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무거웠던 날은 가고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어깨가 무겁군.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재래시장에서 당사주를 보았던 적이 있다. 허름한 옷에 쪽을 진 어르신이 한눈에 봐도 굴곡진 데 없는 동양인의 얼굴과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 옷을 입은 그림이 나온 페이지를 펼쳐놓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저녁 찬거리를 사들고 오다 말고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음력으로 생년월일을 대자 그녀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겼다. 그림을 가리키며 이야기하던 그녀의 말 중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어깨가 무겁군. 형제자매가 가만있자......"

"사 남매예요. 사 남매 중 맏이."

처음 당사주 보는 티를 이렇게 깃털처럼 가볍게 드러냈다.

"음. 책임감 때문에 늘 어깨가 무거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한국 정서상 맏이라면 서너 살 난 아이라도 이미 눈치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아픔은 왜 병원 문을 닫는 주말이면 더 심해지는가.


며칠 전부터 남편이 오른쪽 어깨가 저리고 아프다고 했다. 주말이 되자 조금 더 심해졌다. 파스와 호랑이연고, 더운 찜질, 진통제로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일요일은 광복절인 데다 월요일은 광복절 대체공휴일이어서 응급실을 이용할 게 아니라면 병원 문을 여는 화요일까지 꼬박 사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병원 문 여는 시간을 이렇게까지 학수고대했던 날이 있었던가 싶었다.


드디어 화요일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다. 평소 30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아침 출근 시간대라 1시간은 족히 걸렸다. 병원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봐 온 한산한 병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병원에 오지 못했던 환자들과 화요일 환자까지 총 4일에 나눠 와야 할 환자들이 화요일에 한꺼번에 몰린 까닭이었다. 9시 접수인데, 10시 이후 진료받을 수 있다고 쓰여있다. 아마 20~30분은 늦어지리라.


남편과 나는 북적거리는 대기실에서 병원 작은 마당으로 나왔다. 이 병원이 처음 세워질 때 심었을 법한 모과나무와 감나무가 마당 모서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남편의 어깨와 아내의 어깨, 그리고......


한 시간 반을 기다려 드디어 남편의 차례가 왔다. 엑스레이를 찍고 또 기다렸다. 연세 많으신 의사 선생님께서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말씀하셨다.

"퇴행성이지. 석회도 약간 끼었어요. 무거운 거 들지 마시고. 가볍게 어깨 운동하세요."

남편은 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순간 내가 끼어들었다.

"그러게요 선생님. 남편은 항상 청춘인 줄 알았어요."


간호사가 건네는 주사기를 받아 드는 의사 선생님 어깨가 비로소 내 눈에 들어왔다. 저 어깨의 무거움이란 무엇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께 다가가 작은 소리로 감사 말씀을 올렸다.

"선생님, 건강하셔서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남편은 총 넉 대의 주사를 오른쪽 어깨에 맞았다.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우리 네 식구가 지금껏 잘 지내왔구나 생각하니 미안과 감사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 다시금 미안함과 감사가 몰려왔다. 다른 더 좋은 말로 감싸 안아 주어야 할 것 같은 남편의 어깨가 거기 있었다. 가끔은 짜증도 냈고 투정도 부리며 살아온 날들을 저 어깨는 말없이 받아주고만 있었다. 말을 못 하니 이처럼 뒤늦게 탈이 나고 만 것이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으니 조금은 가벼워져도 좋을 어깨 아픈 남편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더불어 남편이 힘들었던 시기 어느 아침 오십견인 듯 팔을 들지 못했던 날의 나도 떠올랐다. 그날 나는 5~6개월 치료받아야 한다는 한의사의 말과는 달리 침 한 방에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침 한 방으로 옴쭉달싹 할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했던 어깨가 말끔히 나았다.





가끔은 남편에게서 아버지를 본다.


특히 남편의 어깨에서 아버지의 어깨를 본다. 어린 내가 아버지의 구릿빛 팔에 매달려 세상을 다 가진 듯 깔깔거렸듯 우리 딸들도 남편의 어깨에 매달려 어린 시절을 부러울 것 없이 보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조금 알게 되면서 세상엔 아버지의 어깨와 맞먹을 만한 어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듯 내 딸들도 같은 과정을 거치리라.


"많이 좋아졌어. 살 것 같네."


사랑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중엔 책임감도 있다. 무종교인 남편은 여전히 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현하곤 한다. 남편과 달리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간절한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내 기도가 신께 닿고 다시 우리 딸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더불어,


남편의 어깨가 새털처럼 가벼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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