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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Sep 03. 2022

그들의 로맨스

그리고 나의 고백

늦은 저녁, 시내에 나갔다가 마티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 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은 그는 매일 합주 연습하는 친구, 티아의 집에서 잤다고 했다. 티아는 50대 중년 여성으로 핀란드 출신에,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마티와 같이 그녀를 데리러 집에 들렀다. 집안에는 피아노를 비롯해 첼로, 플루트, 기타 등 여러 종류의 악기가 있었다. 듣자 하니, 딸은 성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의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들은 한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다고 했다. 티아 또한 마티와 함께 동네에서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주로 교회에서 동네 주민들을 위한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어느 날 그의 초대로 한 콘서트에 갔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설마 동네에서 하는 작은 콘서트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마티는 매일 쉬지 않고 합주 연습을 하러 나갔다.


마티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웬일인지 바로 내리지 않았다. 핸들을 붙잡은 채로 얼굴을 기대 고선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살짝 민망해지려고 하는 찰나, 다행히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 할 말을 망설이고 있는 듯이 보였다.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뜸을 들일까. 잠시 후 그가 결심했다는 핸들을 놓고 입을 열었다.


"나 오늘 너한테 다 얘기할래! 더 이상 이 감정을 숨길수가 없어. 나, 사랑에 깊게 빠져버렸어. 정말 미칠 것 같아."


약간 흥분조로 말하는 그를 보며 내 마음은 콩닥콩닥 미친 듯이 뛰었다. 뭐지 이 분위기는?

설마 나한테 고백하려는 건가? 어쩌면 좋지? 난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난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린 채 잠시 별의별 상상을 했다. 언제부터였던 거지? 지금 저 입을 틀어막아야 하나? 아니, 사실은 더 들어보고 싶었다. 이미 나의 가슴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나 사실은... 에밀리아를 너무 사랑해. 그녀의 목소리는 천사 같고 옆에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어, 머리가 하얘져. 어젯밤 내내 그녀와 춤을 췄는데 정말 환상적이었어! 나 이제 어떡해야 하지?"


그의 말을 듣고 놀라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내 이성을 찾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와 손으로 살짝 가렸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살짝 아쉬운 이 기분이 들어 혼자 민망해했다.


"아멜리에? 티아의 딸?"


 마티의 집에 처음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그는 나를 본인의 콘서트에 초대했다. 차를 타고 먼 거리를 떠나 도착한 그곳은 엽서에 나올만한 배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동네였다. 호숫가 옆에 낡고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서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라며 주위를 구경하라고 이르고 마티는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나무로 만들어진 기계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는데, 예전에 밀가루를 가공하던 기계라고 했다. 1층에는 내부를 개조해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고 좀 있으면 2층에서 콘서트가 한 시간 뒤에 열릴 예정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 같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발에 인형같이 생긴 얼굴, 밝은 회색의 롱코트를 입고 있던 그녀는 팔짱을 끼고 특별한 사이로 보이는 남자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미소를 건네며 눈인사를 나누었는데 순간 정말 그녀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스웨덴에 와서 처음으로 예쁘다고 생각한 여자였다. 잠시 후 아들과 나는 줄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고 무대 가운데서 한참 장비 준비에 바쁜 마티가 보였다. 그곳에서 그를 보니 왠지 더욱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분주한 밴드 멤버들 사이로 아까 보았던 회색 코트의 미녀가 보였다 그녀가 티아와 포옹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걸 보고 단번에 난 그녀가 티아의 딸이라는 걸 알았다. 옆에 있던 마티와도 그녀는 포옹을 나누었지만 둘의 사이가 그리 친해 보이지는 않았다. 마티는 이미 그때부터 그녀를 마음속에 두고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고 이 때문에 마티는 내내 마음을 졸이고 있던 것이다. 아까 일층에서 아멜리에와 얘기하고 있던 그 남자... 내가 한눈에 반할 정도로 미인은 그녀의 옆에 그런 남자라니. 그냥 친구면 모를까.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외모만 보면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고 깡마른 몸에 안경을 쓴 공부 못하는 모범생같이 보였는데, 항상 그녀의 주의를 맴돌았다. 눈치껏 보니 여자 친구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남자 친구처럼 보였다. 이건 나만 느낀 게 아니라 마티도 눈치채고 있었기에 자신의 자리가 영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쉽게 남자 친구와 헤어질 것 같지 않다며 어떻게 해야 아멜리에의 마음을 사로잡울 수 있는지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불과 몇 분 전에 그와의 로맨스를 몇 초 상상했던 그림이 와장창 깨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난 마티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아멜리에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더 있었다. 그때마다 항상 마티와 함께인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달갑지 않다는 걸 느꼈고 이를 마티에게 말하자 그는 아멜리아가 질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며 좋아했다. 어느 날 마티는 그녀의 생일 선물 준비에 들떠 있었다. 나에게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해서 색연필로 간단하게 그려주었다. 책을 종이로 잘 감싸고 그림을 앞에 꽂아 노끈으로 고정하더니 마당에서 꺾은 들꽃 한송이를 꼬아진 노끈에 꽂아 움직이지 않게 고정했다. 그녀가 분명 좋아할 거라며 마티는 무척 설레어 보였다. 사랑에 빠진 그의 모습이 너무 순수해 보여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사실 난 아멜리에가 아니라 그녀의 엄마인 티아와 마티 사이에 로맨스가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마티는 몰라도 티아의 마음이 확실히 그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난 알 수 있었다. 마티에게 이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마티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인정했지만 그는 친구로서의 티아를 사랑하고 그 관계를 깨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다.


마티의 집을 떠나기 이틀 전, 티아는 나와 아들을 집에 초대했고 그날 밤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함께 식탁에 빙 둘러앉아 다 같이 합주하고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국으로 유학 준비를 해왔던 아멜리에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녀의 남자 친구의 라이브 영상통화로 몇 시간 내내 아멜리에는 그 파티를 함께 즐겼고 마티는 아멜리에의 남자 친구의 행동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마티에게 받은 메일에서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그녀의 친구인 엘리와 자기 집에서 동거 중이라고 말했다. 엘리는 티아의 집에서 방세를 내고 지내고 있던 아멜리에의 친구로, 파티하던 날 아멜리에의 오빠인 마우리츠와 썸을 타고 있는 게 분명한 듯 둘의 사이가 진해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 그들의 로맨스는 이렇게 뒤얽혀 있었다. 아멜리에는 영국 유학하는 내내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았고 이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마티의 복수심에서 친구를 사귀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했지만 이 커플은 의외로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다. 3년 뒤에야 마티로부터 둘은 좋은 친구사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고백.

다시 이런 감정이 생기리라 꿈도 안 꿔봤다. 결혼 이후 사랑 혹은 연애 감정 따윈 잊고 산지 오래였다. 여자가 아닌 엄마의 삶을 살면서 나름 만족하고 있었고 그런 감정이 혹이라도 생긴다면 남편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바람이 될 테니까.


어느 저녁 마티가 합주 연습이 늦어져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칼과 그의 누나 에바와 나, 그리고 아들까지 넷이서 저녁을 먹었다. 낮에 마트에 갔을 때 나와 칼은 각자 와인 한 병씩 샀다. 며칠 전 사다 둔 치즈를 꺼내 우리는 저녁 식사 이후 와인을 마시며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은 이미 곯아떨어져 침대에 눕혔고 얼마 있다가 에바도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걌다. 아직 와인이 좀 남아있었기에 마저 끝내고 들어가야겠단 생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칼이 갑자기 내 옆자리로 당겨 앉았다. 조금 더 가까이 와서는 목소리도 작아져 귀를 기울여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곧 내 손을 잡으며 손가락에 새긴 타투의 의미를 물었다. 이 자식이 개수작을 부리는구나라고 그 순간 알아차렸어야 정상인데 그 당시 나는 연애 세포는 단 1%도 없어 상황 파악에도 느렸다.  여행하기 한 달 전, 나는 서울에서 아쉬탕가 요가 워크숍을 들었다. 요가매트를 챙겨 와서 나는 아침마다 마당에서 혼자 수련을 했다. 그리고 칼이 아쉬탕가 요가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우리는 가끔씩 같이 수련을 했다. 전 여자 친구와 요가 강사로 7년 동안 수업을 했다는 그는 요가에 대한 열정만큼 지식도 나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열을 내며 설명을 하는 그의 모습이 살짝 멋있어 보였다. 가끔씩 여자 친구 얘기를 할 때 왠지 모르게 질투가 났고 나중엔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나보다 그가 먼저 나에게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처음엔 그 상황이 너무 부담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 피했지만 마음은 이미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정, 누군가를 보며 마음이 설렌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에 젖었다. 기혼녀로서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에둘러 변명을 하자면 난 여행 중이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물 건너 만난 사람은 로맨스로 쳐 줄 수 있다고. 그것 또한 여행에 포함된 한 경험이라고. 그는 나와 처음 마주쳤던 날 이미 나에게 매력을 느꼈고, 난 그의 마음을 눈치채면서부터 그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주차장에 칼의 차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했고, 그가 늦게 들어오는 날엔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마음이 커지자 결국 백만 번의 고민 끝에 칼에게 나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했다. 뒤 뜰 캐빈 앞에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칼은 빗질을 하고 있었다. 땅바닥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한창 여유를 즐기고 있던 그는 나를 보자 인사를 건넸다. 난 그의 옆으로 다가가 같이 바닥에 앉아서 괜히 흙을 만지작 거리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의 가슴은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말을 꺼냈다.


"있잖아, 칼. 이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거 알아. 근데 나 더 이상 못 참겠어.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주책맞게 왜 하필 눈물이 주룩 흐르는지.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는 놀랐을 테지만 가만히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어렵게 다시 입을 떼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 너한테 사랑에 빠진 거 같아!"


이 말을 하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결국 터뜨렸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의 행동에 부끄럽기도 했다. 방금 고백한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그의 반응은 싱거웠고 난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졌다. 잠시 후 그가 꺼낸 말은 더 가관이었다.

"너, 정말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거야?"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너 혹시 피시 러브에 대해 들어봤어?" "그게 뭐야?" "잠깐 이쪽으로 들어와 봐"하며 그는 나를 캐빈 안으로 들였다. 나를 책상 앞 의자에 앉히고는 노트북을 열어 유튜브에서 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The fish Love'

영상을 틀자 한 백발의 랍비가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선을 먹고 있는 한 남자에게 왜 그걸 먹느냐고 묻자 그는 "물고기를 좋아하니까"라고 답했다. "생선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그 물고기를 잡아 죽이고 끓였다는 거야? 정작 본인의 혀와 배를 만족시키기 위해 끓인 것은 아니고?"


"난 물고기를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정작 정말 물고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행위로 자신이 취하는 것에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대하며 느끼는 본인 감정에 대한 자각을 즐기는 것이지 정말 물고기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 한 그의 이 반응에 대해 당황스러우면서도 이 영상이 너무 흥미로워 순간 이 분위기는 로맨틱이 아니라 깨달음의 묵직한 형태로 변했다. 내용이 너무 진지해서 방금 전에 내가 한 짓이 뭐였는지 정체성이 사라졌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는 그의 페이스에 말렸고 어느새 내 고백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나 이번에 까여도 제대로 까였다. 그가 이 동영상을 나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나의 그를 향한 그 감정이 결국 내 본인의 만족이라는 걸 깨달으라고 보여주는 것인가? 백만 번의 고민 끝에 용기를 낸 나의 고백에 그는 '아니'라는 대답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그것도 매우 황당한 방법으로... '사랑'에 대한 한 노인의 철학적인 정의를 언급하며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나는 그에 대한 환상을 금방 깨트릴 수 있었다. 너무나도 깔끔해진 나의 감정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냉하게 변해버리자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부엌에 나오니 웬일로 두 남자가 일찍이 일어나 떡하니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평소 늦게 일어나던 칼도 하필이면 그날 왜 일찍 나와있냐고! 나는 그를 마주치는 게 너무 창피해서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등을 돌린 채 냉장고 문을 열어 음식을 꺼내는데 갑자기 그가 말을 걸었다.


"헤이! 오늘 기분 어때?"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괜찮아!"

난 쿨하게 답했다.


"내가 보여준 동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 나중에 그 얘기를 더 했으면 좋겠어, 근데 말이야 네가 어제 한 행동은 정말 용감했어!"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나도 모르게 냉장고 문을 세게 닫으며 그 얘긴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마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날 이후 난 '피시 러브'를 떠올리며 그 의미에 대해 여러 번 곱씹었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한 여자의 고백을 이런 식으로 대처한 이 스웨덴 남자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여태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행동에 대해 문화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경험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할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고 내 인생에 이런 창피를 당한 것에 대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조금 허탈하기도 부끄럽기도 했지만 여태 생각지 못한 신선 함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왔던 로맨스를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었다. 이 특별한 경험을 친한 친구에게 다 말했더니 전화를 끊고 그 친구가 꼭 들어보라며 한 노래를 카톡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이제 나의 18번이 되었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다는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오랜만에 남자에게 고백을 하고 이런 식으로 까이고 또 시원하게 받아들인 그때의 내가 귀엽다. 그의 말대로 정말 사랑인지 내가 그 감정을 느낀 것에 대한 스스로의 기쁨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떻냐 그때의 내가 행복했으면 그걸로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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