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언제 한 번, 언제 한 번' 하던 차였다.
우리 위층에 사는 그 이웃은 우리 동 주민의 전기 관련 문제는 본인이 알게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체를 해 주거나 손을 봐주곤 한다. 그 이웃은 경기도 가평에서 주말 텃밭을 가꾸는 중인데 주말이면 텃밭 수확물을 우리에게 여러 번 나눠주기도 했다. 남편은 언제 시간이 나는 대로 함께 텃밭에 놀러 가자는 제의도 받았다고 했다. 네다섯 가족은 충분히 머물며 놀 수 있도록 농막이며 텃밭이 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 사귀기 좋아하고 어디든 새로운 곳 찾아가는 것도 즐기는 남편에게는 딱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 함께해야 몇 마디 트기 시작하는 내게는 남편이 전하는 그 말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힘들게 가꾼 농작물을 부담 없이 먹고 즐긴다는 일이 내게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또한 예전과는 달리 식구가 줄어든 요즘 친환경으로 키운 아까운 나눔 채소를 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 며칠씩 같은 채소만 먹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만 주세요, 먹을 사람이 없어요, 주변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세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덕분이라고 하기엔 말도 안 되지만 코로나 덕분이기도 했다.
그동안 코로나가 잠잠해질 듯하다가 급증하여 요즘은 한 달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확진자 수는 일천 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만날 수 있는 사람 수도 저녁 6시 이후면 2명 이하로 줄었다. 남편의 동네 끽연 친구들은 가끔 한 번씩 갖던 술자리마저도 아예 끊었다. 코로나 확산이 두렵고 백신 예방 접종도 부작용 때문에 걱정스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술 담배에 관한 한 코로나19에 감사하게 됨은 사실이다.
당연히 여름 동안 여러 가족이 남의 텃밭에 모여 여름 주말을 즐기는 일은 물 건너갔다. 사람이 모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다. 남편들끼리는 서로 어느 정도 터놓고 지낸다 치지만 아내들까지 그에 맞춰 어울렁 더울렁 지내기에는 우리 생활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아내들도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 수도 있고 말을 섞고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친히 지낸다고 해서 단지 그중 한 남자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는 일이 쉽지도 않겠지만 별로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리 지내다가 큰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도 목격했었고 뒷말들이 무성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은 우리 텃밭은 지난 5월에 씨앗 묻은 후 7월에 재차 방문하여 풀 한 번 쳐 주었을 뿐 몇 개월째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남의 텃밭에 놀이를 간다는 게 내게는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1996년에 작은 땅을 마련했다.
땅을 보러 간 날 남편은 덜컥 가계약금을 지불한 뒤 내게 통보를 했었다. 때로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남편의 과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라고 남편과 나는 입을 모았다. 주변에서 일찌감치 텃밭을 가꿔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그거 힘들어서 몇 해 못 가 손 놓게 될 걸요."
나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멋모르고 씨앗 심고 싹이 나면 일주일 후엔 무슨 거름을 주고 이삭이 나오면 어떻게 하고 등 주워들은 대로 실천해 가며 작물을 가꾸었다. 힘은 들었지만 아이들이 함께 가 주는 데서 큰 용기를 얻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는 텃밭 같은 데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을 때 나와 남편은 나이가 조금 더 들었고, 한때 큰 즐거움을 주었던 주말 텃밭은 온전히 남편과 나의 노동의 장으로 변했다.
우리 부부 역시 별 수 없었다. 텃밭 마련 15년이 넘어가자 퇴비나 거름 제공 없이 자연농으로 키워보자, 유기농도 좋지만 방치 농도 괜찮다 식으로 점점 텃밭에 심드렁해졌다. 텃밭을 포기하기까지 내 결심이 주변 사람들에 비해 오래 버텨준 건 맞지만 결국은 같은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텃밭 마련 초기를 생각한다. 얼마나 다양한 이들과 함께 텃밭에 갔었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한 얼굴들도 있다. 우리 위층 이웃도 우리가 텃밭을 마련했던 초기처럼 지금 한창 텃밭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듯하다. 씨앗만 묻어두면 알아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주는 즐거움을 누구에게든 알려주고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예 남편이 이웃의 텃밭을 향해 출발했다. 남편의 뒤에 대고 걱정 한 마디만 던졌다.
"잘 다녀와요. 텃밭 농 선배랍시고 잔소리 늘어놓지 말구요."
남편은 텃밭에 애정이 많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힘든 텃밭 일은 남편 몫이다. 하지만 구릿빛 팔뚝을 자랑하던 젊음은 흘러갔다. 훌쩍 들어 올리던 비료 포대를 질질 끄는 남편을 보면서 텃밭 일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언제까지나 젊을 줄 알았던 남편인 남자에게서 나이 듦이 주는 지혜 이면에 웅크리고 있는 나이 든 남자의 노쇠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텃밭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있지만 풀이 어른 키를 넘어 잣나무와 키재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 텃밭에 대해 안타까움까지 없을 리는 없으리라.
코로나19 때문에 여름휴가는커녕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지낸 올여름을 남의 텃밭 나들이라도 하면서 위안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더 좋은 농사법을 몰라 우리는 우리 식으로 텃밭을 가꾸었을 것이다. 남의 텃밭 시찰을 마치고 나면 우리 텃밭 나들이도 가야잖겠느냐고 남편이 먼저 운을 뗄 것이다.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