는 가장 뒷자리에 전세를 내기로 했다. 앞과 옆의 많은 좌석들이 비었고, 우리는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리사가 없는 대미언은 반쪽짜리라 여기면서도, 마르케다의 재발견에 한껏 신을 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스웰 시즌의 음악을 들었다.

가게의 이름인 ¿Por Qué No? 은 Why not? 이라는 뜻의 스페인 말이라고 했다.

올해 여행 계획을 준비하며 문득 포틀랜드 생각이 났다. 몇 년을 밴쿠버에 살면서, 미국 국경을 넘은 적은 단 한 번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오히려 미국 땅을 더 넘었다. 올해는 어떻게 될까. 표를 알아보고, 숙소를 찾아본다. 새로운 엑셀과 구글맵을 준비했다. 다시 떠난다.


https://www.instagram.com/especiallyw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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