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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Jun 27. 2022

그래서 떠났다

내 민족을 찾아

 나만, 정말 나만 그런 걸까.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여기가 아니란 생각이 자주 들었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어떤 시스템 안에 갇혀 진실을 묵고 한 채 지내는 것 같았다. 이 결혼 생활도 분명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맞는데 그걸 나만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지례 그래 왔으니, 너만 그렇게 유난 떨지 말고 남들 다 하듯이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 이처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말이 또 있을까. 별거 아닌 그것들이 쌓이다 보니 별것이 되어 결국에 마음에 병이 들었다. 결국 참는 게 이기는 거라는 게 맞을까 과연. 해결하지 못하고 쌓인 불만들을 거스르고 이겨낼 만한 자신이 없어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자유를 누리되, 다른 이의 눈에 밉보이지 않을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돈 없고 백없어 서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곳을 마음속 깊이 갈망해왔다. 언젠가 한 번 남편에게 이민 얘기를 했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혼자서 막연한 기대로 어느 나라를 갈지 고민하다가 문득 스웨덴이 떠올랐다.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보았던 육아 관련 방송과 책 등 통해 난 북유럽 나라를 자주 접했다. 복지강국의 나라, 평등이 현실에서 행해지고 있는 나라. 상식이 그대로 통하는 나라. '스웨덴의 교육'편에서 한 선생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한 수업에 유독 잘하는 친구도 있고 반대로 잘 따라가지 못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앞서가는 친구들을 그룹화시켜 그들을 특별히 전문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못 따라가는 친구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그들의 교육 관념에 난 충격을 받았다. 비단 교육뿐만이랴... 동시대에 살면서 누군가는 저런 문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서러움과 억울함마저 느껴졌다.


이후로 나는 스웨덴에 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어느 날 한 블로그를 통해 스웨덴에서의 그녀의 삶을 엿보게 되었다. 스웨덴 남부, 한 섬의 작은 공예학교에서 그녀는 남편과 함께 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일상과 그녀의 생각을 읽으면서 참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자연과 환경을 누리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듯 보였다. 수더분한 그곳의 정취가 내 마음을 끌어당겼고 점점 더 알고 싶어졌다. 북유럽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면서 그곳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알아갈수록 나와 비슷한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렇게 2년 동안 마음을 키우다가 마침내 2017년, 그녀가 다니는 그 학교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내준 과제도 성실하게 하고, 요구하는 사항들을 챙겨 난생처음 '유학'의 꿈을 실현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한 달 후, 메일로 온라인 면접을 하겠다는 통지를 받고 며칠 안에 난 그들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2주가 지났을 때 메일을 통해 '불합격'통지를 받고 나서야 다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꿈을 꾸어온 시간들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 스웨덴 생각을 안 하기로 마음먹고 지내다가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집 문제로 사정이 생겨 우리 가족은 당분간 나가서 지낼 공간이 필요했다. 서울 한복판에 단기로 지낼 월세값은 만만치 않았고 두 번의 이사비용까지, 그냥 나가는 돈이라는 생각에 너무 아까웠다. 그러다 마침 여행이 번득 떠올랐고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마침 이직을 마음먹고 있던 그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렇게 우리는 3개월 간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아이를 데려가는 첫 해외여행이라 준비할 것이 많았다. 걱정이 당연히 많이 들었지만 가면 잘 될 것 같은 믿음으로 2017년 8월, 난 8살 난 아들을 데리고 용감하게 비행기를 탔다.




마티와 


집을 나선 순간부터 계속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고 하나를 거치면 또 하나의 숙제가, 그리고 또... 계속 이어졌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당연히 모르는 아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반도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긴 비행을 마치고 마침내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여기까지의 여정도 녹록지 않았는데 아직도 호스트를 만나려면 기차를 타고 약속한 장소로 찾아가기까지의 미션이 남았다. 스톡홀름 역에서 안내방송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탓에 결국 기차를 놓쳐 다음 기차를 타고 밤 9시가 되어서야 호스트와 약속했던 그 역에 도착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양손에 캐리어를 들어 아들을 앞세워 기차에서 내렸다. 한시름 놓고 아들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심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8월이지만 바람이 찼다. 아들의 후드 끈을 당겨 턱 밑에 단단히 묶고, 내 트렌치코트의 벨트를 더욱 당겨 묶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초조하게 호스트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일까? 처음 만나면 뭐라고 인사해야 할까? 마침내 기차가 떠나자 저 쪽 빨간 벽 건물 앞에 한 남자가 웃으며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드는 걸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반가움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어수룩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시선에 그가 가까워지자 입에 또 한 번 미소가 지어졌다. 헝클어진 금발 머리칼, 활짝 웃는 미소, 보헤미안 풍의 바지에 맨발인 그는, 딱 봐도 자유인이었다. 가볍게 악수를 건네고 그는 나의 캐리어를 옮겨주겠다며 건네받았다. 차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용기를 내서 말했다.

"어, 맨발이시네요!"

그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하하, 여름이잖아요"

이 말에 그의 사상이 다 드러났다.


그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우리를 차 안으로 안내했다. 시동을 걸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플레이 리스트를 고르더니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발을 천천히 액셀에서 떼었다. 맨발로 운전하는 모습이 생소했지만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푹 놓였다. 이미 잠에 곤히 빠진 아들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고 바로 앉았다. 몸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리면서 머리를 눕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낯선 배경이 눈앞을 스쳐가고 새로운 냄새가 바람을 타고 지나갔다. 너무도 감미로운 음악소리에 눈이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갈을 밟는 타이어 소리에 잠에 깨어 보니 차가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빙 둘러보고 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너머에 하늘은 아직 옅은 빛이 감도는 늦은 오후 때의 빛깔이었다. 차를 세운 곳 담장 너머에 그림 같은 작은 이층 집이 보였다.


"너의 집에 온 걸 환영해"

라고 말하며 캐리어를 들고 앞서가는 호스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작은 정원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집에 오르는 계단에 잠시 멈춰 집 외관을 보았다. 벽 끝 모서리에 스웨덴 국기가 꽂혀 있고 난관을 따라 넝쿨진 식물들, 계단 옆 벽에는 네 개의 화분에서 자란 방울토마토가 벽 전체를 타고 올라있었다. 조명이 비추는 파란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을 매트 옆에 두고 마룻바닥을 누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노란 전구 빛이 아득하게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 벽, 여기저기에 식물들이 걸려 있었다. 오래된 느낌의 목재 가구와 타 명종 시계. 나무를 조각해 만든 장식물. 나무 마룻바닥 위에 깔린 색색의 카펫. 그리고 집 안 가득한 인도 느낌의 향.

입구 바로 옆에 우리가 묵을 방이 있었다. 문을 열자 침대 두 개가 마주 보며 한쪽 벽을 차지하고, 다른 벽 쪽에 엔틱풍의 큰 소파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흰 타일로 만든 벽난로와 옆에 손질한 장작들이 켜켜이 위로 높게 쌓여있었다. 진짜 불을 펴서 쓰는 건가? 난 아들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까치발로 문밖으로 나왔다. 늦은 시각에 슬슬 배가 고파왔다. 나는 캐리어에서 꺼낸 햇반과 김, 참치 한 캔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천장에서 테이블 가까이 내려온 조명 아래에 빨간 체크 문양의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약간 떨어져 나의 모습을 관찰하던 호스트가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밥을 먹는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밥 한 숟가락을 떠 김과 함께 주었다. 나를 따라먹는 모습에 반가워서 참치 캔을 열어 이것도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노 땡쓰"라며 거절했다.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곧 자기는 '베지테리언'이라고 일러주었다. 나의 형편없는 영어로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고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물어보자 호스트는 이 집에 친구 한 명이 사는데 새 게스트가 온다는 걸 알고 화장실에서 자기 물건을 챙기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 방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나와 다급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호스트는 그가 보통 여름에는 저기서 지낸다며 부엌 창문 밖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나무판자로 지어진 창고. '밥 말리'의 얼굴이 그려진 큰 현수막이 입구 옆에 떡하니 걸려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잠시 멍했다가 이곳에 와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아들은 먼저 잠에서 깨어 자기 물건들을 잔뜩 꺼내 늘어놓았다. 계속 떠나지 않는 미소를 머금은 채 부엌으로 나왔더니 어제 잠깐 인사했던 호스트의 친구가 그곳에 서 있었다.

"어제 인사를 제대로 못해서 미안해, 만나서 반가워, 난 칼이야"

악수를 건네는 그에게 내 이름을 얘기하자 그는 한 번 더 물었다. 내 이름의 발음이 어렵다며 몇 번 반복했다. 호스트는 아침 일찍 밴드 연습을 하러 나갔다고 했다. 그가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는 동안 나는 호스트가 일러준 대로 냉장고 가장 위칸에 챙겨 온 저장음식 몇 개를 넣었다. 햇반을 데우고 김과 참치캔을 열어 아들을 불렀다. 배가 고팠던지 아들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런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그와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나는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내가 스웨덴에 오게 된 이야기, 관심사, 일 등 짤막하지만 서로를 알 수 있는 대화들이 오갔다. 밥을 먹고 난 후 나는 집에서 챙겨 온 요가매트를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는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며 넓은 타월과 책 한 권을 들고 정원으로 같이 나가 웃통을 벗고 조용히 햇볕을 쬐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들은 정원에 있는 그네에 앉아 한참 놀다가 잠이 들었다.


경비를 생각하다 보니 장기간 싸게 묵을  있는 숙소를 찾다가  어딘지도 모르는 스웨덴  시골마을에 달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마티 . 그들과 함께 나의 스웨덴 살이가 시작되었다.





스웨덴으로 떠나기 몇 달 전, 

친구의 소개로 한 여행가를 만났다. 3개월씩 한 나라에 머무르면서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돈은 도대체 어떻게 버느냐는 물음에 사실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게 된 후 가장 걱정거리가 안 되는 게 '돈'이라고 했다. 다른 무수한 것들이 이루어지고 나면 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낀다는 그녀는 스웨덴에 가려는 나의 계획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나와 안 맞는다고 느끼면 떠나야죠. 여기서 태어났다고 해서 맞춰 살 필요가 뭐가 있어요. 분명 어딘가에 당신과 더 잘 맞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있을 거예요. 그게 민족인 거죠. 피가 같다고 해서 민족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요. 자기 민족을 찾아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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