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위로한다

by 김태연



스스로 위로 하는 법을 요즘 터득하는 중이다. 나는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아마 자괴감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때 방어적으로 그런 위안을 했던 것 같다. 잘하고 있다고, 충분하다고. 정말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큰아이에게 예전에 사 둔 영어 문제집을 보여주며 이걸 하겠냐고 물어보았다. 이건 발음에 관한 거고, 하루에 한 장씩만 풀면 된다고. 큰아이는 본인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하겠다고 했다. 나는 공부 목록에 영어 문제집 한 개를 더 추가하며, 그동안 큰아이가 방학을 시작하면서 쭉 해왔던 공부 목록들을 살펴본다.


'그래도 영어는 해야 해.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해야지. 실력차이 많이 날 거야'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주재원에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 그때를 위해서 영어를 미리 해둬야 한다는 말. 그때 가면 힘들 것이라는 걱정. 나는 그 말에 '왜?'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는 의문에 의문을 낳았다. 왜 해야 하는데? 왜 가면 무조건 힘들거라 생각하는데? 왜 지금부터 꼭 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이 시점에 왜 필요한데?라는 물음들.


유튜브에는 알고리즘으로 왜 지금부터 국어를 해야 하고, 책을 읽어야 하며, 영어를 해야 하고, 수학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하루에도 몇 개씩 뜨지만 나는 늘 보다가 꺼버린다. 결국에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해야 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아마 지금 뭔가 보낸다고 하고, 하자고 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르고 그냥 따라와 줄지도. 그러나 분명 언젠가는 그 막무가내함이 안 먹힐 시점이 올 것이다. 가야 해. 왜? 아이가 왜 본인이 공부해야 하는지 해답을 찾지 못하면, 목마른 엄마인 나만이 우물을 팔 뿐. 내 아이는 언제부터일지 몰라도 손을 놓게 될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나는 그렇게 목마르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인생도 제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무턱대로 학생이니 공부를 무조건 해야 해.라고 말하기에는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그저 남들 하는 것에 조금 우리가 뒤쳐지고 있을 뿐이어도, 내 아이는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매일 꾸준히 하는 것. 실력이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매일 한 장씩 해내는 것. 그것이 아이와 나의 약속이다. 누구의 말로 잠깐 휘청거릴 순 있어도 조금 더 단단히 자기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도화지 같은 아이에게 덧붙여 그려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어가기를 희망하며 스스로 약속한다.



매번 영어를 물어보며 어렵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대답했다. 당연하다고, 남의 나라 언어를 쉽다고 생각할 수 없는 거라고. 우리나라말인 한글도 어려운데 영어가 어려운 건 당연한 거라고. 너는 잘하고 있다고. 정말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라고. 네가 사과가 영어로 뭔지를 아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냐고 말해준다. 동시에 나에게도 속으로 말한다. 잘하고 있다고, 정말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나는 아이를 칭찬하며 또 나를 위로한다.

좋은 엄마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좋은 기운을 주고 싶은 엄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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