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면 안 되는데
제주도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깨달은 한 가지, 난 이제 백 프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
아들을 두고 떠난 엄마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에서 든 간에 백 프로 웃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선 안될 것 같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질 않았다.
죄책감은 언제나 내 가슴속에 남아 언제든 쉽게 날 흔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아들은 그동안 한 번도 내게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것에 대해선 남자아이라 표현이 그런 거라고 여겼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전화해서 엄마 보고 싶어라고 말하면 더 마음이 아플 거 같았다.
이번 설에 아들을 데리고 왔다. 평소 같으면 시댁 식구들을 먼저 만나고 명정 당일 오후에 우리 집에 오는 패턴이었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남편에게 부탁했다.
“다음 달에 다시 떠날 거라 한동안 못 볼 텐데 이번 설엔 내가 먼저 데리러 가도 될까?”
다행히 남편은 내 사정을 이해해 주었고 아들을 설날 전에 미리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이니 떠들썩한 게 사람 사는 모양이 제법 나온다.
훌쩍 커버린 아들은 이제 키가 나만큼 자랐고 손과 발은 이미 내 것보다 크다. 한창 클 때라 그런지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다고 한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아들내미의 먹는 모습을 보면 그보다 행복한 순간이 없다.
매일 붙어있었으면 몰랐을 작은 기쁨을 왜 인간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 건지,,,
5일을 같이 지내고 아들을 보내야 했다. 홍대입구역까지 바래다주고 헤어지는 길목에 서서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엄마 다음 달에 다시 떠날 거야. 그럼 아들 중학교 가는 모습 못 볼 테니까 미리 말하는 거야. 학교 잘 다니고 아빠 말 잘 듣고, 할아버지한테 먼저 연락하기 쑥스러우면 엄마가 전화해서 부탁할 때마다 전화드려. 밥 잘 챙겨 먹고, 너무 춥게 입지 말고...”
“응, 응.”
아들은 여태 한 번도 내가 왜 해외에 가는지 정확한 이유를 묻지 않았고 얼마나 있을 건지, 또 언제 볼건지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없다. 알고 싶지 않은 건지 정말 안 궁금한 건지...
횡단보도롤 건너는 아들의 뒷모습에 기어코 눈물이 죽 흘렀다. 마음 약한 그 녀석도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 손을 흔들기를 안 보일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하필이면 날씨가 이렇게 추운지, 내 꼬락서니가 더 처량해 보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왜 굳이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이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물음이 또다시 들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한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마음이 아팠다. 멍하니 티브이를 보는 척했지만 소파에 앉아있는 부모님에게 마음이 들킬까 일부러 앞에 앉아 계속 눈물을 훔쳤다.
그날 저녁 웬일인지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근데 오스트리아에는 왜 가는 거야?’
‘가면 얼마나 있을 거야?’
‘가기 전에 우리 언제 또 만날 수 있어?’
생각지도 않았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결국 눈물이 빵 터졌다. 대답도 보내기 전에 아들에게 문자가 또 왔다.
‘엄마, 나 엄마 보고 싶어서 울었어, 그리고 지금도 울고 있어.’
처음 ‘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행복했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잠이 오질 않았던지 늦은 밤에 아들은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울음을 참아가며 아들을 재웠다.
애기 때부터 우리끼리만 통하던 얘기, 아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몇 가지 단어가 있다.
엄마 목소리로 들어아먄 마음이 편해지는 것들. 남들이 들으면 창피하지만 엄마니까 아무렇지 않은 단어들.
난 어젯밤 결심했다.
이 길을 가지 않겠다고 가 아닌, 처음에 먹었던 마음을 다시 상기시켰다. 내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선택을 제대로 해내기로.
어설프게 방황하지 말고 망설이지도 않고 직진하기로 말이다.
얼마 전까지 고민했던 것들이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갈등했던 것들의 여러 방안 중에 내가 갈 길을 정했고, 막막해도 해보기로 결정했다.
꼭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아들이 가는 길에 나의 이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항상 혼자라고 생각한 내 쓸쓸한 인생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