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저 깊은 심연 속에 있는 우울을 끄집어내 본다. 너는, 어디서 온 걸까? 이대로 망가진채로 둔다면, 너는 소멸될까? 마음을 눌러가며 물어본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눌린 마음은 답하지 않는다.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어떻게 할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감정만 휘젓는다. 그건 눌린 채라 그런 걸까. 아니면 무엇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걸까. 칼로 자를 대고 자르듯 깔끔하게 잘라버리고 싶었다. 뭐... 그런 감정 들은 말이다.
그 무렵 나는 상담을 받고 있었다. 왜 부모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지, 이해를 못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상담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상담사는 나에게 매 회 상담을 마칠 때마다 과제를 내어준다. 나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어진 과제를 묵묵히 해내야 하는 원인 모를 압박감에 시달린다. 애쓰지 말라고 했지만, 애써지는 이 마음은 나의 의지인 걸까, 타인의 기대인 걸까. 다음상담 때는 꼭 물어봐야지. 기억하며 적었다. 그건 곧 버려질지도 모를 종이인지도 모른다.
나의 울음은 나의 남편과 아이들을 슬프게 만든다. 울지 않아야지 다짐해도, 남편의 얼굴을 보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그 다짐은 어김없이 무너지고 만다. 요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남편이 묻는다. 나도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나는 이 말만 반복하며 엉엉 운다. 그런 나를 끌어안아주는 건 나의 다정한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나의 가족이 이렇게나 따뜻하게 굴수록 나는 더욱더 죄책감이 올라온다. 원 가족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내가 만든 가족에게서 받고 있으면 더 감사해야 하는데, 이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내가 이 행복을 누리면서도 왜 우울하게 이러고 있는지. 왜 슬픔을 껴안고 놓아주질 않는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견디지 못한 슬픔들은 곧 도망갈 곳 없이 여기저기로 흐른다. 바닥에도 스며들고, 내가 보고 있는 노트북에도 딸려온다. 내가 치고 있는 타자소리에도 담겨있고, 내가 마시는 물에도 고여있다. 슬픈 건 막을 수 없는 둑처럼 흘러나와 계속 계속 어디론가로 흘러간다. 그것이 흐르고 흘러 23년의 꼬박 반정도의 해가 지날 무렵에서야 터져 나온다. 나는, 나의 아이와 강아지를 껴안고 그 슬픔을 견디는 것 말고는 달리 뭘 해야 할지 몰라 서성였다. 그저, 서성였다.
어디에 속할 순 있을까. 속하지 못하는 걸까. 여전히 어려울까. 알 수 있을까.
종이에 끄적이며, 주어진 과제를 연필로 쓴다. 그걸 곧 버릴걸 알면서도.
그렇게 침식되어 가는 나의 모습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나는 울음을 그친다.
이제 그만 울자고, 툭툭 털어내고 다시 슬픔을 껴안는다.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처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