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대신 자전거로 살기
제주도에서 차 없이는 못살아.
그거야 남 얘기고, 지금 내 상황에 차는 무슨... 하지만 역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특히 쓰레기 버리러 갈 때가 문제였다. 제주도는 쓰레기를 집 앞에 내다 놓는 게 아니라 정해진 재활용 센터까지 가지고 가서 버려야 한다. 이게 쓰레기가 어느 정도 양이어야 말이지. 걸어서 20분 되는 거리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할 수 없는 노릇에 큰맘 먹고 자전거를 샀다.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를 보다가 바구니 대신 앞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적당한 것을 골랐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반조립 상태라 나머지는 내가 직접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럴 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런 건 아무래도 남자가 하는 게 낫겠지만 이 또한 해보지 않아서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을 먹고 조립했다. 사실은 공구가 없어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로운 직장에 자전거를 타고 야심 차게 출근했다. 지난번 일을 그만두고 서둘러 새 직장을 구했다. 중문에 새로 생긴 다이소 매장에서 진열과 계산을 담당하는 업무였다. 버스 시간에 메이지 않으려고 자전거를 산 것도 있어 자유로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운동도 할 겸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나갔다. 제주도는 다행히 자전거 도로가 서울보다 넓게 되어있지만, 가끔 바닥에 자갈이 많이 있어 조심해야 하는데 결국에는 사달이 났다. 제대로 조이지 않은 프런트 랙의 나사가 빠져 그게 앞으로 떨어지면서 자전거의 몸체가 같이 치우치는 바람에 나는 잠시 하늘에 붕 떴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출근해야 하는 조급한 마음에 얼른 일어나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똑같은 자세로 넘어졌고 이번엔 턱이 제대로 바딕에 쓸렸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지만, 손바닥과 무릎이 다 까이고 얼굴도 다쳤다. 어디서 봤는지 두 남학생이 뛰어왔고 괜찮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걱정해주는 그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너무 창피해서 빨리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급한 대로 근처 식당에 들어가 반창고를 얻어서 붙이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무엇보다도 출근에 늦을까 봐 걱정이 앞서 망가진 자전거 부품은 그대로 가방에 챙겨 넣고 급하게 다시 다이소로 향했다. 첫 출근 날 엉망인 얼굴을 본 다른 직원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독약과 밴드를 챙겨주었다. 그렇게 첫인상을 남기고 다이소에서 일하는 첫날, 나는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픈 것도 잊고 일에 몰두 했다.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터졌지만, 이 또한 홀로 살아가는 과정에 겪어야 할 부분이라고 받아들였다. 누군가 뚝딱 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결국엔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 산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계조립은 나에게 숙제이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하나 보다. 잘하는 걸 서로 나누고 도우면서 조화롭게 살면 좋긴 하겠다.
이후 그 자전거를 결국에는 처분했고 집주인으로부터 전기자전거를 얻게 되었다. 차 부럽지 않은 나의 붕붕이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 실수가 있었지만 이도 적응하고 나니 어디든 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거나 마트에 갈 때도 항상 이용하고 10km 거리는 우습게 주행했다. 이렇게 전기 자전거를 일 년 탔더니 점점 배터리가 빨리 닳고 모터도 예전만큼 잘 돌아가지 않기 시작하다가 결국엔 이마저도 고장이 났다. 수리센터를 찾았지만, 제주시에 있었고 거기까지 가지고 가는 게 더 일이었다. 막상 간다고 해도 부품이 없을지도 모르니 장담할 수 없다는 주인장의 말에 조용히 붕붕이를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는 뚜벅이로 지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을 때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다리와 엉덩이에 점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하체가 약해서 걱정이었는데 잘되었다 싶다. 차를 살까? 몇 번 고민했지만 사지 말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뭐든 덩치가 크거나 유지비용이 드는 것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차 대신 두 다리로, 그림을 그리려고 샀던 이젤과 용품들도 다 팔고 아이패드 하나로 디지털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다. 가끔 지인이 놀러 오면 차를 빌려 타고 여행을 함께 한다. 아들이 왔을 때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다녔다. 아들도 서울에서는 아빠 차를 타고 편하게 지내지만, 제주도에 와서는 나와 함께 약간은 불편한 생활을 한다. 정 필요하면 택시를 타면 되니 사는데 그리 큰 지장이 없다. 원하는 걸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가질 수 없는 나의 상황에 스스로 모멸감이 들 뿐이다. 남과 조금은 다른 삶을 선택했으니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