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연 Jun 04. 2023

산책인지 고행인지

눈을 떠보니 아침이다. 정신없이 잠들었다. 어제는 산책인지 극기훈련을 한 건지 헷갈리지만 여하튼 밤잠에 그냥 확 빠진 것만은 분명했다. 역시 몸이 고되야 잠이 잘 오는 건가.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나가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다 같이 공원에 다녀왔다. 꽤 많이 걸었고, 점심도 안 먹은 채로 빙수를 먹었고, 또다시 차가 있는 곳까지는 꽤 많이 걸어왔어야 했다. 갈 때도 내내 우울한 얼굴로, 올 때도 내내 우울한 얼굴로 왔다. 가기 싫은 마음이 일단 제일 컸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내 마음을 뒤로하고 신랑이 가자는 대로 움직이긴 했는데 죽을상을 하니 신랑도 상심이 컸는지 내내 뚱했다. 우리 가족은 둘째 아이 말곤 신난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고행인지 산책인지를 하고 돌아와서 씻고 저녁을 먹고(신랑이 있으면 삼시 세 끼를 다 먹게 된다) 애들 재우러 들어갔는데 나야말로 잠이 들었다. 애들을 재우고 bts 온라인 콘서트 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는데 애들이 늦게 자는 바람에 콘서트는 무슨, 나까지 잠이 들어버렸으니 다 날아간 셈이다.



그리고 아침.




눈을 뜨니 아침이다. 어, 아침이네. 나는 얼른 일어나서 이를 닦고 거실로 나왔다. 이미 깨어있는 사람들은 나 빼고 전부이다. 더 자도 된다며 말해주는 신랑이 있었다. 괜찮다 말하고 캡슐커피를 두 잔 내려 신랑 한잔, 나 한잔 마신다. 평일의 오전은 몽롱한 잠결에 신랑을 보내곤 하지만, 휴일의 오전은 늘 이렇게 한가한 아침을 맞는다. 그것이 신기하고도 새로워서 나는 한참 동안 잠을 깨우며 생각한다. 오늘이 휴일인가. 토요일이었나. 일요일이었나.. 하면서 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있다. 나는 잠을 잤고, 커피를 마셨고, 밥을 먹었고, 비타민까지 챙겨 먹었다. 분명히 '현재'에 일어난 일들인데 전부 과거형이 된다. 지나치면 무엇이든 과거가 되는 시간들. 붙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흘려보내면 그만인 날들. 평범한 일상. 나는 늘 이런 것을 오랫동안 원해왔다고 생각한다. 불안했던 지난날들에 늘 꿈꿨던 건 그냥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날들. 그냥 평범한 하루. 특별할 일도 없고 엄청나게 재밌진 않아도 괜찮은 하루. 정도 말이다.



나는 그래서 지금을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지금은 필요하지 않은 과거와 미래를 잠깐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생에 가장 최고의 순간은, 늘 현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작가의 이전글 그것은 어디서로부터 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