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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n 23. 2023

그런 날



가만히 몸을 뉘인다. 바닥에 드러누운 내 등이 평평한 바닥면과 만나서 서늘하다. 나는 누워서 잠시 생각해 본다. 불안이란 건 뭘까.라는 고요한 생각을 되뇐다. 약을 먹으면서 불안을 통제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이렇게 멍 때리는 낮이 다가오면 왜 먹으면서까지 통제해야 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고 있다고. 살고 있다고 또다시 되뇌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면 얼음을 잔뜩 넣은 컵에 술 빼고 무슨 음료든 넣어 마신다. 아작아작 씹는 얼음소리에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네, 라며 자기부정을 한다.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자책감은 곧 한편으로 밀려난다. 씹는 얼음에 집중해보기도 한다. 얼음이 맛있다.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차가운 얼음의 식감을 느낀다. 얼음을 먹을 때면 잠깐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이다. 나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주변의 시간은 멈춰있는 느낌. 그래. 나는 그런 느낌을 꽤 좋아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뭐가 있을까. 좋아하는 게 뭐가 있더라. 나는 아이가 만든 열기구 모양의 레고를 보며 고민해 본다. 빨강. 노랑. 분홍. 초록이 잔뜩 가득 있는 장난감 열기구 모형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내 시야에 저런 장난감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뭔가 관찰할 게 있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집중을 요하는 일이라 잡생각을 할 틈이 없다. 나는, 그런 시간을 늘 원하곤 했다. 쓸데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생각의 집중을 요하는 그런 시간들. 가령 아이의 문제집을 아무 생각 없이 해설집을 보며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와 직선을 긋는 일을 하는 일 같은 것들. 단순한 노동.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행동들. 뭐 그런 것 말이다.



덩그러니 누운 몸으로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해 본다.

가끔은 먹는 걸 생각하는 게 피로로 느껴져 올 때도 있다. 왜 인간은 먹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올 때면 나는 맛있는 디저트를 생각해 본다. 그래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소소한 행복을 갖고 있는 거겠지. 내가 마시는 커피 한잔이 나의 하루를 시작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처럼. 피로가 불쾌감으로 바뀌기 전에 좋은걸 더 생각해 본다. 여전히 음식 하는 건 싫지만 맛있는 건 세상에 많다고 생각하며.


아이와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조제될 약을 기다리는데 아이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 하나가 삐죽 올라와서 뽑아줬다. 엄마는 더 많다는 아이의 장난기 어린 소리에 엄마가 늙어가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나의 아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세상 가장 솔직한 표정을 하며 나를 안아준다. 엄마가 늙는다고 하니 싫은가 보다. 엄마. 요즘엔 120살까지 산대. 허허. 나는 웃기만 한다. 그렇게까지 오래 살 생각은 없었는데,  나를 끌어안는 아이의 두 손이 어른인 나보다 더 큰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 그렇게 아이들은 가끔 어른을 의도치 않게 위로해 준다. 흰머리가 생겨서 서글픈 어떤 여자를 안아주는 아이는 그 어른보다 훨씬 더 큰 어른 같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애틋하다.



더운 열기가 후끈거려 에어컨을 틀고 창문을 닫았다. 밖의 소음이 창문으로 어느 정도 차단된다. 일어난 김에 뭐라도 써야지. 라며 빈 화면을 켰다. 무수히 쏟아지는 하고 싶은 말들이 제대로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하는 말을 더 많이 하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말이야 너무 많이 사랑해.라는 말보다 이거 했니 저거 했니 라는 지시 같은 말 같은 걸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움직이기로 결심하며 일어난다. 그런 날, 이유 없이 뭔가 쓰고 싶은 날. 지겨운데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날. 그런 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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