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 Nov 02. 2021

낙엽도 빨간 스포츠카를 좋아한다

시시

빨간 스포츠카가 

미끄러지듯 인적 없는 골목을 달렸다

잠잠하던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 잎들이

일제히 빨간 스포츠카만큼 빠르게

빨간 스포츠카 뒤를 따랐다


신이 난 빨간 스포츠카가 

재빨리 길모퉁이로 사라지자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 잎들은

긴 숨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연막 소독차 꽁무니를 따라

소리치며 내달리던 그리움 어디쯤에선가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들이

게임기의 두더지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웃집 밥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넘실거리던

1960년 대 우리 동네 골목을 

빨간 스포츠카가 쌩하니 지나갔다

구멍 듬성듬성한 기억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 소환해 놓고


가끔은 잎맥도 끊어진 일들이

빨간 우주선을 타고 오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 10월의 마지막 날 새로운 봄 스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