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난장판이고, 방이 난장판이다. 누가 보면 집에 폭탄 맞은 것처럼. 나는 저것을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약간의 갈등을 한다(약간이라니?) 그대로 두면 보는 내내 꼴 보기 싫을 것이고, 그렇다고 움직이자니 엄두가 안나는 것이다. 원래의 나는 뭐든 첫발을 내딛는 걸 주저하는 사람인터라 인생의 모든 전반에 걸쳐 생활을 이런 식으로 해왔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무엇이 더 이로운가 보단 무엇이 덜 귀찮을까를 좀 더 면밀하게 고민하는 부류의 사람이랄까.
난장판인 이 집안 속 한자리를 자리 잡은 우리 집 강아지는 고고하고 아주 귀엽게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든 차지하고 있다. 나 또한 같이 옆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발로 밀고 손으로 물건들을 헤쳐서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한 때 이것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려볼까 했지만 스스로 욕먹는 일을 자처하진 말자 싶어서 그만두었다. 영상으로 올리면 게으른 내 인생도 조금은 부지런해지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기대심을 품었던 게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건 귀찮음이었다.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이 하나의 신조를 모티브로 크게 깨닫게 된 결과랄까.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 이제 어디서부터 나를 찾아야 할까. 이 대혼란 파티 속에서.
나는, 일단은 유튜브 음악을 틀고(재즈, 아니면 귀여운 음악을 듣는 편이다) 식탁 의자에 앉아 호기롭게 거실을 둘러보았다. 어디서부터 치워야 하는 것보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부터 중요해진 나라는 여자는 오전 내내 끊임없이 유튜브를 보고 있는 한 초등학생을 바라보며 잔소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잔소리라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러면 둘 다 나아지나. 의문을 가지며 잔소리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인간은 원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를 원하는 존재이니, 저 초등학생 남자애는 대충 아침에 공부를 빨리 끝내고 유튜브를 보고 싶어 저러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지금 치우지 않고 대충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으로 재고 있으니 저 남자아이나 나나 똑같이 구는 것이다. 이런 내가 잔소리한들, 서로만 기분이 상할 뿐.
결국 스스로 지쳐서 그만 보길 원해야 하고, 나도 아 이젠 치워야겠다 싶어서 짧은 시간 안에 후다닥 해치우듯 치워나가는 게 서로에게 가장 좋은 최선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다. 나를 찾아가면서. 저 널브러진 물건들 사이에 내 마음도 한 조각쯤은 있겠지. 그냥 둬야지 이따 주워야겠군. 이러고 스스로 이상한 위안을 하며.
마음도 난장판이고, 현실도 난장판.
나는 그 속에서 나를 찾으려 애쓰지 않고 묵묵히 바라본다.
치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치울 수 있고, 찾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게 마음이니 말이다.
단지, 그게 좀 오래 걸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