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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ho Jan 10. 2018

어쩌다 포틀랜드

Accidental Portland

두 해 전 밴쿠버를 찾았던 때, 2박 3일의 일정으로 포틀랜드에 내려간다는 말을 들은 몇 사람이 입을 모아 반대를 했다. 가는 길이 멀다, 차로는 힘들다, 기간이 짧다, 심심하다, 지루하다, 이럴거다, 저럴거다, 어쩔거다. 사사로운 개인 신변에 생각지도 못한 토들이 달렸다. 똑같은 계획을 들으며 필요한 것을 챙겨준 사람들도 있었는데,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새우깡 대용량을 받고서야 집을 나서기도 했다. 언짢은 기억이 먼저인 이유는 무얼까.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말 뒤에 무수히 지나가던 오지랖이 떠올랐다. 오빠, 막상 하면 안 그렇대요. 정신없어 기억도 안 난다더라. 야, 살아보면 다 달라 인마. — 막상 해도 그랬고, 모두가 떠올랐고, 살아봐도 같았다. 지난 2년 동안 보여온 덕인가, 이번 여행은 그 누구도 토 달지 않았다.

때마침 북미 일정이 겹친 친구와 시애틀에서 조우하기로 약속하고 국경을 건넜다. 입국장을 지나 미국 땅을 정식으로 밟기까지, 1키로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걸린 시간은 3시간. 자유를 말하는 이들이 유색인종의 줄 앞에 얼마나 게으름을 보였는지는 하룻밤을 얘기해도 부족하다. 육로로 국경을 건너는 일에 대한 재고가 필요했다.

포틀랜드로 내려가는 5번 고속도로는 어느 순간 래이니어가 병풍처럼 세워져 있었다. 가까워지지 않는 산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출발한 지 10시간,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이틀을 묵은 소사이어티 호텔(thesocietyhotel.com). 위치와 가격으로 대안 없이 묵은 곳이었는데, 흔히들 말하는 쿨과 힙을 지향하는 부티크 디자인 호텔이었다. 카페와 로비가 낙낙히 엉켜있는 익숙한 모양새로 우리를 맞았고, 주차장이 없어 달리기로 5분씩 걸리는 곳에 차를 대야 했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니 어메니티로 세면대 위에 엄지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비누가 놓여있었다. 유행 참 따라 잡기 어렵다며 어른 둘이 투덜댔다.

호텔을 나선다.

고즈넉함 제외한 전차의 효용성은 과연 얼마나 되는 걸까.

동행자가 아침잠을 챙기는 동안 혼자 산책하며 눈에 밟아 놓은 카페를 함께 들렀다. 한구석에 한 뼘짜리 주방을 가진, 자리라고는 유리창에 붙어있는 짧은 탁자와 야외의 테라스 석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빨간 철제 의자가 전부인 공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테이크 아웃 온리는 아니지만, 자리는 이 정도가 전부이니 웬만하면 가져가라는 느긋한 권유를 보이는 음식점이었다. 가끔 이런 장소를 볼 때면 가게를 차리고 싶어 지기도 하는 것이다. 편하게 내리는 커피와 티,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만드는 빵내 가득한 공간이었다.

가득했다.

키쉬와 시나몬번을 하나씩 사들었다. 보통 나는 아메리카노, 그녀는 라떼. 

대부분 찍는 일을 담당하지만,

가끔 사진기를 빼앗겨 얼굴이 남기도 한다.

그곳의 이름은 로레타 진의 파이와 비스켓(www.laurettajeans.com).

시내 나들이를 나선다.

아이폰 구매를 실패한 Pioneer Place 애플 스토어(https://www.apple.com/retail/pioneerplace/)

신발 구매를 실패한 나이키 매장(https://www.nike.com/us/en_us/retail/en/nike-portland)

또 뭘 실패해볼까.

식사를 실패한 음식점(http://littlebirdbistro.com/)

숙박을 생각지도 않았던 호텔(https://www.coasthotels.com/hotels/oregon/portland/the-benson-hotel/)을 지나쳤다. 그렇게 계속 계속 포틀랜드 산책이었다.

잠시 들린 노드스트롬(https://shop.nordstrom.com/st/nordstrom-downtown-portland)

커피를 마셨던 코아바(https://coavacoffee.com/locations).

잠시 옷매무새 다듬고 다시 길을 떠났다.

정처 없이 걷다 레바니즈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에 왠지 모를 믿음으로 한자리를 차지했다.

두바이에서 처음 맛을 본 이후, 어쩐지 레바니즈 음식은 보이는 대로 들어가고, 맛보는 대로 실패한 적도 없다. 타부쉬 비스트로라고 읽는지 모르겠는 곳이었다(tarboushbistro.com).

각자 편지를 쓰고 있던 어떤 두 사람을 구경하며 돌아가는 길에는 우버를 불렀다.

포틀랜드에 도착해서는 우버를 몇 번 이용했는데, 캐딜락을 타고 나온 한 아저씨가 “Sorry for our president”라는 말로 운전을 시작했다. 서울의 작년도 그러했다고, 그 마음 안다는 대화를 이어갔더니, 포틀랜드의 자랑을 하나둘씩 꺼내 보인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아, 그런데 허니크리스프 사과는 먹어봤어?” 우리가 없다 하자, 마침 장을 보고 가는 중인데 딸아이들 줄 사과를 사놨다며, 그중에 두 개는 너희 몫이라 했다. 손사래 치는 우리는 아랑곳 않은 채, 호텔에 도착하기 전, 잠시 갓길에 주차해 사과 둘을 꺼내왔다. 어쩔 줄 모르던 우리는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고, 줄 수 있는 모양새를 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어 그것을 건넸다. 맛이 쎄니까 조심하라고, 향이 힘들면 애들은 강하니까 딸들에게 주라는 말과 함께. 우리가 건넨 것은 이것이었으며, 사과는 다음 날의 아침 식사가 되었다. 한 입 베어 무니, 과연 자랑할 만했다. 친구 만나러 시애틀을 향한다.

시애틀에 도착했다.


인스타그램: instagram.com/especiallyw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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