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라떼를 시켰다

by 김태연



아침에는 어제 사온 식빵으로 토스트를 만들었다. 남편은 종이호일에 싸서 가는 길에 먹으라고 보냈고, 아이들은 반씩 잘라주었다. 나는 귀찮아서 데운빵에 그냥 잼을 발라먹는다. 딱 두 개 만들 요량으로 만든 거라, 내 몫이 남지 않았다. 별로 상관하진 않는다. 처음부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

멍한 정신으로 신나게 멍 때리다가, 큰아이를 보내고 둘째 아이도 보냈다. 피곤함과 무기력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네발 뻗어 자고 있는 강아지가 부럽다. 난 낮에는 너무 잠이 안 온다. 밤에 좀 일찍 잤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잠들었나 보다. 먹은 약이 아직도 덜 깨어있는 느낌이다.


바닐라 라떼를 기어코 시키고야 말았다. 내 오늘은 먹으리. 결제 버튼을 과감하게 누르고, 어서 오기만을 기다린다. 엎드려 누워서, 나는 왜 존재하고 있나 라는 사춘기적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지, 사춘기 때도 안 왔던 존재의 물음을 이제서야 하고 있다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 생각하지 않기 시전을 했다. 그 사이에 바닐라 라떼가 왔고, 마시면서 글을 쓰는 중이다. 음. 맛있다. 바닐라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커피에 들어간 바닐라는 싫어하지 않는다. 향도 달달하고, 맛도 달달하다. 당 충전이 조금씩 되는 느낌이다. 커피콩으로 어떻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바닐라 시럽을 넣는 건지, 무슨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맛있다. 조금씩 아껴먹으려니 곤욕이다. 원래 성격 같으면 벌컥벌컥 한 번에 들이마시는데, 맛있으니 아껴먹는 중이다. 이럴 줄 알았음 한 세네 잔 시킬걸 그랬다. 만족스럽게 먹으려면 그 정도는 마셔줘야 하나보다.


아무도 없는 오늘이 낯설다. 집이 이렇게 조용했던가. 얼마 안 남았겠지 이런 날도.

곧 있으면 아이들 방학이 돌아오니 말이다. 마음이 졸아지다 못해 점점 쪼그라든다. 방학이라니! 나에게도 방학을 달라! 하고 말하고 싶다. 흐흐. 이 정도면 나도 제정신은 아니군, 싶다. 살짝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인 것 같다. 더위를 먹은 건지, 더위를 먹으려고 이러는 건지.


노트북 옆에 놓인 한자 학습 계획표가 눈에 띄었다. 아들이 매일 하루에 한 개씩 한자를 할 때마다 체크하는 종이가 있고, 날짜를 쓴다. 우리 아들은 나보다 부지런하다. 매일 학교도 가고, 축구 학원도 정해진 요일에 가고, 해야 할 공부도 한다. 나보다 더 바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게으른지! 정말 우리 아들의 발끝도 못 따라갈 만큼 게으를지도 모른다. 매일 학교를 가는 아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정말 대단한 건 그 수업시간 내내 앉아있다는 것이다. 지루한 수업(물론 지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앉아서 버티다니! 초등학생은 정말로 대단하다. 다 큰 어른도 앉아서 수업만 들으려면 좀이 쑤신데 어린아이들이 그걸 하고 있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물론 나도 다 겪어온 길이지만 말이다)


이미 다 마셔버린 라떼 뚜껑을 열고 얼음을 하나씩 깨물어 먹는다. 아쉽다. 벌써 다 먹었다니. 나는 아쉬운 마음을 얼음으로 달랜다. 이걸 다 마시면 청소기를 돌려야 하나, 나는 잠깐 고민에 빠진다. 오늘은 청소기 돌리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아아, 인스타라도 봐야 정신 차리려나. 깨끗한 집 좀 보고 자극받아야 하나. 요즘엔 인스타도 별로 재미없다. 다들 의식하며 사는 삶을 산다. 나는, 그런 삶이 좀 요즘엔 눈에 띄게 잘 보인다. 그리고 루즈함을 느낀다. 쉽게 질려하는 취향 때문인 것 같다. 인테리어 한 집들도 멋있고 예쁘지만, 요즘엔 스탠다드 한 집이 좋다. 그냥 아파트에서 지어놓은 그대로의 집 말이다. 그런 것처럼 오늘 나는 좀.. 권태롭다.

동글동글, 잎이 동그랗게 생긴 유칼립투스 화분이 나한테 말하는 것 같다.

너도 권태롭냐, 나도 권태롭다.라고. 그것도 동글동글, 그 귀여운 잎으로 말이다.

어차피 이럴 거 권태로움에 몰입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나는.. 더 할 말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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