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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ho Sep 18. 2023

나는 왜 이력서를 쓰고 있는가

어제 이력서를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왜 이력서를 쓰고 있지?


최근의 이력은 ○○○○에서 웹/앱 디자인을 했던 경험입니다. 당일 배송을 위한 디자인을 고민하고, 고객들의 반응에 따라 조금씩 발전시켜 왔다는 말을 적으면서, 내가 정말 그랬던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닌 건 아니지만, 지금 나는 잘 보이기 위한 이력을 적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라는 회사에서의 경험이 값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 모두 훌륭했던 건 아닙니다. 론칭을 위한 타임라인도 없었고, 회의는 일정에 따라 취소되었고, 문서화되어 남아있는 이력들도 없습니다. 회사어로 말하면 체계적이지 못했고, 쉽게 말하면 엉망이었죠.

그런데 왜 나는 최근 이력에 ○○○○를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요즘 왜 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달리기는 재밌는데, 헬스는 어렵지? 왜 1000자 정도는 편해졌지만 더 짧거나 긴 글은 안 써지지? 왜 이번에 올린 글은 저번 글보다 반응이 좋았지? 왜 요즘은 쓰고 싶은 말이 없지? 왜 이 책을 빌렸지? 왜 저 책은 샀지? 왜 애플워치가 나올 때마다 살까 말까 고민하지? 왜 애플은 사게 되고 삼성은 안 사게 되지? 왜 나는 B2B보다 B2C를 좋아하지? 왜 오프라인 공간을 안 하고 싶지? 왜 직원을 구하는 것보다 동업자를 찾고 싶지? 왜 나는 서비스보다 프로덕트를 좋아하지? 왜 이 제품은 계속 곁에 두고 싶지? 왜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왜 의미가 나한테 중요하지? 왜 나는 계속 고민하지? 왜?


모두가 최소한 어떤 노력을 했을 때 자신이 상위 25%가 될 수 있는 영역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 두 가지의 조합이 내가 극히 드문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 더 나아지는 것만으로는 승자가 될 수 없을 때, 달라짐으로써 승자가 될 수 있다.


오늘 아침 아주 작은 습관의 힘(284)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상위와 승자라는 단어가 좀 강하긴 하지만, 저는 스스로의 장점을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저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영역을 함께 펼쳐낼 수 있는 일이 바로 프로덕트 매니지먼트였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금 왜 이력서를 쓰고 있는지 이해되었습니다. 어떻게든 화려하게 꾸민 이력서로 월급을 받거나, 안정적인 소속을 찾아 회사에 다니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프로덕트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경험도 쌓고 싶고, 동료도 만나고 싶고, 돈도 벌고 싶고… 여러 가지 이유가 모여 지금 이 시기에 이력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점을 조합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경력을 기술하는 일이 앞으로 함께 일 할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과거의 일을 정리하는 글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미래의 동료에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질문을 던지지 않고, 해야 하니까 억지로 하는 일은 힘이 듭니다. 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듣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읽는 사람을 헤아리는 편지가 아닌 쥐어짜 내는 제안서가 됩니다. 편지를 더 자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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