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

by 김태연



해야만 하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할 줄 아는 여기 한 초등학생이 있다. 그 아이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해야만' 하는 것을 해놓아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이미 알고 있는 그 아이는 나이만 먹은 어른보다 훨씬 낫다. 적어도 자기가 지금 현시점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해야만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여기 한 어른도 있다. 그녀는 나이는 들었지만 철이 없어서 가끔 어린아이에게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볼멘소리를 종종 늘어놓는다. 그녀는 매우 쾌활하고 명랑하지만, 우울감이 덮칠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초등학생도 아는 그것을 그녀는 매우 힘겹게 한 개씩 해치우듯 해버린다. 그녀는, 가끔 본인이 낳은 자식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자면 그녀 자신도 무슨 글씨인지 못 알아볼 한글을 쓰면서 아이에게는 똑바로 써야 네 글을 알아볼 수 있다며 훈계를 늘어놓곤 아차 싶다. 내가 내 글씨도 제대로 못쓰면서 아이한테는 바르게 써야 한다고 타박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지. 그녀는 가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한테 요구하는 게 많아질수록 본인이 그렇게 요구를 할 만한 잘난 인간은 아니라는 걸 몸서리치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알고 있을까.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혹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로 이어졌으니 이번생에서는 서로 최선을 다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뿐. 자식은 자식의 할 일을 하면 되고, 엄마는 그 자식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봐주면 된다. 가끔 길을 잃고 헤맬 때 적당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길잡이의 역할이 어느 정도까지 일까. 엄마는 종종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선이 적당할까. 나는 적당하게 아이를 이끌어주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다 생각이 많아지면 과부하가 된 엄마는 생각하기를 멈춘다. 적당한 지도가 오히려 본인에게는 독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걸 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그러니까 나의 아들은 내 입장에서 바라본 나의 아들은, 현명하고 성실하다. 본인이 뭘 해야 할지를 안다. 그렇다고 어른스럽지는 않다. 딱 그 나이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을 하고, 관점으로 바라본다. 나는 그런 나의 큰 아들이 좋다. 같이 있는 시간은 서로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즐긴다고 표현하는 건 내 생각뿐이겠지만, 나는 나의 아들의 방학이 '숨 고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다니는 학원도 다 끊어버리고 싶다(그래봤자 다니는 건 독서심리 하루, 축구 하루뿐이다) 요즘은 방과후 학교까지 다녀서 일주일에 네 번이나 나가는 셈이다.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아들의 입에서 더블클릭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얘가 천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세상에 더블클릭이라니. 너 그런 것도 알아? 나의 말에 엄마는 모르냐는 기가 막힌 얼굴을 하던 나의 아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리고 웃음이 난다. 나는 나의 아들이 크는 것이 아쉽고 섭섭하지만, 아이는 성장해야만 한다. 머무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들에게 좋은 엄마이기보단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좋은 엄마는 될 그릇이 안된다. 그렇지만 좋은 기운은 주고 싶다. 언제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객관적이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차가운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아, 그러면서도 나는 오늘 아이에게 한글을 제대로 써야 한다며 말한다.

이런이런, 잔소리 많은 엄마 같으니라고.

정작 엄마인 나도 한글을 예쁘게 잘 쓰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나부터 잘해야지. 누가 누구한테 뭐라고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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