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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n 24. 2023

무심한 계절



무심히 어느 한 계절을 지나간다. 장마라는 얄궂은 비가 한껏 퍼부어지고 나면, 폭염이 찾아올 것이다. 너도나도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산으로든 바다로든 여행 갈 채비를 하고 움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서 어느 방 안에 틀어박혀 에어컨바람을 쐬며 이런 게 여행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굳이 편을 들자면 나는 후자에 가깝지만 전자로써의 의무를 다 해야 하는 어른과도 같다. 때가 되면 적절히 바다를 찾아주어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 아이들이 모래사장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허락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 임무. 너무 깊은 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큰 소리로 뙤약볕에서 갖은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임무.. 정도랄까. 맞다. 그 정도인 것 같다.


하지만 가끔 나는 생각한다. 홀로 무심한 방에 틀어박혀 앉아 세상과 단절된 채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대자로 누워있는 나를.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인지. 숨이 아직 붙어있기에 살아있는 것인지 도저히도 풀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나를. 그렇지만 그 생각은 금방 잊힌다. 역시 스스로의 고립은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러한 무심한 계절을 좋아하지만, 즐겨하진 않는다. 마음껏 누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만 먹을 수 있는 과일들. 음식들. 온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의 계절은 어디쯤에 있을까. 내가 마음껏 누리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계절은 언제 오는 걸까. 아마도 이 계절이 지나가면 또 다른 계절이 올 터인데 나는 그때는 자신 있게 너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법이다.


마음먹기에 달린 우리의 삶이 맞는 거라고 늘 생각하지만, 생각만으로 그치는 그 삶을 묵묵히 수행해 내기란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삶이 불행한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할 것 같지만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 말엔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언제나 중간지점. 애매모호한 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 위에 서있듯이 느끼는 감정들이 삶이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그래도, 곁에만 있어도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나는 아주 조금은 행복한 걸지도.


무채색인 나의 세상 속에서 계절 속에 있는 내 소중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내 세상도 계절색깔로 물들여질 것만 같다. 나는,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여름에 태어난 나의 아이들과, 겨울에 태어난 나의 남편에게 다가가서 계절을 느낀다. 싫었던 것들이 좋아진다. 여름의 너희들과, 겨울의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행복은, 늘 그렇게 옆에 있다는 걸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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