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요즘 무는 왜 이렇게 크기만 하고 싱거워요?"
마트에 들어 무가 쌓인 코너로 향했다. 무를 고르고 있던 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지만 김장 때가 되면 이렇게 큰 무도 맛이 달달해졌던 것 같아요. 키 크는 것보다 맛 들이는 데 무도 신경을 쓸 테니까요."
"근데 무가 너무 커서 들고 가기도 힘들겠어요."
무가 너무 크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면서도 그녀와 나는 더 크고 매끈한 무를 고르려 쌓인 무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채소 다듬는 쪽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저기, 아저씨. 무가 너무 커서 들고 가기 힘들어서 그래요. 반으로 잘라주세요."
그러자 남자의 억양 없는 건조하고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그런 일 안 해요."
나이가 좀 든 남자 점원이 칼을 들고 채소를 자르고 있었다. 무를 고르던 그녀가 다시 한 마디 했다.
"아저씨, 칼 들고 계시니까 한 번만 잘라주세요."
"......"
추석이 바짝 다가오자 물건값이 일률적으로 1000원 이상은 뛴 듯하다. 더구나 재난지원금 사용처가 제한되다 보니 동네 중간 정도 규모의 마트 물건값 중심으로 더 올랐다는 걸 실감한다.
며칠 전 안방 등을 교체했다.
깜박거리는 것이 또 안전기 이상인 모양이었다. 지난 3월 주방 등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안전기 이상이라 하여 교체했었다. 근래 들어 등의 수명이 줄어들었나 보다 생각이 든다. 예전엔 오래 써도 상관없었던 등들이 교체한 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가장 많이 켜 두는 주방 등에 이상이 생기더니 차례로 서로 수명이 다 됐다고 알려온다. 처음 알게 된 안전기라는 단어를 뇌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안방 등을 교체한 기사에게 전등 값을 지불하고 기존에 쓰던 등과 등갓을 가져가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손가락 하나에 말썽이 생겨 제거해 낸 전등갓 치우는 일도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사가 내 물음에 지체 없이 대답했다.
"우리 이런 일 안 해요."
내 말에 무슨 잘못된 부분이 있어 기사 기분을 상하게 했나 순간 주춤했다.
"보통 가전제품 다루시는 분들이 일 마무리하시면 기존의 것들은 갖고 가시기에 부탁드렸어요."
"이건 이 댁에서 치우셔야죠. 우린 다른 데도 가 봐야 하고."
처음부터 다른 데 가 봐야 한다거나 바빠서 안 된다고 알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이런 일, 그런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거리 상 말하는 이와 가까운 일이면 '이런'이 붙고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일이라면 '저런'을 붙여 얘기한다. '이런'이나 '저런' 외에 자신과는 물론 상대와도 거리가 있는 일에는 '그런'을 붙인다. 지금 이야기하는 '이런' '저런' '그런'이 붙는 일은 적어도 말하는 사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되 왠지 그 '이런''저런''그런' 일을 해 주고 나면 스스로의 품격이 떨어진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로 든 두 가지 경우에는 갑질이나 명령이 아닌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받아들여 주면 어땠을까 싶다. 적어도 퉁명스럽게는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 안 해요, 그런 일 안 해요.'라는 말의 어감이 썩 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봉사란 먼 데 있지 않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봉사다. 나는 어떠했는지,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내게 도움 주기만을 바랐던 건 아닌지 내 언행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나는 누군가의 무심코 던지는 듯한 부탁에 '이런 일 안 해요, 그런 일 안 해요.'라는 말을 던짐으로써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린 적은 없었는지 되짚어 보는 동시에 퉁명스럽게 내 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누구보다 우선 나 자신을 위해서 주의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내 마음을 바꿔 먹는다.
안과 진료를 받을라치면 자주 듣게 되는 몇 가지 말이 있다. "무거운 거 들지 마세요. 안압이 올라갑니다. 안압이 올라가면......"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하루 종일 칼질하느라 누구보다 팔이 아플 그 남자 점원을 이해한다. 어쩌면 그 남자 점원은 남자라는 이름 하에 여점원들에 비해 더 힘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이야말로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되는 상황임에도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무 하나를 사더라도 앞으로는 카트를 끌고 다녀야 할 때가 왔다. 채소와 과일 크기가 예전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는 큰 것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묶음으로 파는 경우가 많아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메고 오기에는 힘이 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상들도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일어났다. 생산자는 돈을 벌기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소비자가 원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런 일'과 '저런 일'에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나를 올려본다. 소비자 쪽으로 천칭이 확 기운다. 내 탓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