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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31. 2023

나는 안다. 그리고 모른척한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과거형을 늘 먼저 쓰곤 한다. 그랬었다. 생각했다. 하곤 했다. 기억났다. 느낌이 들었었다. 지루했다. 슬펐다. 괴로웠다. 외로웠다. 불안했다. 초조했다. 우울했다. 기뻤다. 행복했다. 좋았다.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등등.. 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면 그 글은 늘 과거형이 된다. 우울했던 기분도, 좋았던 행복감도, 모두 금방, 정말 막 지나가버린 버스를 놓친 기분이랄까. 그래 그런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나의 현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현재가 아닌 건가. 나는 왜 과거형으로만 자꾸 쓰게 되는 걸까, 정말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음.. 대체 왜?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알고 있다. 안다. 내가 움직이면 집안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약간은) 것과, 배가 고프니 음식을 당장 차려먹으면 배불리 먹을 것이라는 것도. 그 정도도 모르면 바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가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 정도도 모르는 사람인 것 마냥 구는 것이다. 지저분한 집을 봐도 모른 척. 배가 고파도 모른 척. 당장이라도 껌을 준다고 하면 달려올 내 강아지한테도 껌이라는 게 뭐야?라는 듯이 모른 척하는 것이다. 나의 주 특기이자 제일 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는 거 모른척하기. 되게 아닌 척 하기. 뭐 그런 거.



그래서 현재의 감정이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피곤한 얼굴로 잘 모르겠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감정의 선은 늘 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감정으로 글을 써야 하고, 어떤 감정으로 집안일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모르고 싶은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늘 그렇게 어물정거리며 넘기는 사람처럼 오늘 하루를 그렇게 보낼지도 모른다. 오, 미래를 그렇게 생각하다니. 매우 낙관적이지는 않군. 

아이한테는 할 수 있어. 넌 잘하고 있어. 라며 오만가지 칭찬을 늘어놓곤 정작 나 자신에게는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왜냐고? 대답하기 곤란하니 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세계를 나는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다. 딱 그만큼 만이다. 나를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것. 약의 효과는 딱 정말 그 정도만큼의 효과만 나온다. 더 이상의 부정적인 생각에는 빠지지 않도록. 그러나 들뜨지 않을 수 있음을 알 것. 이 정도?


책들을 보면 현재상태가 어떤지 그걸 파악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무리 내가 도전해보려 해도 나는 현재의 내가 무슨 감정인지 파악하려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끝도 없이 파고든다. 뇌에도 내성이 생긴 건지, 그런 걸 생각할수록 막연한 기분만이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이해하는걸 좀 내려놓기로 했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생각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아예 가위로 잘라내거나,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처음과 끝을 찾는 것이다. 그게 올바른 일인지 과연 그렇게 까지 하면서 꼬인 생각을 풀어내야 하는지는, 나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걸 지도 모른다.



답을 찾는 건, 어쩌면 희미한 등대의 빛을 찾아 항해하는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전이 되면 그 등대의 빛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항해에 답이 있을까. 어두운 길에서는 절실한 그 등대의 빛이 낮에도 그렇게 절실해질까.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고, 다양한 형태로 어디서든 존재한다.

나는, 안다. 그리고 모른척해본다.

어쩌면 부정적인 감정의 반대말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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