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이길 바랐던.
눈이 어쩜 이렇게 생겼을까? 그의 눈은 어딘가 초점이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어딜 보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친구가 일하던 바에서 우리는 각자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목소리는 차분하고 느리다. 하지만 전체적인 외모에서 강단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를 마음에 들어 했고 곧 사귀게 되었다. 그동안 디자인 대학을 다니면서 만났던 남학생들과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그 시기에 나는 섬세한 남자들에게 진절머리가 나 있었고 그것과는 거리가 먼, 그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데이트에는 항상 스포츠가 빠지지 않았다. 하루는 배드민턴 채를, 하루는 테니스 채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아는 스포츠 종목을 모두 가르쳐 주었다. 그동안 연애하면서 못 해봤던 활기찬 활동으로 그와의 만남은 늘 생기가 넘쳤다. 우리는 대화도 잘 통했고 자주 만났지만, 어딘가 그에게 비밀이 있어 보였다. 직접 물어보지 않았지만, 점점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안 계신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남자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에 사귀던 남자와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실수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 나는 첫 경험 상대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두려움보다 기쁨이 매우 컸다. 이 남자에게 가족을 만들어 준 것 같아 내가 무슨 큰 선물을 그에게 해 줄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 나의 임신 소식에 그는 "낳아서 잘 기르자. 내가 더 잘해줄게'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와 아직 졸업 전이었던 그. 우리는 철없이 그렇게 덜컥,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계산도 안 하고 대단한 결정을 내렸다. 너무 순수했던 우리였다. 같이 지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매일 나를 만나러 왔고 가끔 미래에 대한 계획을 구상하며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배가 점점 부르고 눈앞에 현실이 닥치자 나는 앞으로의 대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몸에 직접적인 변화를 느끼던 내가 그보다 조금 더 판단이 빨랐던 게 아닐까. 아이를 낳고 우리는 신혼생활을 시어머니 댁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암 판정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모든 가족은 어머니께 신경을 곤두 세워야 했다. 나 역시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낯설지만,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나의 욕심보다 어머님의 필요에 맞춘 시집살이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나는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나의 힘든 상황을 어렵게 꺼냈다. 그는 나의 말을 듣고 나의 가슴에 쐐기를 박게 될 이야기를 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게 엄마인데 너는 그 상황에서 이것저것 계산을 하고 있었느냐고, 그 문제는 네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말이다. 졸지에 나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철없는 며느리, 아내로 치부되었다. 계산이 아니라 내가 불합리하게 당하고 있는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네가 없을 때 어머님이 나에게 했던 일들, 그로 인해 내가 힘든 점을 네가 아니면 누가 조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남편은 화가 난 인상으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방을 나가버렸고, 나는 준비했던 다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게 아닌데. 내 말을 더 들어보고 어떻게 할지 상의를 했으면 했는데 이미 나에게 크게 실망한 듯한 그의 얼굴에 나도 더 이상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서운했던 감정들은 정말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들이 나의 현실에서 벌어졌는데 이걸 그렇게 묻어두라고? 억울해도 그래야 하는 게 맞았다. 이 집에서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은 나 하나였다. 나만 빼고 모두 그저 어머니의 건강에 혈안이 되어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감정이 상할까 봐 조심스럽게 지내고 있는 상황에 나만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리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좌절했지만 견뎌야 했다. 아픈 시어머니를 미워하다니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보려고 했다. 한 방 맞으면 가슴을 쓸어내렸고 또 맞으면 또 쓸어내렸다. 한계에 달았을 때 말할 곳이 없어 동네에 아는 동생을 만나면 푸념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짓도 오래 하다 보니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었다. 그리고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불만이 생기면 풀지 못하고 이는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번져갔으며 결국 마음을 닫고 혼자만 아는 비밀로 썩은 응어리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벅찬 날에는 남편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매번 싸움으로 번지고 제대로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계속 억울한 마음으로, 남보다 못 한 사람으로 그를 대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가 줄었고 그래도 잘살아 보려 했던 마음도 점점 사라졌다. 어느 날부터 우리 사이를 포기했고 언젠가 헤어지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그리고 자주, 결국엔 그 날을 결정할 때를 기다리며 지냈다.
남편은 시댁 집안에서도 말이 없는 녀석으로 통한다. 시할머니는 내게 "쟤가 너한테는 말을 하냐?"하고 물으실 정도로 남편은 워낙에 말이 없다. 연애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정말 말수가 줄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부터 모유 수유하느라 같은 방이라도 그는 침대에서, 나는 바닥에서 잤고 아이가 큰 후에는 나와 아이가 같은 침대에서 잤다. 그러다 남편의 방이 따로 생겼고 그의 방을 들어갈 땐 노크를 했으며 그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룸메이트가 되었다. 내가 시댁에 발길을 끊으면서 남편도 나의 친정 집에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명절에 각자 부모님 댁으로, 아이는 시댁에 먼저 갔다가 당일 오후에 남편이 친정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동안 살면서 나는 남편의 월급 통장을 본 적이 없고 매달 주는 정해진 생활비로 생활했다. 부족하면 덜 사고 가끔 생기는 공돈으로 내 필요한 걸 사거나 욕심이 들려고 하면 시선을 돌렸다. 남편에게 아쉬운 말도, 내색도 보이기 싫었다. 언젠가 한 번, 난 억울한 마음이 들어 남편에게 따지듯 말했다. "오빠는 일하고 나면 월급으로 보상도 받고 성취감도 느끼잖아. 그런데 난 뭐야, 종일 나도 일했는데 난 누가 월급을 주지도 않고 성과도 없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생활비 주는 거에 고맙다는 말 하라고 하지 마. 나도 내 일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 받는 거야 당당하게." 남편은 그 말에 인정했고 다음부터 생활비를 주는데 인색한 내색을 비추지 않았다. 돈을 버는 만큼 자기가 원하는 것 다 사다 쓰는 모습이 얄미웠지만 자기가 번 돈 자기가 쓴다는데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나도 얼른 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되었다.
제주도로 내려오기 전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일할 데는 구해 놓고 가는 거냐며 집을 먼저 구하는 게 순서가 맞지 않았다고 나를 나무랐다. 아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난 이제 엄마도 돌아가시면 아무도 없는데 네가 애 데려가면 난 어떻게 살라고."라고 말했다. 임신했을 때부터 나는 이 아이를 내가 남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남편 말대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남편은 고아나 다름없다. 형은 가정을 꾸렸으니 남편은 혼자 지내게 될 게 뻔했다. 나도 아이 없이 내려가면 혼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연락할 부모님과 자매가 있다. 그리고 타지에서 생전 처음 경제적 도움 없이 지내게 될 텐데 자리를 잡기 전까지 고생할 게 뻔해 아이를 데려가는 게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지 막상 아이에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도 아이는 내 것이라는 생각 해보지 않았기에 남편에게 맡겨도 괜찮았다. 아빠와 지내면 아들도 나보다는 경제적으로나 환경 측면으로 더욱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분명하다.
남편과 나는 아주 먼 친구 사이가 되기로 했다. 나와는 비즈니스도 같이하기 싫다는 그다.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 정리가 훨씬 수월했다. 가끔 나의 지난 결혼 생활을 모르는 지인이 다시 남편과 잘해 볼 생각 없느냐고 질문한다. 어떻게 남과 같이 살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된다. "네 생각 없어요." 가끔 아들을 보러 가면 집을 보고 놀란다. 갈 때마다 집 구조가 바뀌어 있고 계속 살림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집을 꾸미는 일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멋 부리기를 즐긴다. 그동안 내가 그 영역을 침범해 그가 끼를 발휘할 기회를 빼앗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요새 싱글 대디 라이프를 즐기는 듯 보인다. 아이를 돌보면서 일하고 살림도 꾸려나가는 슈퍼 대디,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며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