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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Jan 09. 2023

노르웨이의 크리스마스마켓

불편한 고백

눈보라를 헤치고 시몬의 엄마의 집에 도착했다. 밖이 너무 춥기도 했지만 안에 들어가자 퍼지는 따뜻한 공기에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한 남자가 거실로 나와 우리를 반겼다. 시몬의 엄마와 같이 산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몬은 그와 엄마에게 마음을 활짝 열지 않은 듯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 이반을 보고 매우 반가워하는 그들을 보니 아들 생각이 났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그들과 함께 다니면서 아들 생각이 자주 났다. 그리고 다음 여행에는 꼭 아들과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스웨덴부터 시작해 이곳에 오기까지 만난 많은 사람들을 통해 가족에 대한 개념이 다시 잡혔다. ‘제도’란 어떤 데이터로 쓰이기 위한 형식에 지나지 않을 뿐, 그래서 그들은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이 좀 더 자유로웠다.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몬의 엄마는 내가 스웨덴에 정착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몬과 결혼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것도 리니아와 이반 앞에서 말이다. 이렇게 쿨하다고? 이게 어떤 방법이 될 수 있다면 그걸 이용하자는 것이지 정말 다른 의도가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내겐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에 대한 리니아의 반응도 놀랍다기보단, 진지한 태도였다. 그녀 또한 진작에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난 시몬의 태도에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엄마에 대한 고민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첫날 우리와 함께 도착한 시몬은 엄마의 집이 아닌 할머니댁에서 지내겠다고 떠났다. 그리고 매일 같이 우리와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굳이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아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울 엄마의 마음도, 그의 마음도 난 둘 다 이해가 되었다.


리니아와 나는 시몬의 여동생이 사용하는 다락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안락한 그곳에서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대비를 해 나갔다. 지난 마켓을 통해 디스플레이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판단으로 우리는 룩북을 만들기로 했다.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우리 브랜드에 대한 정체성을 알리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이곳도 역시 마찬가지로 해 뜨는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에 맞춰 옷을 싸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워낙에 자연배경이 출중한 탓에 굳이 멀리 찾으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해가 더 밝았다면 좋았을 테지만 주어진 조건에 따르고 만족해야 했다.

마침내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크리스마켓에 참가하게 되었다. 마을의 한 건물을 정비해서 2주 동안 마켓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행사 전날 부스를 준비하러 간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준비 중이었다. 리니아와 나도 서둘러 짐을 옮기고 다음날 바로 판매가 가능하도록 최대한 준비를 해 놓고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리니아와 나는 그동안 준비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가운데 경험했던 작은 사건들로 우린 서로를 더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시야는 점점 넓어졌고, 오랜 시간 동안 혼자 헤매었던,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던, 희미했던 가능성들을 실체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 행복했다. 결혼 이후, 잃어버렸던 원래 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꿈만 쫓아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꿈을 이루게 된다면 내 삶은 그제야 완성이 되는 걸까? 여태까지 피해망상을 가지고 살았던 지난 내 못난 모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걸 이루고 나면 어떨지, 스스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제일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만든 작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은 이번이 처음 겪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아니 기대보다는 내 반응이 나도 궁금했다. ‘그래 어디 그토록 원했던 거 어디 한 번 해보고 보자’하는 마음이었다.


마켓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적어도 한 번씩은 들르는 것 같았다. 추운 날씨에 행사로 인해 마을은 생기가 도는 듯 보였다. 부스 한쪽에는 직접 만든 쿠키를 파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수프를 파는 사람도 있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몬의 친구들도 한 번씩 우리 부스에 들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손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우리 부스에 와서는 매우 들뜬 모습으로 옷을 한참이나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조금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는데, 그녀는 리니아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게시물을 보고 마침 노르웨이에 볼 일이 있어 온 김에 옷을 보러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직접 핸드프린팅을 한 우리의 옷이 매우 멋지다며 마음에 들어 했고 두 벌을 샀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옷에 호기심을 보였고 리니아의 액세서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안타까운 점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내가 직접 판매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옆에서 리니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또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고 분위기도 한창 달아올랐다. 이제 매일같이 일어나 그쪽으로 출근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옷의 판매는 부진했지만 다른 아이템들이 많이 팔렸고 행사는 성황리에 잘 마쳤다.


마지막날 밤,

다락방에 올라와 난 리니아와 와인을 마시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친 나의 소감을 그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좀 혼란스러워. 작업 자체는 솔직히 너무 즐거웠어. 천에 그림을 그리고, 옷을 직접 만드는 그 과정까지는 정말 재미있었거든? 그런데 솔직히 옷을 판매하는 동안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어.”


나의 말에 그녀는 조금 놀라는 듯이 보였다. 사실 나도 괜히 초치는 얘기가 될까 봐 망설였지만 저번 프로젝트를 마치고 함께 각자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한 후 그 효과가 좋았다는 걸 깨달았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솔직한 속내를 보였다.


“사실은 나 지난여름부터 계속되는 고민이 한 가지 있어. 바로 환경에 관한 문제말이야.”


이 얘기를 듣고 리니아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생각을 듣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늘 생각해오고 있던 주제이기에 우리의 대화는 더욱 깊어졌다. 노르웨이에 오기 전 스웨덴에서 한창 옷을 만들고 있을 무렵, 시몬은 한 동영상을 리니아에게 보냈고 우리는 함께 그 영상을 보았다. 내용은 현 과학자들이 전하는 현재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정도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각 나라의 현 정부의 대처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 무렵 나라 전체를 들썩였던 또 다른 이슈는 환경문제로 일인시위를 하는 한 스웨덴 10대 소녀였다. 그녀는 학교 통학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환경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정부와 미래를 위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옷을 만들겠다고 한 순간부터 자원과 에너지 낭비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쓰레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사러 오겠다고 들르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는 버려질 쓰레기를 사겠다고 심각하게 고르고 있는 그 눈빛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저렇게 혈안일까, 이 옷이 그 정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난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 지난여름 스웨덴에서 만난 사람들을 겪고, 혼자 심각해진 것이 바로 환경에 대한 염려였다. 당시 내가 더욱 걱정했던 사실은 내가 막상 그 나라에선 실질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더라도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예전의 생활 모습으로 돌아갈게 뻔할 것 같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개인이 생활방식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나의 이 생각을 조심스럽게 전하면 주위의 반응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선진국에 여행 한 번 다녀오더니 이곳은 미개한 세상인 것 마냥 대하는 나의 생각과 태도가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내가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생활에서 내가 크게 노력하고 있는 것도 없는데 입만 살아가지고 떠들어 대는 것 같아 스스로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도 쉬웠다. 그러면서 나의 미미함에 스스로 더욱 작아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나를 자극하는 황홀한 단맛에 쉽게 무너지는 스스로를 보며 매우 혼란스러웠다. ‘제로웨이스트’를 실현하겠다며 버려지는 원단을 재사용했지만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다면 굳이 안 해도 됐을 일에 마치 의식이 있는 사람처럼 흉내 내고 있는 꼴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평소에 저지르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꼈다. 그 ‘허무함’이란 단어가 행사 기간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모든 게 허무해 보였다. 그래서 결국 무엇을 이루고자 이러고 있는 건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이 생기면서 마음의 불편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 얘기를 시작하고 나면 결국 우리는 허탈감에 빠졌다. 시몬도 그 당시 이에 대한 염려가 너무 커서 불안증이 심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시몬 엄마의 집뿐만 아니라 대게 노르웨이의 집은 지하실에 자는 방이 있다. 마치 겨울잠을 드려는 곰처럼 굴속으로 들어가 난 낯선 공기를 대고 한참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이 불편한 마음은 남아있지만 그때보다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난 내 스스로도 바꿀수 없는 걸 인정하고 하루를 그냥 어제처럼 살아가되 조금은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으려고 하고 있다. 난 그냥 작은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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