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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Jul 01. 2022

자전거 사고

스웨덴 응급실

마티의 집에서 마트까지 가려면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사실, 할 일이 딱히 없어 시간을 때우기는 좋았지만 가끔씩 정말 필요한 게 있을 때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마티는 동네 중고자전거 주인에게 부탁했지만 마침 휴가 중이라 자전거를 얻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마티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작스럽게 정한 일정에 그는 부랴부랴 준비를 했고 나에게 잠시 따라오라며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안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자전거를 한 대 꺼내더니 한 번 타보라고 했다. 경주용 자전거라 좀 불편했지만 탈만 했다. 그는 이 자전거를 빌려주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진작에 빌려주면 좋았을걸. 뒷좌석이 없어 아이를 어떻게 태울지 고민이었지만 일단 고맙게 빌려 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자전거를 꺼내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자전거 앞 바에 아들을 태워보고는 그렇게 태워가기로 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최대한 천천히 달려 무사히 마트까지 도착했다. 평소보다 2배 빨리,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트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트에 들어갔다. 자전거가 있으니 평소보다 장을 많이 봤다. 장을 마치고  나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다시 향했다. 다행히 내리막길이라 올 때보다 쉽게 달릴 수 있었다. 경사가 곧 급해질 거라 아들에게 다 먹은 사과를 왼쪽 풀밭으로 던지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 엄마......"


아들이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쪽으로 가려는데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다. 잠시 후 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한 2미터 떨어진 곳에 아들이 누워있었다. 자전거 바퀴에 발이 끼인 걸 보고 놀라 얼른 그쪽으로 갔다. 아들의 발을 조심스럽게 빼낸 후 주변을 둘러보니 저만치에 메고 왔던 가방이, 그리고 아까 마트에서 샀던 자두가 길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따끔거리는 손바닥을 펴보니 피가 잔뜩 묻어 있다. 그리고 아까부터 왼쪽 시야가 불편했던 게 왼쪽 얼굴이 부어올라서라는 걸 깨달았다. 아픈 얼굴을 부여잡고 정황을 파악했다. 좀 전에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아들이 사과를 던지려 몸을 왼쪽으로 치우쳤을 때 자전거가 그대로 왼쪽으로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나도 당황스러운데 아들은 얼마나 놀랬을까? 침착해야 했다. 앞으로 걸어가 길바닥에 떨어진 자두를 가방에 주워 담고 일어서려는데 한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괜찮냐며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내가 괜찮다, 고맙다 인사를 하고 자전거 쪽으로 가려는데 그가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내가 저 밑에서 죽 올라오면서 봤는데 당신 한참 동안 기절해 있었어요.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전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저는 그냥 여행객이라 보험도 없고 병원비 낼 돈도 없어요. 정말 괜찮아요."


라고 말했지만 손에 묻은 피를 보니 갑자기 울컥했다. 그는 혹시 머리를 다쳤을지도 모르니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며 바로 휴대폰을 꺼내 구급차를 부르려 했다. 도움은 고맙지만 진심으로 나는 사양하고 싶었다. 스웨덴 병원비가 엄청 비싸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에 절대 병원으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칼이 생각났다. 간호사인 그는 마침 오늘 쉬는 날이라 집에 있었다. 낯선 남자에게 같이 사는 친구가 간호사라 말했더니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칼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도움이 절실한데 통화가 되지 않으니 정말 답답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마친 후 내게 와선 말했다.


 "그 친구랑 통화가 되지 않아서 구급차를 불렀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예요."


젠장!!! 누가 불러달라 했냐고. 미치겠다 정말. 하지만 이렇게 된 거 취소할 수도 없고. 그래, 혹시라도 정말 머리를 다친 것일 수도 있으니 검사를 해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겁에 잔뜩 질린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기다리는데 저기서 승용차 한 대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칼이었다. 마침내 그와 연락이 닿았고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다. 나를 보고 어이없어하는 그에게 부끄러우면서도 왜 이제 왔는지 하는 원망의 마음도 조금 들었다. 몇 분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대원들이 내리자 칼은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들은 구급차에서 보호대를 꺼내 나의 목과 허리에 채우고 나는 들것에 들려 구급차 안으로 옮겨졌다. 칼은 아들의 손을 붙잡고 앉아 상황을 천천히 설명하고 엄마가 다쳤으니 본인 차를 타고 병원까지 같이 가자고 타일렀다. 엄마와 떨어지는 걸 겁내 할 걸 알았기에 울구불구 난리 칠 줄 알았지만 아들은 울음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의젓한 모습을 그날 처음 보았다. 대원이 건네준 곰돌이 인형을 안고 아들은 칼의 차를 타고 따로 병원으로 따라왔다. 구급차 안에서 대원은 나에게 나이가 몇인지, 이름이 뭔지 물었고 다 괜찮아질 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살면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건 처음인데 그게 하필이면 스웨덴에서라니. 병원비에 대한 걱정을 끝까지 떨칠 수 없었다. 병원이 얼마나 멀었는지 한참 후에야 도착했고 나는 곧바로 침대에 옮겨져 응급실로 들어갔다. 가는 내내 천장밖에 보이지 않았고 갑자기 무서워졌다. 병실에 도착하자 그들은 내게 아스피린을 주입할 것이라고 이르며 바지를 벗겼다. 창피하거나 할 것도 없이 그냥 빨리 검사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들이 무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잠시 후 내 침대는 접수하는 곳에 이르렀다. 누워있는 나에게 한 여자 간호사가 오더니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전 필리핀에서 왔어요, 그러니 우리는 이웃인 거나 다름없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다 잘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나를 안심시켜주려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그녀는 일하는 도중에 계속해서 나에게 와서 말을 걸고 갔다. 누워있는 동안 칼이 나에게 한국 집 주소를 물었다. 옆에 있는 그를 보니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가 일하는 병원으로 나를 이송한 것이다. 그냥 가까운 데 가면 될 걸 굳이 뭣하러 이송 비만 더 들게...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나는 촬영실로 들어가 CT를 찍고 다른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발이 끼었던 아들도 엑스레이를 찍고 간단한 검사를 마쳤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또 한참이 걸렸지만 아들은 내내 응석 한 번 부리지 않고 내 옆에 바짝 붙어있었다. 사실 이날 나는 아들이 조금 달라 보였다. 전에 본 적 없던 어떤 듬직함이 느껴졌다. 고마우면서 미안했다.

잠시 후 칼이 결과지를 가지고 왔다.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다행히 아들의 검사 결과도 괜찮았다. 칼은 택시를 불렀으니 잠시 앉아 쉬라며 커피를 건넸다.


다음날 이탈리에 있는 마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자전거 사고에 대해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난 괜찮다고 걱정할 거 없다고 답장을 보낸 후, 번득 또 하나의 걱정이 들었다. 마티의 자전거! 그렇게 넘어졌으니 고장 났을게 뻔했다. 나중에 칼을 통해 자전거를 근처 이웃집에 맡겨두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제 나는 자전거 수리 비용과 병원비까지 두 가지 돈 나갈 것에 대해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마티가 여행에서 돌아왔다. 난 그에게 사고에 관한 얘기를 했고 자전거에 대한 수리 비용을 내가 낼 것이니 걱정 말라고 일렀다.


그리고 며칠 후, 마티가 내 방을 두드렸다.


"너한테로 우편물이 하나 왔어, 아마 병원인 거 같은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긴장된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3장의 종이 마지막 장에 숫자가 보였다. 20000KR.

이게 얼마인 거지? 계산기로 두들기다가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자그마치 250만 원. 믿을 수가 없어 당장 이층으로 올라가 마티에게 종이를 보여줬다.


"여기 이 숫자가 내가 내야 할 금액이 맞는 거야?" 


그는 한참을 보더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꽤 많이 나오긴 했는데 보통 자국민에게는 이 정도 금액이 나오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네가 외국인이라 이렇게 많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종이를 들고 터벅터벅 일층으로 내려왔다.

다음 날 나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아가 금액을 정산했다. 청구서를 받은 직원은 금액을 확인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꼬인 마음을 괜히 그녀에게 내비쳤다.


"아니 무슨 병원비가 이렇게 비쌀 수가 있어요. 정말 너무하네요."  

"안 그래도 방금 금액이 너무 커서 확인 전화를 했는데 이 금액이 맞네요. 외국인이라 보험이 없어 그대로 청구된 거 같아요."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이 모든 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빨리 잊어버리기로 했다.



정원에서 아들과 함께 땅따먹기를 하며 노는데 차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티의 빨간 벤 이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트렁크에 자전거 두 대가 보였다. 둘 중 하나가 어린이용 자전거인 걸 보고선 기쁜 마음에 얼른 뛰어 내려갔다. 마티는 자전거를 내리며 선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중고숍에서 공짜로 얻은 거지만 클래식하고 마음에 들었다. 그는 오래된 자전거라 타이어를 갈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새 타이어도 같이 사 왔다. 지하 창고로 내려가 장비를 꺼내 타이어 교체하는 것을 내게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선물로 받은 마당에 직접 수리까지 해주는 그의 말을 경청해서 성의 있게 들었다.


"이제  혼자 해 볼 수 있겠지?"


한쪽 바퀴의 타이어를 완벽하게 교체하고서 그는 나머지 하나를 내게 건네면서 장갑을 벗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라,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그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마티는 항상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다 해주지 않고 말로 설명하거나 방법을 알려주기만 했다. 처음엔 그게 당황스럽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 경험으로 난 자전거 타이어 교체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무거운 바위를 옮기는 법을 배웠다. 불을 지피는 법, 낚시하는 법 등을 그를 통해서 배웠다. 친절한 마티는 아동용 좌석까지 챙겨 와 내 자전거 뒷좌석에 고정시켜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들을 안전하게 태우고 장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마티의 자전거는 내가 수리 비용을 낼 필요 없이 그가 직접 고쳤다. 완전히 고쳐지지 않았다고 불만족스러운 그의 얼굴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처음에 돈을 낸다고 했을 때 당연한 거라고 말했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병원비는 여행 오기 전 들었던 여행 보험으로 90% 이상을 청구받을 수 있었다. 나의 모험심은 사건을 만들었고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 여러 사람이 관여하게 되었다. 평소 남에게 해 끼치는 일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나는 얽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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