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0대와 20대를 어떻게 보냈더라. 10대 때는 화목하지 않았던 가정과 친구들 사이의 우정문제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고, 20대는 막연한 취직과 갑작스레 찾아온 임신과 출산 때문에 힘들었다. 30대는 어땠지. 나는 가늠해본다. 쉬이 과거가 떠오르지 않는다. 잊혀진 내 과거에, 나는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지나갔으므로.
문제가 많다는 건, 상황이 복잡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문제가 많았다. 엄청난 일탈을 하진 않았지만, 멀쩡한 직장에 취직하지 못했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할 거란 생각이 팽배했다. 그야말로, 나 스스로 찐따를 내가 만들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달란 책이 나와서 어찌나 다행인지.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랐다. 나와 같은 세대들은, 어쩌면 다들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랑할 줄 모르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껴안을 수 있을까. 좋은 학교를 나오지도 못했고, 공부는 그저 그렇게 했으며, 친구들과 좀 어울릴만하면 금세 또 멀어진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고, 기껏 간 전문대에서도 그저 그렇게 보냈다.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건, 취직하려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가정에 보탬이 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테지.
화목한 가정이 부러웠고, 유복한 부모님이 부러웠고, 유능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비단,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나마 취직을 해 낸 남편에게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럴 정도로, 나의 과거는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찌질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 찌질한 나도 나였다. 과거를 없앨 수 있다면 없앴을지도 모른다. 새 출발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1년 전의 나도, 3년 전의 나도, 찌질했다. 내가 과연 나 스스로 자랑스러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기는 할까. 나의 과거는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아주 열심히도 나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지금 현재. 그 생각들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화목한 가정도, 유복한 가정도, 가정에 보탬이 되지 않는 나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나도, 대학생 때 술 마시며 상황을 한탄하던 나도, 임신과 출산에 처음이라 막막했던 나도, 모두 나였다. 모든 게 처음이라 당연히 서투른 법. 나는 지금도 서투르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남편을 대하는 것도, 살림도, 그리고 삶도.
서투를 나를 당연히 끌어안아야했다. 그 모든 것은 나였음을, 부정하던 나도 나였음을. 끌어안고, 부비적거리고, 그럴 수도 있었노라며 이해했어야 했다고 이제서야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해했어야 했다고.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도, 내가 바꿀 수 있었던 상황도,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었고, 선택할 수 없었음을 이해하고 알아줬어야 했다고.
나는, 지금의 나를 껴안는다. 이제서야 내가 보인다. 과거의 발목에 사로잡혀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피해의식으로 인해 나를 끌어내릴 필요는 없다. 다, 나다.
서른 중반. 엄청나게 깨달은 건 없지만, 그 모든 나를 부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나는 폭염이 쏟아질 이 한여름 오전에 생각한다. 그저, 조금 더 안아주어도 된다고, 잘하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자아도취는 하지 않을 것. 나를 안아준다고 나를 너무 사랑한다고, 스스로 나르시시즘에 빠지지는 않을 것. 나의 상태를 조금 더 멀리서 지켜볼 것. 객관적으로 한 번쯤은 돌아봐도 된다 생각할 것. 나를 너무 채찍질하지 않을 것. 그러나 분명 좋은 자극과 안 좋은 자극이 있다는 것을 자각할 것. 그런 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