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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Nov 01. 2021

10월의 마지막 날 새로운 봄 스케치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마지막은 늘 그렇듯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새로운 장을 펼치기 이전에 마지막을 잘 쓸고 닦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중에도 10월의 마지막 날은 한 해 텃밭 활동의 종지부를 찍는 지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마지막 아침 역시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서야 오전 9시경 텃밭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지난주 미처 심지 못하고 남겨 가지고 돌아온 마늘을 마저 심기 위한 나들이 길인 동시에 올 텃밭 나들이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5월과 7월, 그리고 지난주와 오늘 시월 마지막 날 이렇게 단 네 번의 텃밭 나들이로 텃밭을 가꾸고 수확했다고 말할 수 있다니 내 얼굴이 많이 두꺼워졌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무위도식하는 사람은 아니니 텃밭에 가지 못하는 동안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만은 인정하기로 한다.





고토석회를 쌓아둔 근처에 차를 댈 때였다. 차를 대는 동안 저편에서 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은 채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우리가 텃밭을 마련하고 초짜 농부의 길로 들어섰을 때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 중 한 분이다. 반갑게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잘 지내셨어요,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얼굴은 낯은 익은 것 같은데 누군지 모르시겠다는 표정이었다. 어르신이란 단어가 어색했지만 달리 다른 적당한 단어가 없었다. 처음 뵀을 때만 해도 당신 집에 초대도 하고 농사일도 가리지 않고 하시는 다부진 분이셨으니 내가 어르신이라 부를 오늘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텃밭 이웃이라는 느낌 외엔 없었기 때문이다. 


"저쪽 밭. *아네랑 같이 뵀었더랬죠."

"아 아, 그래요 그래. 어디서 봤드라 했네. 그래 오늘은 뭘 심으러 오셨수?"

"마늘 종자 미처 심지 못한 거 마저 심으려구요. 지나 번에 깜빡하고 남겼지 뭐예요."

"자주 와야 밭이 좋아하지. 고토는 어디 쓰려고?"

"감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한 그루에만 줬더니 마음이 쓰이네요."

"그럼 그럼. 골고루 줘야 나무들도 샘내지 않고 경쟁하듯 많이 열려요."


마침 어르신 댁 담벼락을 따라 쌓여 있는 퇴비가 눈에 띄어 여쭤보았다.

"어르신, 저 퇴비 어르신 댁 퇴비 맞아요?"

"그럼, 우리 거지. 왜 퇴비 필요하우?"

"네, 밭에 자주 오지 않으니 퇴비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아네 물어보니 남은 퇴비가 없대서 영양가 없는 땅에 마늘을 심었지 뭐예요."

"저거 한 포 갖다 쓰시구려. 흰 포대 말고 말고 퍼런 거. 흰 건 올해 거라 풀씨가 많아요. 퍼런 건 묵은 거라 풀이 덜 난다우."


그랬다. 나는 카페에서 농사에 대해 경험 전에 글로 배웠다. 햇퇴비일수록 풀씨가 싱싱해서 해마다 새로운 풀들이 돋아나지만 묵은 퇴비일수록 풀씨도 삭아 풀이 적게 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활 속에 녹아든 이런 농사 지식을 아무 대가 없이 슬쩍 나눠주는 이것이 바로 시골 인심이다. 시골 인심이 각박해졌다는 말은 각박한 도시 사람의 눈으로 시골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어르신은 신장에 이상이 생겨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받으신다는 말씀이다. 몸이 불편하던 아드님과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픈 말을 듣게 될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퇴비 가격을 드리려 하자 역정을 내셨다. "그깟 퇴비 한 포 가지고 이럴 거면 갖고 가지 마, 내려놓아요 당장."


영 어울리지 않는 말인 줄 알면서도 어서 건강 회복하시라는 말씀을 남기고 차를 돌렸다. 차가 길목을 벗어날 때까지 어르신은 오래도록 우리 뒤를 바라보고 계셨다. 





텃밭에 머무는 내내 울지 않는 새들이 나무 가지 위를 오락가락하며 우리를 기웃거렸을 뿐 수확이 끝난 들판에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까치나 까마귀들은 다른 더 좋은 먹을거리를 찾으러 마을로 마실을 갔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자신에게 어떤 것이 이로운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행동한다. 드문드문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산짐승인가 싶어 돌아보면 낮은 바람에 바짝 마른 키위 잎과 꾸지뽕 몇 잎이 구르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남편은 오늘도 마늘 심을 자리의 마른풀들을 베어내고 조금 전 어르신께서 주신 퇴비 한 포를 뿌린 다음 고토석회와 규산을 조금씩 뿌린 후 흙을 골랐다. 나는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우리의 휴식처인 컨테이너 안을 쓸고 닦았다. 창고 안에 걸려 있던 낡아서 못 쓰게 된 붉은 고무를 입힌 면장갑과 플라스틱들을 모으고 풀 방지를 위해 텃밭 여기저기 덮어 두었던 퇴비 포대도 한 짐이나 모았다. 집에 가는 길에 분리수거 장소에 내려놓고 가면 되겠다.


창고 정리를 하다 몇 해 전 구해다 쌓아둔 커피 찌꺼기와 참나무 재를 발견했다. 마늘을 심기 전에 생각이 났어야 하는데 늦었다. 이스트도 몇 봉지나 남아 있다. 밭에 뿌릴 퇴비 준비를 못 했다고 구시렁거리며 마늘을 심었지만 사실 창고 안에는 커피 찌꺼기와 참나무 재, 이스트 외에도 각종 효소 병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왜 잊고 있었을까. 오늘 마늘 심을 자리에는 물론 이미 풀 멀칭이 끝난 지난주 심은 마늘 두둑에도 아깝지 않게 커피 찌꺼기와 참나무 재를 뿌리고 그 위에 이스트와 붕사와 한 줌 남은 천일염도 골루 뿌렸다.


남편이 골라준 땅에 내가 마늘을 심는 동안 남편은 마늘 심은 위에 덮을 풀을 베고 모았다. 칡덩굴과 고사리는 물론 합판화 잎과 키위 잎, 감나무 잎들은 물론 방금 베어낸 여러 풀들이 조금 더 그럴싸한 가을 향기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마치 아로마 향기처럼 편안하게 했다. 오래전 함께 커피를 마시고 우리 밭에도 가끔 들르셨던 어르신과의 조우가 내내 함께했음은 물론이다. 건강하신 모습이 아니어서 많이 안타깝지만 뵐 수 있다는 건 추억 한 자락을 끄집어내어 반추할 수 있다는 건강한 신호다.





농사를 짓겠다는 이들이 점점 줄어든다. 대신 산 아래 길을 따라 상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섰다. 길가이면서 상점 아닌 집들은 대개 연세 드신 분들이 나와 가을 햇살 받고 있는 푸성귀를 손보고 계시는 정도다. 


자주 들러 차를 마시던 텃밭 이웃도 상점을 연 지 몇 해가 지나자 농사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이네 상점 옆으로는 부동산 중개업소 간판이 걸렸고 개업 단장에 여념이 없다. 상점 앞에 즐비하던 고운 화초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경제성 높은 일을 찾아 하는 것은 순리에 맞다. 전원주택들이 들어서는 면적이 느는 속도를 내 상상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텃밭 동네도 현대식 도시의 모습을 닮아가며 발전하는 중이다. 변화에 더디고 변화를 즐기지 않는 나는 이렇게 변해 가는 텃밭 동네에 언제까지 얼마나 오래 적응하며 왕래할 수 있을까. 


올 텃밭 나들이를 마쳤다. 겨울을 지내고 다시 봄을 맞으면 지난주와 오늘 심은 마늘 씨앗들은 날카로운 푸른 잎들로 봄 하늘을 받치고 있으리라. 어떻게 보면 나 같은 사람에 비해서는 언 땅 아래서 숨죽이며 지내다가도 봄과 함께 바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마늘 싹이 훨씬 강하고 긍정적으로 보인다. 


시월 마지막 날 소망 하나를 품어본다, 내년 봄엔 새봄에 제대로 잘 적응하고 있는 나를 재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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