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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Jul 08. 2022

첫 경험

 짜릿하거나 후회스러운


여태 살면서 클럽을 딱 한 번 가봤다. 심지어 대학 시절엔 단 한 번도 안 가봤다. 친구들한테는 남자 친구 때문에 못 간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춤추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딱히 출 일도 없었다. 몇 년 전, 영어학원에서 만난 동생이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며 한 날 이태원에 데려갔다. 술을 좀 마시고 취기로 무장을 하고 갔던 클럽. 너무 어두워서 사람 얼굴 파악하기도 어두운 그 지하공간에서 난 땀이 나도록 춤을 췄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춤을 좋아하는구나.


오늘따라 칼이 들떠있다. 웬일인고 하니, 누나가 떠나기 마지막 날인만큼 다 같이 밖에서 춤을 추자는 것이었다. 근처에 사는 이웃들에게 연락을 하고 사람들을 더 부르려 했지만 결국 멤버는 우리가 다였다. 칼은 마당으로 나와 난로에 불을 만들었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는 데다 사람도 없고 해서 어색했지만 술을 먹고 나면 슬슬 편해지겠지 생각했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할 때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땡'하고 시작하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고 눈치만 살폈다. 잠시 후 에바가 밖으로 나왔고 한참 후에 마티가 어기적 거리며 나왔다. 칼은 동네가 떠나가라 음악을 크게 틀었고 난 아들과 불 앞에 앉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음악을 듣고 있던 에바가 일어나더니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누나를 보고 칼은 불을 지필 때 썼던 긴 막대를 들더니 보기 민망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마티가 집안으로 뛰어 올라가더니 천 쪼가리를 허리에 두르고 내려왔다. 눈을 감고 음악을 음미하던 그는 몸을 숙였다가 다시 발밑에서부터 몸을 꼬고 리듬을 타며 천천히 일어섰다. 아니, 이렇게 시작한다고? 아직 술도 안 마셨는데? 술이 계획에 있긴 한 건가? 난 너무 당황스러워 칼에게 우리 혹시 술은 안 마시냐고 했더니 굳이 마셔야 되냐고 한다. 정말 미치겠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아들마저 기분이 업되어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는  안 춰?"


라고 하는데 정말 얼굴이 달아올라 어찌할 줄 몰랐다.


"아냐, 엄마는 조금만 더 있다가......"


빨리 이 분위기에 적응하고 싶었는데 너무도 멀쩡한 정신에 몸은 더 움츠러들었다. 마음속으로 백번을 스스로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곤 눈을 질끈 감고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막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숙여 시선을 땅에서 천천히 불 쪽으로 응시했다. 활활 타는 불꽃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맨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마당을 걷다가 음악에 집중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냥 리듬에 맞춰 몸을 슬슬 움직였다. 그들은 여전히 춤에 취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고 각자 스타일대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구나. 나의 몸은 점점 움직임이 커졌고 더 자유로워졌다. 마티의 옆을 스치고 에바의 동작을 따라 했다가 칼과 눈인사를 하며 그 무대를 여유롭게 즐기게 되었다. 음악에 따라 사뿐히 움직이는 나의 발과 박자를 맞추는 나의 손이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음악의 장르가 바뀔 때마다 잠시 멈칫하다가 박자에 몸을 맡겼다. 어느새 하늘이 어둑해지고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만큼 가득했다. 아까 전부터 우리를 지켜보던 옆집의 한 소녀가 이내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마티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리드했다. 불씨가 꺼져갈 때쯤 우린 서서히 한 명씩 불가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다 같이 손을 잡고 한참 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처음 본 소녀와 난 잠시 대화를 나누었고 내내 소리 없는 웃음이 이어졌다. 다 정리를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우리가 4시간 동안 춤을 추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가끔 제주 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걸 볼 때면 그날 밤이 떠오른다.




정원사


마티의 정원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이 가득했다. 나무도 많았고 작은 텃밭에는 브로콜리와 방울토마토가 자라고 있었다. 아들과 걸어서 마트에 갈 때마다 길가에 지나는 집집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그렇게 넓은 정원을 관리하려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는 정원사를 따로 두나 보다. 점점 할 일이 없어 지루하던 나는 어느 날 장을 보고 돌아와서 마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마티에게 다가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붙였다.


"저기, 내가 매일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다른 집들을 보니 정원이 관리가 잘 되어있더라고. 그런데 내가 보기에 넌 딱히 가꾸는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혹시 내가 정원을 돌봐도 될까? 사실 난 요새 꽤 지루하거든."


"맞아, 사실 정원을 손질해야 하는데 내가 요즘 그럴 정신이 없어. 만약에 네가 한다면 나야 고맙지."


"그래? 잘됐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할게."


집에서는 집안일이라도 했지만 여기선 할 일이 적으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날부터 난 거의 반나절씩 정원을 가꾸며 시간을 보냈다. 정원이 하도 넓어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앞마당의 잔디 깎기부터 시작해서 중앙 뜰의 식물들과 집 뒤편의 전혀 정리되지 않은 잡초까지, 할 일이 많아서 좋았다. 언제부턴가 난 마티처럼 맨발로 지내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아들과 마당에서 놀다가 슬슬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다. 맨발로 흙을 밟고 거기게 꿇어앉아 아주 능숙하게 일을 했다. 쓰러져가는 브로콜리에 나뭇가지대를 대어 실로 꽁꽁 묶어 줄기가 잘 타고 오르게 만들었다. 주변에 잡초를 제거하고 흙을 골고루 섞어주었다. 채소를 심은 땅을 구분하기 위해 적당한 크기의 동그란 돌들을 모아 왔다. 옆에서 딴짓을 하고 놀던 아들이 와서는 나를 도왔다. 


"진아, 근처에 이런 동그란 돌 좀 찾아올래? 그래서 여기 이렇게 두르자."


이 말을 지나가다가 들은 마티가 내게 물었다.


"너 방금 뭐랬어? 동그~?"


"아, 동글동글. 이건 음... '스무스'하단 뜻이야"


그 발음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후부터 마티와 칼은 그들이 매일 마시는 스무디를 '둥글래- 둥글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 잡초뽑기가 거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사실 뭐가 잡초인지 잘 구분은 안되었지만 대강 주인공 꽃 주변의 것들을 죄다 뽑았다. 한 번은 깊이 박힌 뿌리를 굳이 힘써가며 결국 뽑았는데 알고 보니 칼이 기르고 있던 홉 나무였다. 그는 이게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며 나무를 뽑았고 난 홉을 따는 걸 도왔다. 그는 맥주 애호가인 아버지에게 이걸 선물하겠다고 했다. 정말 미안했지만 끝까지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흙을 파다 보면 가끔 거대한 지렁이를 발견했다. 처음엔 놀랐지만 나중엔 장갑을 벗고 작업을 하면서 지렁이도 아무렇지 않게 만졌다. 사실 이들이 없으면 땅이 이렇게 기름지지 않을 테니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집 뒤편은 거의 뭐 정글 같았다. 여기를 정리하는 게 큰 미션이었다. 그리고 일부러 아껴가며 가꾸기를 계속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티의 정원은 옆집만큼은 아니지만 꽤 잘 가꾸어진 정원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마티가 내게 물었다. 


"너 전에도 정원 가꾸는 거 해 본 적 있어? 아니면 어디서 배운기라도 한 거야?"


"아니, 사실 난생처음이야"


"그래? 그런데 너 엄청 소질이 있어 보여."


나도 몰랐던 나의 재능을 또 한 가지 알게 되었다. 난 정원 가꾸기를 잘한다. 사실 기초 지식이 없으니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행위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미래의 내 집에 큰 정원이 추가되었다.




낚시


가을이면 스웨덴 사람들은 바구니를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 버섯을 채집한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도 버섯이 자주 보였다. 그 길을 따라 한참 버섯을 따다 보니 어느새 전에 사우나를 했던 호수가 보였다. 잠시 그쪽으로 가 아들이 그네 타는 것을 밀어주었다. 그리고 가만 보니 호숫가에 한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는 마티에게 어떤 사람이 호수에서 낚시하는 걸 봤는데 그래도 되는 거냐 물었다.


"모르고 하면 안 되는 게 어딨어?"


그 다운 대답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사냥도 하지 않지만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자주 낚시를 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가 설명한 낚시 방법은 꽤 간단했다.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마트는 합주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낚싯대 두 개를 사 왔다. 부속품을 걸고 실을 연결하는 법을 알려주고는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선물까지 받았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정원으로 나가 흙을 파 지렁이를 유리병에 가득 채웠다. 야심 차게 낚싯대 두 개를 들고 자전거에 아들을 태워 호숫가로 향하는 내게 마티는 "모험가들"이라고 창밖으로 소리쳤다. 호숫가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잔잔한 물가에 찬란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덱으로 걸어 나가 자리를 잡고 유리병에서 지렁이를 꺼내 바늘 끝에 걸었다. 지렁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는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놀맀다. 아들도 여기 와선 점점 시골아이가 되어갔다. 얼마 전 내가 직접 깎아준 머리털이 들쑥날쑥 자랐다. 낚싯대를 뒤로 젖혔다가 있는 힘껏 물가로 던지자 실이 큰 포물선을 그리며 물안에 쏙 들어갔다. 양쪽 덱에 낚싯대를 걸쳐놓고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물고기가 놀라 도망갈까 아들에게 조용히 걸으라고 일렀다. 둘이 그렇게 앉아 조용히 넓은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군가 호수에 비친 하늘을 뚫고 동그란 수정구슬을 통해 우리를 보고 있을 것 만 같았다. 기다림에 지쳤을 때 나는 낚싯대를 들어 올려 자리를 바꾸었다. 다시 조용히 앉아 수면 위로 반쯤 떠오른 찌를 째려봤다. 얼마 후 찌가 흔들리더니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왔구나! 바로 낚싯대를 잡고 팔에 힘을 주어 올리는데 무언가 걸리긴 했는지 저쪽에서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온몸을 뒤로 젖혀 낚싯대를 물밖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물고기 한 마리가 낚싯대 끝에 걸려 파닥거렸다. 아들은 옆에서 환호성을 질렀고 나는 그대로 물고기를 덱 위에 패대기쳤다.


"윽! 징그러워!"


낚싯대를 바닥에 던지고는 호들갑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막상 잡아놓고 보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물고기 입천장에 걸린 바늘을 꺼내는데 정말이지 너무 잔인했다. 그리고 자꾸 팔닥이는 물고기를 어찌할지 몰라 대가리를 뒤로 꺾었다. 그제야 물고기가 잠잠해졌다. 피 묻은 물고기 입에서 꺼낸 바늘에 지렁이 몸이 동강 나 있었다. 징그럽다 하면서도 물고기를 잡았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어 몇 번 더 낚싯대를 던졌고 그때마다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전부 5마리를 잡은 우리는 봉투에 물을 채워 그 안에 물고기를 넣고 그걸 양동이에 담아 자전거 핸들에 걸었다. 빨리 가서 마티에게 잡은 물고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집집 했다. 걸린 물고기를 들어 올릴 때 느꼈던 묵직함과 목을 꺾을 때에 느낌이 손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내 손으로 직접 생명을 앗는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벌레나 꽃을 꺾을 때엔 사실 어떤 느낌조차 받지 않았는데 이번엔 확실히 '죽였다'는 죄의식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게가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기왕 잡은 거 구워서 먹어나 보자 하고 마당에 불을 피워 꼬챙이에 꽂아 생선을 구웠다. 괜한 의심이 들어 오래 새까맣게 태웠다. 가운데 얼마 안 남은 흰 속살을 앞니로 긁어 맛을 보았다.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약간의 비린내와 불에 탄 내음만 가득했다. 아들은 입에 대지도 않고 결국 구웠던 생선 두 마리를 불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손을 털면서 다시는 낚시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난 마티에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했고, 그는 채식을 시작하면서 본인의 사상이 바뀐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오늘 나의 도전은 첫 경험이니 소중하게 간직하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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