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로 이사하며 호기롭게 구매했던 스타일러에 문제가 생겼는지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아마 청소기를 돌리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었다. 또 무슨 일인지 잘 돌아가던 유선 청소기가 누수된 스타일러를 확인하자마자 멈췄다. 유선청소기가 작동이 안 되다니, 분명 1분 전까지만 해도 힘들게 줄을 끌어가며 밀고 있었는데 말이다.
허탈한 마음에 청소기가 열받아서 그런가? 싶어 일단 코드를 뽑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얼른 서비스센터 기사님이 오는 걸 예약했다. 일주일이나 걸리는 예약 날짜였지만 클릭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급하다고 재촉해봤자 어차피 이미 정해진 날짜들이니 말이다.
쓰지도 않던 무선 청소기를 돌리며 핸드폰으로는 유선 청소기의 값을 알아본다. 신혼 가전 살 때 구매한 거니 9년이나 넘게 쓴 셈이다.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유선청소기는 값을 뽑고도 남았다. 고장 날 수 있겠네. 나는 수긍했다. 잘 버티고 있어 줬구먼. 내가 이사를 두 번이나 할 때도 같이 다녔으니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괜히도 짜증이 났을 일일지도 몰랐지만 생각보다 멀쩡한 나는 최근에 산 에세이집을 펼쳤다. 직장인의 비애가 담긴 글들에 안쓰럽기도 하고, 직장 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내가 공감도 한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같이 유치원 다니는 아이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잘 지내고 있느냐며, 자신들은 코로나에 또 걸렸다며. 아이고 그랬구나. 고단하겠네요.라고 얼른 답문을 쓰는 내 손가락이 머뭇거린다. 여기서 고단하다는 표현을 써도 되나? 누군가한테 답장을 하거나 말을 할 때 한번 생각해보는 버릇을 요즘에 들이는 중이다.
그 버릇은 꽤나 심오해져서 가끔은 답을 못할 때도 많다. 머리에 필터가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달까.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건지, 이렇게 답장하는 게 맞는 건지?라고 끝없이 의문하게 되면 결국 제때에 답장해야 할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건 별로 안 좋은 버릇인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이 너무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보다 못하 다는걸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수리가 안되면 사야 하나. 핸드폰으로 청소기 가격을 비교하다가 금세 손을 거두어버린다. 이런 건 그냥 보고 사야지. 최저가 산다고 매장에도 없는 거 사면 나중에 골치 아파질지도. 나는 아줌마스러운 가끔 이런 생각들이 좋다. 뭔가 사람을 신중하게 만든달까. 이럴 때면 나라는 사람도 생각이라는 게 있는 사람 같다.
물건 하나 사는데도 예전처럼 무턱대로 사지 않는다. 나름 경험의 노하우는 아니지만, 살면서 조금씩 고쳐지는 부분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낯설지 않게 천천히 변화하는지라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면 헉. 아줌마 같아.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지 이건 아줌마의 신중함이지. 라며 끄덕이게 된다. 나름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뭔가에 신중 해진다는 건, 나이가 들어야 알 수 있는 법인 것 같기도 하다. 패기 있던 젊은 시절에는 몰랐던 방법이다. 젊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로 많이 변했다. 물론 지금도 젊지만(?)
스타일러를 제습기 대신(제습 용도도 된다) 쓰고 있었는데, 막상 고장 나니 아쉽다. 제습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나. 하긴 어제오늘 엄청 습했었지. 물이 안 새면 이상할 정도로 습한 날씨였다. 어서 기사님이 오길 기다리며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스타일러를 바라본다. 너무 많이 돌렸나? 하는 의문의 생각을 가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