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추석을 맞아 서울로 귀경했을 때, 사흘 동안 외할머니댁 신세를 졌다. 서울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 바닥에 배를 깔고 뒹구는 사이여서 더 친해질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함께 잠을 자고 아침부터 시간을 보내니 친밀감의 상승폭이 눈으로 보였다. 딱히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한 것도, 근사한 아침을 찾아 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같은 지붕 아래서 하루를 보내는 일은 사람을 가깝게 했다.
제주에 내려온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이곳으로 내려온 서울 사람을 다섯 만났고, 지난 주말에는 처음으로 친구에게 숙박을 제공했다. 아침의 얼굴을 두 번이나 보았더니, 이제는 단체방에 아무 말을 내뱉어도 괜찮은 사이가 됐다. 앞뒤 없이 뀨!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뀨!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뀨뀨한 관계를 단단히 했다.
함께 아침 무용을 마치고, 돌고래를 보겠다며 대정읍으로 달렸다. 갑자기 진 허기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고, 그보다 비싼 커피도 마셨다. 육개장 모먼트를 함께 할 수 있는 사이, 우리는 뀨뀨한 사이.
돌고래 나와라 오–바
그녀는 2년 정도 발레를 했고, 우리가 무용을 배운지는 두 달이 되었다.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즉흥춤 클래스에 초대했더니, 바닷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보세요 선생님. 우리 안의 춤신춤왕이 이렇게나.
어릴 때 그랑블루와 프리윌리를 좋아했지만, 제주도에서 돌고래를 보러 바닷가에 가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샌디에고의 씨월드를 간 기억까지 끄집어 내봤지만 결론은 왜 굳이. 그럼에도 손님의 청을 받아 차를 몰고 굽이굽이 해안도로를 마주했더니,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하나같이 돌고래로 보였다. 끼요우–유우요! 고주파를 흉내 내며 돌고래를 불러보기도 했고, 왜 없냐며 바람 치는 해안가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을 제안하는 친구가 소중했다. 제주도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네이버 지도를 켠 동거인이 수월봉에 별이 찍혀있다며, 노을 시간 되었으니 한 번 가보자 했다.
과연 별이 찍힐 법했다.
제주에 이사를 오면서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손님방이었다. 왜 우리가 그토록 방 하나를 비워 두려 했는지, 왜 우리가 올 사람을 고대했는지, 왜 거실에 앉아 말과 술을 건네었는지.
마지막 날 아침, 늦잠 자고 일어나 예약해둔 오설록에 들렀다. 급하게 나와 차밭 한 번 구경하고 공항에 내려준 후, 집에 돌아와 손님방을 청소하며 종이봉투에 든 편지와 상자를 발견한다. 의좋은 남매가 뀨뀨 울었다.
인스타그램: instagram.com/especiallyw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