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북부
2018 11월.
이번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리니아를 만났다. 그녀는 SJ라는 스웨덴의 기차 회사에서 일했는데, 가끔씩 멀리까지 오는 날엔 그곳에서 며칠을 묵고 다시 돌아오는 기차의 일정에 맞춰 업무를 이어나가는 식이었다. 일 때문에 이곳에 와있던 그녀는 이틀 동안 나와 함께 자유시간을 보내고 스웨덴으로 돌아가는 기차로 우리는 말뫼중앙역에 다시 도착했다. 매번 저렇게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면 즐겁겠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에서 직접 핸드 프린팅을 한 원단으로 스웨덴에서 직접 옷을 만들어야 했다. 만들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여건을 고려해서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단순한 형태의 ‘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리니아가 옷의 패턴을 뜨기 시작했고 여러 번의 수정 끝에 가장 알맞은 사이즈의 패턴을 완성했다. 그 정도면 웬만해선 거의 모든 체형이 입어도 무난했다. 종이 패턴을 내가 원단에 옮겨 재단을 하면, 리니아가 재봉틀로 박음질을 했다. 다음에 내가 다시 다리미 질을 하고 리니아가 목둘레에 레벨을 달아 마무리를 짓는 순서로 손발이 맞았다. 하지만 진행이 생각만큼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난감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고쳐가며 어렵사리 한벌을 완성했다. 우린 너무나 기뻐 서로 껴안고 소리르 빽 질렀다. 그 당시 난 마치 우리가 뭐 대단한 디자이너가 돼 것 마냥 부풀었다. 생각보다 옷이 잘 나왔지만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했다. 키가 꽤 크고 체격이 좋은 리니아의 이모가 오셔서 직접 피팅을 해 보았고 다행히 핏이 좋았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리니아의 이모도 우리의 작업물이 괜찮다고 평판해 주었다. 이에 힘을 얻은 우리는 계속해서 그대로 옷을 제작해 나갔다. 매일같이 꾸준히 작업했지만 결국 막바지에는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마침내 모든 옷을 완성했을 때, 옷걸이에 모두 걸어 놓고 보니 한 컬렉션으로 완벽해 보였다. 옷 외에도 우리는 틈틈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춘 겨울아이템으로 모자와 장갑을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계획했던 대로 재단하고 남은 원단을 버리지 않고 최대한 사용하기 위해 작은 쿠션을 만들어 그 안에 마른 라벤더 꽃잎을 넣고 마무리를 해서 방 안에 놓을 수 있는 방향제를 만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훅 흘렀고, 노르웨이로 떠나야 할 일정이 다가왔다. 모든 채비를 갖추고 드디어 우리는 기차에 올라탔다. 많은 기대를 품고 출발한 이 여정은 일정이 좀 나뉘어 있었다. 우리가 참가할 크리스마스 마켓은 두 곳이었고, 각 위치가 멀리 떨어져 있어 도중에 한 번은 배를 타고 하루를 이동해야 했다. 특히 두 번째 장소는 시몬의 고향이라고 하니 그곳에서 만날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만남 또한 기대가 되었다. 지난번 프로젝트는 사실 하나의 경험으로 치자면 이번엔 개인적으로 내 전문 분야라 여겼던 것이기에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궁금했다.
말뫼에서 탄 기차는 몇 시간 후 오슬로에 도착했다. 우리는 하룻밤 시몬의 친구의 집에서 신세 지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로 했다. 그 늦은 밤에 혹시나 폐가 될까 염려가 되면서도 흔쾌히 이 방랑객들을 맞아준 시몬의 친구에게 정말 고마웠다. 오랜만에 만난 시몬과 그 친구는 진한 포옹으로 반가움을 표했다. 얼마나 서로가 그리웠을까! 시몬의 친구는 곧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마침 그날 낚시를 다녀왔다는 친구는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음식을 데워서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피시케이크’라고 해서 뭔가 봤더니 마치 우리가 먹는 부침개 같았다. 빵에 올려 먹는다 게 좀 실험적이었지만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가운데 나는 실례를 구하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가만 보니 대체적으로 북유럽 사람들이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집이 여태까지 본 중에 최고로 예뻤다. 여름이 짧은 자연환경 조건 때문인지 정말 북유럽 집의 인테리어에는 초록 식물이 많이 보인다. 역시나 이 집 안에도 식물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무질서하게 늘어뜨린 여러 소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멋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아이템이라 그런지 특히 벽난로는 언제나 봐도 정취가 있다. 부엌 한쪽에는 ‘음식 저장고’가 있었는데 굳이 냉장고가 없어도 될 만큼 냉기가 돌았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보면 집의 안과 밖에 큰 이질감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들만의 방식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게 나에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이튿날 아침,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우리는 집을 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노르웨이 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Tromsø:트롬쇠‘에 가기 위해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점점 지구의 북극으로 이동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어두컴컴한 공항에 내려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오후 3시 정도에 도착했지만 마치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한 겨울에 해가 고작 두 시간밖에 뜨지 않는, 리얼 북극 체험을 하러 온 것 같았다.
도대체 여기서 사람이 어떻게 산단말이야! 이렇게 눈이 많다고? 이렇게 경사진 곳을 걸어 다닌다고? 아니, 운전을 한다고? 차가 아니라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니! 험한 눈밭을 걸으며 나는 불평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 큰 캐리어를 끌고 또 잠에 든 이반을 안고 걸어가는 두 북유럽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 환경에 순응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참을 걸은 후 드디어 집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시몬의 한 친구의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미안함이고 뭐고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고픈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냥 이곳에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집 안에는 시몬의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아기가 있었다.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저녁을 준비해 준 그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을 재우고 식사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를 받아준 이 커플을 소개하자면 아이슬란드인 남자와 러시아인의 한 부부였다. 얼마 전 태어난 아이 때문에 여자의 어머니가 와 있었고 엄마의 도움으로 그녀는 최근에 다시 대학에 복학해 학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곳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북유럽의 오로라를 체험할 수 있는 일정으로 짧게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우리의 만남과 이번에 이곳에 오게 된 이야기를 늘어놓고 한창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우리는 시내로 나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얼마 못 가 다시 어두워질 것이기에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오전 10시에 나와 밝은 곳에서 보니 바깥 경관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정말 눈을 치우지 않으면 앞으로 걸어가지 못할 만큼 눈이 많이 쌓여있었고 밖에는 이미 사람들이 어느 정도 눈을 치워둔 상태였다. 한참 걸어가는데 갑자기 여태 보지 못 한 정말 큰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데 유심히 지켜보았다. 트럭은 길가에 잠시 멈추더니 사람은 내리지 않고 앞에서 무언가 묵직한 게 튀어나오더니 집 앞에 있는 사람 키보다도 더 큰 쓰레기통을 통째로 집어 들어 뒤집어 트럭 뒤로 쓰레기를 툭툭 털어낸 후 빈 통을 다시 제자리에 툭 놓고 슬슬 자리를 떠났다. 쓰레기차 스케일마저 대단했다. 길을 걸으며 리니아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시몬을 만나고 이곳에서 2년간 살았다고 했다. 여기서 의상 ‘패턴메이킹’을 배웠고, 근처에 자신이 일했던 직장이 있다길래 직접 가보기도 했다. 노르웨이 전통의상을 제작하는 샵이었는데 옷을 만드는 제작실에도 직접 들어가 보았다. 사무실 환경이 우리네와 비슷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참가하기 전 우리는 마저 준비할 것들을 진행해 나갔다. 한 날은 시몬의 의붓동생이 일하는 호텔에 찾아가 그의 도움으로 옷걸이를 다량 공수받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준비를 다 마치고 드디어 마켓 오픈 일이 다가왔다. 마켓은 마을에 있는 한 학교에서 열렸고, 꽤 많은 참가자들이 와 있었는데 각자 본인의 부스를 꾸미느라 정신이 없었다. 치즈, 꿀, 쨈 등 음식부터 뜨개질 소품, 나무 공예, 액세서리, 그림, 책 등의 다양한 수공예품들이 있었다. 리니아와 나도 우리의 자리로 돌아가 준비해 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틀 동안 물건을 팔았고 그동안 사람들과 꽤 친해졌다. 그중 만난 한 참가자인 일러스트 작가는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고 지금까지도 그녀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행사 마지막 날, 시몬의 친구 커플도 우리의 부스를 찾아왔고 마음에 든다며 모자를 구입했다. 그 친구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못 했지만 사실 우리는 그의 여자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 집에서 예정보다 일찍 떠났다. 마켓에 온 날 여자친구는 리니아에게 얼마나 더 자기네 집에 머물 생각이냐고 물었고 엄마도 와계신 상황에 우리가 좀 일찍 떠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실 좀 당황했지만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보니, 리니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우린 오래 고민하지 않고 이튿날 그곳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서운한 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있는 그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이라도 친절을 베풀어 준 것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가 떠난다는 소식에 시몬의 친구는 마지막으로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해서 떠나기 전 날 함께 바다에 가자도 했다. 순간 내가 잘 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바,,, 바다라고?!
아닌 게 아니라 그날은 아침부터 폭설이 내리고 있었고 집 앞에만 나가도 온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사실 이곳을 떠나기로 했을 때 은근히 나는 다음 목적지가 여기보다는 아래 지방이라고 들어 따뜻할 거라 예상해서 좋아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떠나고 싶었는데, 그런 어마무시한 제안을 하다니 제발 리니아와 시몬이 반대하기를 기다렸는데 웬걸 너무 좋아하길래 그냥 내 눈을 감았다. 눈 따위가 나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그들의 태세에 나도 굳게 마음을 먹고 따라가보기로 했다. 먼저 마트에 들러 태울 장작을 사고 구워 먹을 음식을 구입했다. 그리고 차로 한참을 달려 마침내 그들이 말하는 바다에 도착했다. 짐을 끌고 눈밭을 또 한참을 걷고 나서야 눈앞에 바다가 보였다. 어디까지가 땅인지도 모르겠는 하얀 눈 밭 가운데 우리는 자리를 잡았고 시몬의 친구는 능숙하게 불을 피웠다. 불이 타오르자 준비해온 비건 소시지를 꼬챙이에 꽂아 직화로 굽기 시작했다. 이러고 있는 꼴이 처음엔 어이가 없었는데 어딘가 낭만적이기도 했다. 눈이 많이 내려 시야가 트이지는 않았지만 바다가 보였고 불을 펴놓고 둘러앉아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시몬의 친구가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라며 아이슬란드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도 못 말아 들어도 듣기가 좋았다. 마트에서 사 온 생선 통조림을 꺼내 빵에 올려 먹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따라 해 봤는데 의외로 맛이 좋았다. 스웨덴에서 채식하던 시몬도 여기 와서는 생선을 꽤 먹었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생선 기름칠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외에도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발견했던 이들만의 특색이 여러 개 있었다. 첫 번째로 물가. 노르웨이가 부강한 국가라고 하지만 물가가 정말 어마무시하게 비싸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공공도서관의 벽 한쪽을 채우고 있던 사진에는 불우해 보이는 노인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이는 가난했던 우리의 시절을 잊지 말자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했다. 사진 속 노인은 감자 한 알을 거친 손에 쥐고 있었는데 시몬은 아직도 자기네 나라가 갑자기 부유해 진걸 몸소 느낀다고 했다. 두 번째로 내가 느낀 이곳 사람들의 특별한 점은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자세이다. 실제로 나는 해가 10시에 떠서 12시에 지는 걸 보고 놀라우면서도 약간은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 이미 이런 순리에 이숙한 이 사람들은 그에 맞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유명한 이유도 이가 될 것이고, 옷의 디자인보다는 기능성에 증점을 두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눈이 쌓인 거리를 그것도 오르막을 자전거로 주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묘기 같아 보였지만 이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몸이 그렇게 익혔을 것이다. 혹한을 피하기 위해 실내에 머무르기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야외 생활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를 어릴 때부터 배운다. 우스갯소리로 리니아가 한 얘기가 있는데, 이곳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야외 활동을 하다가 떠오른 해를 보면 너무 반가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 마음이 이해가 가고 그 소중함을 알기에 이들이 보내는 시간은 아무래도 그 가치의 중점이 우리네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거대한 자연의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음에 이를 경외하는 마음의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이들은 정말 강인하다는 점이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한 날은 산에 오르자고 해서 간 적이 있는데 당연히 등산화도 없었지만 땅이 얼어 미끄러운 그 험한 길을 잠이 든 이반을 안고 산을 오르는 시몬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난 평소에 이반의 위험한 행동을 보고 혼자 마음을 졸였던 경우가 많았다. 곧 넘어질 것 같아 불안한 나와는 달리 태평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리니아를 보면서 애를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았는데 여기 와보니 다 이해가 되었다. 사실 이반은 한 번도 크게 다친 적이 없었고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면 오히려 그걸 뿌리쳤다. 알아서 혼자 모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가 방해를 한 격이었다.
약속대로 우리는 트롬쇠를 떠나 드디어 다음 목적지인 ‘Bodø:보되’로 가기 위해 크루즈를 탔다. 이 또한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밖으로 나와 바다를 항해하는 배 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참 황량하고도 쓸쓸해 보였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12월로 넘어가면서 날씨는 더욱 추워졌고 어둠은 더 길어졌다. 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보되에 도착했다. 우리를 마중 나온 시몬의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손주를 보고 눈물을 훔쳤고 그런 엄마에게 왠지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시몬을 보며 먼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지난번 아쉬움으로 남은 마켓 참여를 이번엔 좀 더 제대로 하기 위해 리니아와 나는 마지막 열정을 다 쏟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