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덥다. 흐리고 습하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언제 오려고 이렇게 습한 건지. 나는 아이들과 남편이 잠깐 나간 사이 얼른 창문을 열어젖히고, 청소기를 돌린다. 습한 기운이 창 안으로 한 번에 덮치는 느낌이다.
오늘은 첫째 아이의 생일이다. 원래는 나가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몸이 안 움직여준다. 이상하리만치 몸은 정직하게도 아이들 생일이 다가오거나, 당일이 되면 찌뿌둥하고 아프다. 둘 다 7월생이라 7월은 거의 정신을 못 차린다고 보면 된다. 떨떠름한 나의 말투에 남편은 알겠다는 듯 오늘은 나가지 말자고 했다. 대신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갔는데, 그것조차도 움직이기 힘들어서 다 내보내고 집이라도 치우자 싶어서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구석구석 먼지들이 청소 통에 쌓여간다. 매일 왜 집을 청소해도 먼지가 나오는가. 그게 늘 의문이다.
집에는 같은 브랜드의 무선청소기가 있지만, 무거워서 잘 쓰지 않는다. 실은 팔아버리고 싶은데 남편이 사줄 때 고가로 사준 청소기라 함부로 못 팔겠다. 게다가, 내가 부탁해서 산 것이니 더더욱 팔기가 힘들다. 나는 멀쩡한 무선청소기를 놓아두고 유선청소기를 쓴다. 빨아들이는 힘이 유선이 훨씬 강하고, 청소한 맛이 난다. 일단 손잡이가 무겁지 않다. 물론 따라오는 줄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좀 귀찮지만, 그래도 청소는 역시 유선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집구석 구석에 청소기 머리를 들이민다.
청소기를 다 돌리니 땀이 흥건하다. 청소기 돌리고, 쏟아놓은 블록을 통에 정리하니 아이들이 왔다. 땀에 젖은 아이들은 덥다며 옷을 벗어재꼈다. 둘째는 남편이 얼른 닦이고, 나는 같이 나갔다 온 강아지의 목욕을 맡았다. 큰아이는 씻으라는 나의 말에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닦았다. 나 빼고 다 샤워하니 개운한 기분인가 보다. 강아지를 다 씻긴 후 대충 화장실 청소도 했다.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네. 나는 집에 있어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아 조금 곤란하다. 주말은 쉬어줘야 하는 날인데.. 나도 주말에 쉬어야 평일에 애들한테 짜증을 덜 낸다. 사람은, 주말에 쉬어줘야 한다. 그게 전업주부든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말이다.
다 하고 나니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나의 남편은 낮잠을 자고 있고, 큰아이는 게임을 둘째 아이는 큰아이가 하는 보고 있다. 조용해진 자기만의 시간들을 가지는 나의 사람들을 보며 노트북을 펼쳤다. 오전까지만 해도 써지지 않던 글은 써지지 않았고 오늘은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런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아까까지만 해도 안 써지던 글이 조금씩 써진다.
그것도 큰아이의 생일에 아무 데도 나가지 않은 오늘 말이다. 다행히도 큰아이가 집돌이라 어딜 나가지 않는 거에 서운해하지 않는다. 케이크도 겨우 사 온 것이다. 자기 생일만 아니었음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체 학교는 매일 어떻게 가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실은 내가 학교 안 가면 엄마 아빠 경찰서에 잡혀간다고 말해서 가는 걸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쨌든 큰아이가 기다리던 방학이니 그것만으로도 신난 모양이다. 생일에 뭘 하지 않는데도.
생일 선물로 뭘 가지고 싶냐 했더니, 그것도 없단다. 나중에 본인이 기다리는 게임이 나오면 그때 사달란다. 오케이. 이게 웬 횡재냐 싶어서 알았다고 얼른 말했다. 그래 놓고선 케이크는 엄청 큰 것도 사 왔다. 저걸 다 먹을 수는 있을까. 난 겨우 구겨 집어넣은 냉장고 속 케이크가 생각났다. 셋이서 사온 케이크는 평소에 우리가 먹는 양의 2배짜리였다. 뭘 이렇게 사 왔느냐는 말할 틈도 없이 차례대로 씻기고 정리하느라 바빠서 말은 못 했다. 다 먹을 순 있을까. 큰애가 고른 거니, 그러려니 한다. 생일에 어디 가지도 않고 생일선물도 안 받았으니 저 정도 케이크는 골라도 된다. 나름의 의미 있는 소비다.
아까 블록을 정리하면서 언제쯤 이 블록은 안 쓸 때가 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진 버텨야 하나. 나는 조금씩 정리를 하던 것을 잠시 멈춘 상태다. 몰래몰래 버리던 옷들도, 이불들도, 잠시 멈춤이다. 비워서 깨끗해지는 건 좋은데, 나름 힘이 든다. 특히 이불은 정말.. 노끈으로 묶어서 재활용 스티커까지 붙여나가야 한다. 무거워서 두세 번만 왔다 갔다 해도 헉헉거린다. 아무리 미니멀하게 살기로 했다고 하지만 몸이 고달프니 좀 쉬어줘야겠다 싶다. 그래서 잠시 멈췄다.
게다가 방학이니 아이들 끼니도 챙겨줘야 하고 한동안은 못할듯싶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에너지를 늘 남겨놔야 글도 쓰고, 짜증도 덜 부린다. 이제 지지고 볶고 해야 하니, 내게 기본적으로 있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비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니 그곳에 에너지를 써야 한다. 나는 월요일부터 뭘 해야 하나. 틈만 나면 고민하고 있는데, 답이 안 나온다. 때론 시간의 다가옴을 차라리 정통으로 맞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결국 월요일이 되어봐야 안다.
냉장고에 붙은 큰아이의 방학과제 프린트가 보인다. 저렇게 할게 많은가. 방학 동안 할게 많네. 많이도 체크했네. 다 못하면 어쩌려고 무슨 자신감으로 체크한 걸까. 그럼에도 나는 큰아이를 보며 또 배운다. 맞네. 저렇게 체크하면서 하면 다 할 수도 있겠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