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ho Aug 31. 2018

어쩌다 제주

Accidental Jeju

그러니까 우리가 제주에 온 지 30일이 지났다. 올 4월에 도착해 한 달 가량 살다 간 후, 집을 구해 이사를 들어와 <입도일기>를 쓴 지 오늘로 서른 번째 날이라는 것이다. 제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남한 제일의 관광지라는 점과 산과 바다가 가득한 섬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던 우리 둘이 인연에 우연 겹쳐 정착을 시작했다. 화곡 사람 둘이 서귀포인 된 지난 한 달의 기록이다.

지난 4월에 친구와 함께 했던 여행기는 <너의 친구는 나의 친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비가 오던 김포(GMP) / 해가 나던 제주(CJU)

서울-제주 간 이사는 육지 부분과 섬 부분으로 나뉜다. 전날 아침 8시부터 짐을 실어 11시쯤 서울을 떠나 완도항으로 트럭을 보낸 후, 다음날 오후 1시쯤 제주항에 입도시켜 그때부터 서귀포에서 실은 짐을 내리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토요일 오전 화곡에서 트럭을 떠나보낸 후 공항으로 향했고, 한 시간 걸려 도착해 친구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서귀포 집을 청소하고 있자니 이삿짐이 도착했다. 섬 생활을 시작한다.

이주를 하기 전, 섬의 자연재해에 대해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던 우리는 습기와 비바람의 걱정과 처음 살아보는 섬 환경의 고민이 겹치니 처음 몇 년은 안전한 곳에 살기로 한다. 서울살이 대비 두 배 넓어짐에 적응을 못하다가도, 이내 익숙해진 우리를 보며 사람의 간사함을 손수 느꼈다. 일주일쯤 정신없이 청소하고 정리한 그 주말부터, 우리는 입도 나들이를 나섰다.

멕시코 음식! 부르짖으며 30분을 달려간 도민의 마음은 설렌다.

밴쿠버에 사는 동안 록키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답하면 모두가 놀라고는 하는데, 이민 초기에 시도하지 않아 결국 십 년 넘게 록키를 안 간 사람이 내 주변에도 몇 명이나 되었다. <오설록 티하우스>를 지나가며 둘이 똑같은 마음으로 눈을 맞췄다. "오늘 아니면 안 간다, 우리." 한 시간쯤 둘러보며 한 번쯤은 와 볼 만하다 라는 공통된 감상을 남기고서 떠났다. 겉모양만 그럴싸한가 했는데, 내실도 튼튼하니 시간 내서 들리지 않을 이유 없었다. 덥고 붐벼 실내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야외도 좋아 보이는 것이 아마도 제주 사는 도중 두 번쯤 가는 일이 생길게 분명했다.

바글한 오설록에서는 도저히 후식 기분이 들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집을 들어갔다. 사방으로 배치된 자리도 재밌었고, 시폰 케이크도 맛있었지만, 드립으로만 내려준다는 커피는 조금 평범했다. 시끄러운 테이블이 두 군데 정도 있었지만, 넋을 놓고 있으면 안들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우리 둘에게도 친숙한 그 이름 <윗세오름>. 백록담을 찍지 않지만 한라산을 볼 수 있는 인기 동선이라, 과연 듣던 대로 오르내리는 여정 내내 즐거웠다. 숲길을 지나다 산길을 오르고 나무를 거쳐 등선을 거닐면 들판이 나오는, 10분마다 길의 얼굴이 바뀌는 흥겨운 등산로였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오다가도, 뒤돌면 해가 나는 산의 오십 가지 모양을 구경했다.

이제 내려갑시다.

내려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제주에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첫 번째 손님이 아직 손님방을 차지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밥만 함께 할 수 있었던 아쉬운 자리였는데, 온라인을 통해 알고 있기는 오래였지만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던 이 날도, 어색함 없이 다섯 시간을 수다로 빼곡 채웠다.

그녀는 나에게 만나고 보니 온라인에서 보다 따뜻한 느낌이라 했다. 왜 일까. 가끔 듣는 평가이기도 한 이 말에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날은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생각을 곱씹었다. 센스 노트북에 달린 14.4k 모뎀으로 시작한 어린 시절의 내 통신 자아가 지금의 나로 이어져서 그렇겠거니, 하며 잠이 들었다.

마지막 배치를 마치고 집 정리의 마무리를 선포한 날이었다. 총 3주가 걸렸다.

<용눈이오름>은 입구에서 말들이 반겨주는 곳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간 터라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한참을 헤맸는데, 이 날 따라 온 동네 말 모임이 입구에서 열리고 있었다.

멋있어요. 반했습니다.

작업실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 달 동안 둘이 바다에 간 날도 많지 않았지만, 결국 이번 여름에도 물에 발을 넣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금내였다.






2년 전 처음 화곡집에 이삿짐을 옮긴 날, 원룸에서만 살던 우리는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며 소리를 질렀다. "선호야! 지금 너 목소리만 들려!" 책과 꽃과 짐이 늘어가고, 들르는 사람과 묵는 사람이 하나둘 채워질수록, 우리에게 화곡은 고향이었다. 강남에서 태어나 미국 거쳐 분당 살다 밴쿠버로 떠난 나와, 신길동에서 십수 년을 살며 후쿠오카와 두바이 거친 그녀가 처음으로 함께 짐을 푼 곳이었다. 큰 창으로 해가 내리고, 겨울에는 기와집에 눈이 쌓이는 우리의 첫 집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들이고 사람을 떠나보낸 우리의 집을 두고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제주에 산다.

인스타그램: instagram.com/@especiallywhen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포틀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