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고 힐난하듯 물을 수는 없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남편의 딸꾹질로 잠 때를 완전히 놓쳤다.


저녁 식전 잠깐 약속이 있다며 외출했다 들어온 남편, 갑자기 시작한 딸꾹질이 멈출 줄을 모른다. 저녁 식사 후 공원 한 바퀴 걷고 들어왔더니 여전히 딸꾹딸꾹 하면서 참치 샐러드를 한 숟가락 듬뿍 떠서 건넨다. 추석 선물 중 참치 한 캔을 따서 오이와 양배추, 삶은 계란, 식빵 한쪽 넣어 마요네즈와 버무렸단다. 내일 아침은 번거롭게 빵 굽지 말고 참치 샐러드만 도톰하게 넣어 먹자면서 또 딸꾹딸꾹 한다.


딸꾹질을 멈추게 하려고 자신이 아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데 효과가 없나 보다.





지난 정월 대보름 무렵에도 남편은 딸꾹질로 며칠 고생을 했다.


퇴직 후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때 남편은 우연히 집에서 가까운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 유지를 하지 않을 수 없어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일단 졸업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배운 공부를 바탕으로 산림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관련 자격증이 아무리 많아도 젊은 사람을 이길 수 없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의 비애다. 2019년 11월을 끝으로 더는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게 된 내 경우야말로 자격증만 많은 나이 든 이의 좋은 예다. 그럼에도 일단 공부를 시작했으니 기회 있을 때 시험이나 보고 자격증도 따면 좋지 않겠느냐고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남편이었다.


필기시험은 어떻게 해 보겠는데 실기가 문제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자다 말고 일어나 송곳을 들고 실기 시험 연습을 하기에 이르렀다. 컴퓨터 책상 외엔 따로 남편 책상이 없으니 때로는 식탁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실습 연습도 했다. 그런 어느 날 밤 자리에 누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척척한 느낌이 들었다. 놀라 일어나 보니 온수 매트가 흥건하다 못해 그 위에 깔아 둔 얇은 요까지 적시고 있었다.


"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지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따뜻한 데서 실습 연습을 해야겠다며 철사와 송곳 등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던 남편을 쏘아봤다. 남편은 시험을 앞두고 그렇게 온수 매트 하나를 해 드셨다. 둘째가 사 보낸 지 얼마 안 된 온수 매트인데 지금까지 둘째에게는 이 일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쓸 곳도 부르는 곳도 없는 산림기능사 시험을 한 달여 앞둔 그 무렵에도 딸꾹질을 했었다. 그때의 딸꾹질은 사흘씩이나 지속되었다. 무엇에 효과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놀라게 해 준 방법은 기본이었고 설탕 한 술을 혓바닥에 놓고 빨아먹도록도 해 봤고 매실원액도 마시게 했었다. 물론 그때는 시험을 앞두고 받는 긴장 때문이라거나 스트레스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잠시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깼다. 여전히 딸꾹질이 멈추지 않은 남편이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나갔다. 날이 바뀌어 새벽 1시가 넘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소화제를 먹었나 보다. 빈 소화제 병이 식탁에 놓여 있다.


오늘로 한국사 공부 시작한 지 보름째 되는 날이다. 저녁 전 약속에서 돌아온 남편의 말이 스쳐갔다.

"퇴직 후 시간 여유 많을 때 공부해 둘 걸 그랬어. 한국사 너무 어렵네. 그 친구는 진작에 3급 합격했다네. 난 이 나이 먹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게 없네."

남편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해 놓은 게 없기는. 먹고사는 게 얼마나 큰일인데. 하고 싶은 일 미루고 직장에 매달려 식구들 먹여 살렸잖아, 우리 두 딸들 잘 키웠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 당신 고생한 거 다 알아. 한국사가 남편 잡겠네."


불현듯 이유 없이 딸꾹질이 다시 시작할 리 없다는 생각이 잠이 달아난 시각에야 머릿속을 스친다. 산림기능사 시험을 앞둔 지난 정월 대보름 무렵의 딸꾹질도 괜한 증상이 아니었을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등 떠밀며 시험을 보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선택한 한국사 시험공부를 하며 한껏 낮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남편이 안쓰럽다. 하고 싶은 일을 어떤 이유로든 접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음 직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이 들어 그 인내했던 순간들이 비애처럼 다가오는 건 옳지 않다.





아무리 실패한 인생을 산 듯 보이는 사람에게도 지금껏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고 힐난하듯 물을 수는 없다.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사람이라도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노력하지 않고는 오늘이라는 현실과 마주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이 말똥말똥해지는 새벽, 네 시가 넘어 남편을 살피니 깊은 잠이 들었나 보다. 딸꾹질 잡겠다고 써 본 여러 방법 중에 이번에는 매실 원액 마시는 일만 빠졌다. 잠에서 깨면 진한 매실 원액 한 잔 권해야겠다.


공부,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니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안다. 지금 우리 나이야말로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고 그 반대라도 열심히 했다는 데 의미를 두면 될 일이다. 해 보고 안 되면 안 된 그때 돌아서도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보기까지 부단히 노력하는 큰 용기와 결단이면 족하다. 그 용기와 결단을 실행으로 옮긴 남편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