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ho Sep 14. 2018

어쩌다 서울

Accidental Seoul

처음에는 그저 항공사의 조항 때문이었다 — 생후 48개월 미만의 아이는 비행이 무료.

48개월 미만의 그 분

매번 후쿠오카에 갈 때마다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 통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는데, 우리 동네도 놀러 왔으면 좋겠고,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시기가 지나가기 전에 규정 한 번 안 쓸 이유 있겠냐고 꼬셔보았다. 초청을 건넨 후 문자 몇 번 주고받으니 일정이 조율됐다. 엄마랑 딸만 와도 기뻤을 텐데, 남편과 어머니까지 선물 되어 도착했다. 그들이 왔다. 휴가를 냈다.

개인 정보 보호로 인해  KIWA & TAHI가 되었습니다
엄마와 딸
딸과 딸의 딸과 딸의 남편

서로의 친구를 소개하는 일에 주저 없는 우리는, 동거인의 친구였던 그녀와 몇 번 자리를 가졌고, 어쩌다 보니 그녀의 부모님 댁에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다시 묵었고, 그 다음다음 해에도 다시 묵었고, 그렇게 일본어와 영어가 한국어랑 뒤섞이는 자리를 네 해 연속하다 보니 어느새 가족이었다. 그 사이 그녀는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고. 그렇게 네 사람이 후쿠오카에서 서울로 왔다.

예전에 할머니 집에서 엄마와 함께 카페트에 누워 뒹굴거리다, 모아놓은 가족사진들을 들춰보았다. 이 아가가 예쁘네, 이 아가는 그대로 컸네 한참 이야기하며, 외모나 성격에 관계없이 역시 집안의 첫 아이는 다르다고 할머니와 엄마가 입을 모았다. 둘째가 더 귀엽고, 셋째가 더 빛이 난대도, 처음 아이의 존재를 알려주는 그 아이는 그저 다르다 했다.

우리에게 처음은 그녀일까. 피 섞이지 않은 여러 조카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가장 가깝게, 크는 일을 매달 매년 보고 싶은 마음을 떠올린다.

오랜만에 봤다고 어색하게 입 내지 말자.

늦은 시간 도착해 고기를 먹자 했다. 아가는 그저 김이면 되었다.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코 묻히고 김 묻히고 언제 어색했냐는 듯 가게 안을 나들이 했다.

그래도 역시나 김이 제일 좋아.

둘째 날이 밝았다.


친구 가족이 을지로에 숙소를 잡았고, 우리가 집에 돌아가고 나오는 시간이 아쉬워 둘째 날 우리도 숙소를 잡았다. 1박용 짐을 챙기고 아침 화장에 시간 들였다.

아이있는 친구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아니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친구가 아이를 가졌을 때 만나는 것이 좋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 있는 친구와 만나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동거인이나 나, 둘 중 하나가 최대한 아이를 안고 데리고 걸으려고 하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얼마나 멋있고 즐겁고 화려했던 친구였던가를 떠나, 임신과 육아를 거치는 일에 힘들지 않은 부모는 없다. 윗세대들이 그저 열심히 견뎌왔을 그 시간을 지금의 우리가 조금이나마 함께하려 애쓴다. 밴쿠버에 아일랜드에 후쿠오카와 부산 서울에 무던히 살아가는 그들을 그리워한다.

돌담돌담

서로 자연스레 돌아가며 옷집과 소품집 이 집 저 집을 잔뜩 들어가는 기분이 영판 좋았다.

어릴 적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관계를 조금씩 만들어 가는 기분이 얼마나 근사한지 우리 둘은 아직도 잠에 들기 전에 가끔씩 친구를 하나 둘 꺼내며 서로에게 자랑하고는 한다. 결국 네 친구가 내 친구고 내 친구도 이미 다 네 친구 된 상황에서 자랑할게 무엇 있겠냐마는, 그래도 이 자랑을 그만 둘 수가 없는 것이다.

밥 먹고 가실게요

네가 날 그렇게 요래조래 아직까지 경계하는 척 해도.

아이가 있고 차가 없으니, 주변의 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음식점들을 한참 찾았다. 나는 또 미리 동선과 가게를 정리해야 안심하는 성격이라, 한참을 시간 들여 창덕궁을 바라보는 마음에 드는 가게를 하나 정했다. 전화로 날짜와 자리를 예약하다 아이 의자를 요구하는 순간 부딪힌 <노키즈>의 벽. 아이를 들이기 어려운 업장의 마음을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던 나는, 내 아이의 것도 아닌 예약에서 무력해졌다. 지하철 역사에서 유모차를 빌려준다 해도, 임산부 배려석이 분홍색으로 도배가 된데도, 순간의 좌절감이 쌓이는 경험은 어디서 보상받을까.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더니 너무.. 피곤해서..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저녁 식사로는 <한뫼촌>을 갔다. 한옥에서 한정식이 나오는 곳이었는데, 손님 대접 하는 기분 좋았다.

모든 어른들이 아이의 한 입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현장
어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김이 좋은 나는 어린이

방안에서 한접시 한접시 가져다 주시는 음식들이 맛깔 좋았다. 다음에도 오고 싶어요. 자알 먹었습니다아.

돌아가는 길, 조계사에 들러 색과 놀았다.

헤어지기 아쉬워 많은 카페와 찻집을 찾았으나, 좋아하는 곳이면 문을 닫았고, 열어 있으면 별로였고, 절충하자면 곧 닫았다. 호텔 옆에 있는 카페에 들러 남은 이야기를 풀었다. 이 날, 이 곳에서 한 이야기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다. 그걸로 충분한 시간이 있다.


마지막 날


떠나는 날 아침, 신라스테이에서 조식을 먹었다.

가짓수 적고 맛있는 것 가득 찬 이 곳을 좋아합니다.

엄마한테 땡깡 부리다 그렇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렇게 요렇게 조렇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게 잎새의 친구일 때. 그 친구의 어머니가 귀엽고 그 친구의 아버지가 고맙고 그 친구의 남편이 좋고 그 친구의 딸이 사랑스러울 때. 다섯의 가족 구성원이 후쿠오카에 가는 이유의 전부이고, 갈 때마다 집과 밥과 시간을 대접받으며, 다른 선물보다도 앨범에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확률은 얼마일까. 올해 벌써 두 번을 만났고, 연말에는 우리가 또 후쿠오카에 간다. 후쿠오카에 가족이 있다.


인스타그램: instagram.com/especiallywhen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제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