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
빨간 스포츠카가
미끄러지듯 인적 없는 골목을 달렸다
잠잠하던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 잎들이
일제히 빨간 스포츠카만큼 빠르게
빨간 스포츠카 뒤를 따랐다
신이 난 빨간 스포츠카가
재빨리 길모퉁이로 사라지자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 잎들은
긴 숨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연막 소독차 꽁무니를 따라
소리치며 내달리던 그리움 어디쯤에선가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들이
게임기의 두더지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웃집 밥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넘실거리던
1960년 대 우리 동네 골목을
빨간 스포츠카가 쌩하니 지나갔다
구멍 듬성듬성한 기억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 소환해 놓고
가끔은 잎맥도 끊어진 일들이
빨간 우주선을 타고 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