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이별하기에 좋은 계절인가 보다.
그제는 남편 친구가 췌장암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어제는 이웃 할머니께서 요양원에서 저세상으로 드셨다. 입추를 앞두고 선선한 바람을 기대해도 좋을 날씨다. 이 생에서는 전혀 일면식도 없을 사람들이지만 다음 생으로 드는 길에서는 이 생을 살았다는 인연만으로도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걸을 수도 있겠다.
다음 생에도 계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계절이 있다면 이 생의 계절의 흐름과 전혀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을 목전에서 이 생을 떠난 이들은 아름다운 가을부터 다음 생을 다시 시작하시기 바란다. 다음 생은 아픔 같은 건 없는 세상이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보낸다.
남편 친구가 세상을 떠난 날, 남편 전화는 불이 붙기 직전까지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나이는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상이 부모님 상을 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운 날 상주가 수고가 많겠다.'라든가 '오래 와병 중이셨는데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시면 좋지.' 등 상주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가신 분을 기리는 몇 마디가 주를 이룬다. 코로나19로 장례식장마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상태가 된 지난해와 올해는 '못 가 봐서 어떡하냐?'라는 한 마디가 더 추가되었다.
하지만 막상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나 보다. 동창회 총무인 남편이 부고를 띄우자마자 먼 데 사는, 동창회에 열심히 참석하지 않는 친구들까지 애석한 마음을 보내왔다. 남편은 미처 전화를 받지 못한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지난해 건강 검진에서 암이 발견됐다네. 그동안 치료받으면서도 알리지 않았던 것 같아. 스트레스받을 일이 좀 있었나 보네. 나도 오늘 알았네."
친구를 잃은 데 대한 애석함은 결국 먼저 간 친구를 통해 본인들 발등에도 불이 떨어질 날이 가까웠음을 순식간에 깨닫게 한 것이다.
"건강했지. 잘 생겼고."
"그래, 스트레스가 주범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게, 스트레스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나."
어쩌면 잘 나갈수록 스트레스는 더 받는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에 사시던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더 깊은 삶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가끔 우리 집에 발걸음 하시면 당신 살아오신 이야기, 전쟁통에 싸움터에 나간 남편이 뱃속에 아기만 남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은 이야기 등을 여러 번 들려주시곤 했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 하나 바라보고 평생을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하며 살아왔다는 말씀은 내 안에도 이 땅에서 일어났던 전쟁의 기억이 피와 살이 되어 흐르고 있음을 각인시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2년간은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고 몇 개월 전부터는 아들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까지 치매가 진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외에 가 있다는 손자가 할머니 소식을 듣고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더위에 일가친척도 많지 않은 그 유복자 아들은 또 얼마나 애타는 일들이 많을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나는 할머니의 며느리와 한때 가깝게 지냈었다. 우리 딸들 생일을 챙길 정도로 우리 딸들을 예뻐하고 사랑한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이 죽을 때까지 한 상대하고만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이 동네를 떠났다. 간간이 소식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직접 연락한 적도 없고 지금은 아예 소식도 끊겼다.
그녀를 생각하며 조의금 봉투를 준비했다. 그녀 아들의 할머니요 그녀에게는 한때 시어머니였고 내 이웃이었던 할머니를 위하여.
코로나19가 지방에까지 날로 확산하여 사돈댁이 있는 창원 역시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뛰었다는 보도다. 안사돈께 전화를 드렸다. 당분간 병원 치료도 쉬어야겠다고 하신다. 코로나 19만 아니면 만나서 식사도 하고 수다도 떨 텐데 이렇게 전화로만 이야기 나누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 우리는 꼼짝 않고 집안에만 있는데 왜들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여행들을 다녀서 코로나를 더 번지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어서 모든 국민이 다시 건강하게 잘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등 오래 못 만난 사돈지간의 마음을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나누었다.
결론은 어떤 세상이 됐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버리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살자는 데 마음을 모았다. 코로나19로 인한 것까지 다 흘러가겠거니,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믿으며 나랏일에도 가능하면 제대로 협조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트레스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만 스트레스조차도 잘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내공을 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살면 스트레스 쌓일 일도 없지 않겠능교? 사는 날까지는 아프지 말고 잘 살아야 할 낀데."
"그럼요, 사돈 말씀이 옳습니다. 스트레스받을 일 하지 않고 건강하게 가늘고 길게 살도록 하십시다."
이별하기에 좋은 계절이 어디 있겠는가.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있는 날까지 마음 덜 아프자고 지어낸 말일 뿐이다. 그럼에도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는 날의 이별에야 비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