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와, 가지다.
봄이면 텃밭에 가지 세 포기를 심곤 했다. 가지를 심은 까닭은 순전히 야리야리하고 야들야들한 날가지를 좋아하는 내 먹성 때문이었다. 세 포기를 심은 까닭이야 가지 모종이 천 원에 세 포기였기 때문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세 포기에서 열린 가지도 다른 식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기는 했다. 아주 가끔 가지나물을 식탁에 올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가지는 날것인 채 내 입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물론 어렸을 땐 엄마가 밥 위에 쪄낸 가지를 죽죽 찢어 고춧가루와 다진 파 마늘, 참기름 듬뿍 넣고 무쳐낸 가지 나물이야말로 최고의 반찬이었다.
요즘 가지가 얼마나 야들야들하고 큰지 보는 순간 침이 꿀꺽 넘어간다. 하지만 마트표 가지는 굵고 통통하긴 하지만 내가 키운 가지에 비하면 싱거운 맛이다. 그럼에도 내 텃밭에 자주 가게 되지 않게 되면서 마트표 가지를 자주 사 먹게 되었다. 가지라면 날것 익힌 것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가지나물을 즐기지 않는다. 이유인즉 흐물거리는 음식은 딱 질색이란다. 그 흐물거리는 몇 가지 음식 중 하나가 가지나물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래도 공들여 만든 거라고 자화자찬을 상다리 부러지게 늘어놓으면 남편은 겨우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어보는 정도다. 엎드려 절 받기 식이지만 한 젓가락이라도 안 먹는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이다.
노린재와 나는 입맛 사촌이다.
지난 주말 풀이 내 키보다 한 뼘은 더 자라 있을 우리 텃밭은 뒤로하고 이웃 텃밭에 다녀온 남편 손에 들린 봉지에도 가지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마구잡이로 따 모은 듯한 고구마순과 대파 몇 뿌리, 잎사귀 대충 따낸 머윗대, 푸른 고추라고 하기엔 약이 바짝 오른 고추들 사이로 보이는 매끈한 보라색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가지를 집어 들었다.
이런, 노린재가 먼저 맛을 보았다. 그럼에도 가지는 내 침샘을 자극했음은 물론이다. 날가지를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노린재와 나는 입맛 사촌이다. 노린재가 맛보고 남은 가지로도 나는 만족한다. 내남없이 제대로 가꾸지 못한 주말농장의 비애라면 비애라 할 수도 있다.
노린재가 갉아먹은 흔적을 칼로 긁어냈다. 연두색에 초록을 살짝 얹은 가지의 속살이 드러났다. 날로 먹을 연한 가지들은 한쪽으로 골라두고 제때 수확하지 못해 푸른 기가 제법 도는 쇤 가지들은 꼭지 부분을 남겨두고 사등분하여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꾸덕하게 마르면 냉동실에 넣었다 물에 불려 가지볶음을 만들면 별미다.
오늘 남편이 또 가지를 들고 왔다.
가지 풍년이다. 남편이 들고 온 남의 텃밭 표 가지로 인해 가지를 키우지도 않는데 여름에서 가을까지 내내 가지 풍년이다. 오늘 가지를 나눔 받게 될 줄 모르고 가지를 8개나 사 왔다. 모두 가지나물을 만들어 두고 먹기엔 부담스럽다. 가지 나물이 다른 나물에 비해 쉽게 상하는 편이기도 해서 다른 조리법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쇤 가지는 날가지를 즐기는 내 먹성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 맞지 않는다.
어제는 두부 1/4모에 슈레드 피자 치즈 넣은 통 가지구이, 어묵 세 쪽, 떡볶이 떡 세 개에 비트 소스를 잔뜩 뿌리고 고구마 반 개까지 곁들여 먹었다. 배가 불러 동네 한 바퀴 돌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역시 슈레드 피자 치즈 넣어 구운 통 가지구이 한 개와 고구마 반 개, 떡볶이 떡 두 개와 어묵 두 쪽, 삶은 토마토 1/2개에 역시 비트 소스를 아깝지 않게 뿌려 점심을 해결했다. 맛은 치즈 듬뿍 넣은 가지 맛인데 모양은 보라색 생선을 닮았다. 오늘도 역시 배가 빵빵하다.
한껏 푸짐한 점심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나는 왜 가지 나물이나 익힌 토마토나 줄줄 처지도록 익은 양파는 물론 어떤 사람은 질색팔색을 하는 도가니 같은 미끈거리고 물컹한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마른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을 정도로 튼튼한 이를 가졌는데 말이다.
친정아버지께선 '배부르다'라는 말 대신 '잘 먹었다'라고 하라셨는데 어제오늘 점심은 가지로 인해 배가 부르다. 아버지, 말조심할게요. 가을 장맛비가 제법 옵니다. 치아가 약해 연세 드신 후 흐물흐물한 가지나물을 즐기셨던 아버지 생각에 눈가가 촉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