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를 팔팔 끓이고 나서 달력을 보니 6월 5일 학교 재량 휴업일이라고 써져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재량휴업이구나. 우리 아들 좋겠네 싶었다. 아, 나도 재량휴업이라는게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 아니 거의 폐업이나 마찬가지인가..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폐업과 다를 게 없군. 강아지를 안으며 생각한다. 휴업도 아니고 폐업 수준이다.. 집이 폭탄 맞은 건지, 내가 폭탄을 터뜨린 건지..
요즘 정신이 살짝 나가있는 동안 내 아들은 나를 알고 있었는지 공부 안 했는데 했다고 체크하고, 문제집도 대충 풀었다. 그동안 밀린걸 한꺼번에 채점하려니 문제집이 거의 절반이나 된다. 이렇게나 많이 내가 안 했구나. 정말 정신 못 차리긴 했구나 싶어서 답지를 보고 채점을 하는데도 이미 지쳐있는 상태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자고 하려니 엄두도 안 나고, 이미 다 푼 문제집이니 그냥 넘어가야겠다. 별것 아닌데도 틀린 문제가 있고, 풀이는 없는데 정답은 맞은 경우도 있다. 하여튼 참 희한하게도 푼다니까. 과정은 없는데 답이 맞는 희한한 풍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분명히 머리를 쓴 것 같긴 한데, 그 조그만 머릿속으로 어떻게 풀었는지가 의문이다.
아, 그나저나 씻기도 해야 하고 이따 오후에 커피 약속도 있고, 집도 치워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할 일은 태산인데 뜨끈뜨끈한 강아지를 안고만 집안을 빙 둘러본다. 물이라도 끓인 게 어디야. 잘했어 잘했어.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했다 우쭈쭈 해준다. 물론 할 일이 여전히 많지만 하나씩 해나가면 되겠지 싶은 거다.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벌써 6월이다.
여름이 성큼 다가오네.. 진짜 시간이 금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