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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May 24. 2022

입양

우린 원래 네 자매였다.

7월의 더운 제주도.


다이소 매장 안에 물놀이용품을 사려는 손님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1 계산대에 서서 캐셔 일을 보던 중이었다.  시간에 보통 연락하는 일이 없는데 웬일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근무 중이라  받았는데 또다시 걸려 왔다. 내가  시간에  하는   텐데 무슨 일일까 급한 일인가? 잠시 손님이 없는 틈에 문자를 보냈다.  '지금  하는 중이니 점심시간에 통화하자, 급한 일이야?'.    답장이 왔다. '아니, 급한 일은 아니야, 근데 이것 '라며 뒤에 사진  장이 연달아 왔다. 갑자기 자기 어릴  사진은  보내는 거야?  웃긴  있어서 인가? 손님이 오는 바람에 휴대전화를 껐는데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동생의 어릴  사진인데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손님을 보내고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뭐지?  옷은?  배경도 처음 보는데? '뭐야  사진들?' 도대체 어찌  건지 궁금해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언니, 얘가  쌍둥이 언니래'. '무슨 소리야?' '그렇대. 입양 보냈었나  엄마 아빠가...' 이번엔 아기  사진이 아니라 커가면서 찍었던 여러 장의 사진이 왔다. 가장 최근의 사진을 보니 동생이 아닌  맞다. 그리고 동생과 쌍둥이가 맞다. 너무 많이 닮았다. 커가면서 얼굴이 어쩌면 저렇게 똑같이 변해왔을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똑같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황에   바를 몰랐지만, 갑자기 속에 무언가 뜨거운  올라왔고 눈물이 주룩 흘렀다.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손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계속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고 손님 앞에서 보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손님을 응대했다. "육천 원입니다.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점심시간까지 30분을 보내는 동안 머릿속에  상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동생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쌍둥이는 떨어져 있어도 통하는  있다고 하던데 그동안  둘은 살면서 왜인지 모를 허전을 느끼며 살지 않았을까? 지금 동생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 부모님은  아이를 입양 보냈을까? 그녀는 어떻게 지내왔을까?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매장 밖으로 나가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어떻게  거야?  어떻게 알게  거야?"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며칠  친정집 앞으로  우편물이 왔는데 언니가 처음 그걸 발견했고 발송자 이름을 보고 잘못   아닌가 싶었다 했다. 엄마에게 먼저 "엄마, 외국에 혹시 아는 사람 있어?"라고 물었지만, 엄마는 없다고 했고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에게 물었더니 아빠는  우편물을 보자마자 가슴이 메인다면서 혼자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편지는 한국입양센터에서 보낸 편지로 독일에 사는  여성이 부모를 찾는다며 연락을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이에 승낙 했고  뒤로 독일에서 그녀가 직접  편지는 입양센터를 통해 번역본으로 받아보게 되었다. 2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혼자  집에서 살고 계셨고, 근처에 아파트에 살면서 틈틈이 집에 들러 정리하고 있었는데 어느  자신의 입양에 관한 서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부모와 생김새가 다른 본인이 당연히 입양된 사실을 알고서도 이에 대해 특별히 알아보고자 했던 적은 없었지만, 우연히  서류에 자기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궁금했다고. 그래서 방법을 찾고 이렇게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동생과 통화를 마치고 나는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건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미 격분해 있었고 아빠가 미워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분노해서 말했다. " 그동안   했어! 언제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던 거야!" "죽을 때까지   하려고 했지"라고 말하는 아빠도 울먹이고 있었고  그만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날 점심을  먹고 넋이 나간 상태로 일했고 밤이 되어서야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일없이 덤덤하게 보내던 우리 집안에 큰일이 터졌다. 엄마 아빠의 평생을 지켜오던 비밀이 드러났고 이제  사실로 인해 앞으로 우리 집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막막했다. 나와 동생은 햇수로 2 이지만 14개월 차이가 난다. 언니와 내가 있었고 당시 쌍둥이를 임신  만삭이던 엄마는 어느  복통을 느끼고 화장실에 일을 보러 들어갔다가 예상치 않게  아이가 나왔다고 한다. 급한 상황에서 엄마는 직접 아기를 손으로 받았고 방에 들어와    동생이 나왔다. 먼저 나온  아기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던 것이 문제인지 매우 약해서 바로 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동안, 입양을 보내기 전까지 줄곧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냈다고 한다. 병원비용을 계속해서 감당할  없는 노릇에  아이가 언제 건강이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님의 사정을 알던 병원에서 먼저 물어봤다고 한다.  입양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해서 부모님은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 하였고 다행히 독일의  부부가 태어난   달이  갓난아기를 자신의 품으로 안아 데려가게 되었다. 아기를 떠나 보내면서 부모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도  된다. 나도 아이를 낳아 길러봤기에 출산의 기쁨과 육아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도 이해한다. 가난한 살림에 딸이 넷인 집에서 너무 아파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핏덩어리를 남의 손에 맡겨서 라도 건강히  크기를 바랐을, 그리고 혹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 궁금해하지조차 않았다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 티브이에서 입양에 관한 내용이 나왔을  엄마는  번쯤  아이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아예 머릿속에서 지웠던 걸까? 동생의 주민등록상 생일은 2 이지만 진짜 생일은 1월인 이유, 태어나서   동안 이름이 없어 '아기'라고 부른 이유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다.


쓰나미가 한 번 그렇게 지나가고 나의 마음도 웬만큼 잔잔해 졌다. 언젠가 한 번은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우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무난한 가정에서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다. 한국에서 입양된 언니와 자매로 함께 자랐고 대 기업에서 일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보던 이산가족이 상봉해서 만나는 애절한 장면이 내 현실에서 일어나리라 생각했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내가 너무 그런 정서에 젖어있었나 싶었다. 언제 한 번 한국에 오지 않겠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이 피곤해서 장거리로 여행을 잘 안 다닌다고 하였다. 그리고 혹시 자신의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우리 가족에게 어떤 큰일이 생긴 것이 아니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건 뭐 쿨한 건지 뭔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그래도 가족인데 언젠가 한 번은 우리가 가거나 걔가 오거나 해서 만나야지 않겠냐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딱히 그런 기대를 안 하고 있나 보다. 그녀와 얘기하다가 이런 얘기가 오갔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가 생겨 반갑다는. 나의 기대보다 조금은 미지근한 그녀의 반응에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나도 감정을 격조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사실은 그녀의 속마음이 어떤지는 모른다. 어쩌면 우리 세 자매는 어려운 환경에서 지긋지긋하다며 이 삶을 여태 살아왔고 그녀는 그보다는 여유있게 자랐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린 함께였다. 지긋지긋한 일상도, 작거나 큰 사건들이 터졌을 때도 어찌 됐던 결국엔 서로 나누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졌을 그녀의 삶을 나는 상상 할 수 없다. 언제나 외국에 나가 살고 싶은 나는 잠시 나를 입양시키면 좋았을 걸 하는 철없는 생각도 했다.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지 2년이 지났고 우린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얼마 전 친정 집에 갔을 때 알게 된 사실은 아빠는 그동안 꾸준히 매주 그녀와 연락해 왔다는것과 그녀가 아빠에게 원망의 말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아빠의 메시지 함에 그녀와 주고받은 내용을 보니 자신을 왜 버렸나 하는 내용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아빠가 보낸 답장은 '아빠가 미안하다' 다. 영어도 아니고 한글로 매번 그렇게. 나한테 그렇게 쿨한 척하더니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기회를 만들어 그녀를 찾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혹시라도 그녀가 나를 만나면 부러워할까 두렵다. 자랑할 만한 나의 삶이 아니지만, 그녀에게 어떻게 받아 들여질지 모르겠다. 차라리 자랑할 거리라도 있어 그녀에게 줄 거라도 많이 있으면 좋겠다.



세상 살고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아빠는 그동안 티브이에서 입양된 자식을 찾아 껴안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와 동생은 의외로 그녀에 대한 감정이 빠르게 식었다. 아무래도 내가 우리 집에서 유별난 게 분명하다. 쌍둥이라서 더 애틋할 줄 알았던 동생의 반응은 너무 차가워서 오히려 당황스럽다. 각자 잘 살고 있으면 다행인 거지 굳이 걔를 만나러 가고 싶어? 아, 나는 아직도 이런 반응들이 적응이 안 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 안하고 그냥 한 번 보러 가고 싶다. 어차피 말도 잘 안 통할거니까 너무 깊은 얘기 안하고 얼굴 마주 보고 하하 웃고 싶다. 요즘 나는 새로운 사람에게 나의 가족을 소개할 때 우린 네 자매라고 말한다. 그 중에 한 명은 독일에 유학갔다가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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