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산동제를 들이부은 듯 눈이 부셔 앞을 보기 힘들었다 엊그제 퇴원한 건너편 병원 옥상에서 누군가 내 얼굴을 향해 거울 장난을 치는 게 분명했다 태풍의 눈쯤 품었음 직한 가을 중심을 휘청거리며 걸어와 땀 흥건한 가죽 재킷을 벗으려는데
누가 가슴을 몽땅 훔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남김없이 풀려 있는 브래지어 고리 세 개를 사랑하는 이여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추분 날 오후 한 시 8차선 대로변에서 조리개 고장 난 눈동자 속으로 햇살이 홍수처럼 흘러들 때 눈치챘어야 했다 본래보다 푸르게 인화된 하늘의 떨리는 절정에 팔려 빗장 푸는 손모가지를 낚아채지 못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 닿은 적 없는 그 아득한 방조를, 깊이 모를 가위에 눌려 허우적거리는 꿈을 꾼 것 같기는 했다
* 산동제 : 동공 확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