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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Nov 05. 2021

남편 한국사능력시험 2급 합격 축하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축하한다.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한 남편의 한국사능력시험 결과물이다. 딸꾹질을 감수해 가며 퇴근 후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만날 사람 다 만났고 주말이면 등산도 다녀왔고 동창들 모임도 주선하면서 주름살 자글자글한 나이에 좋은 결과를 보여주어 감사하다. 


합격을 확인하고 바로 남편과 딸들에게 인증서 사진과 함께 합격 소식을 알렸다. 최고최고, 축하축하의 메시지가 이모티콘과 함께 가족 톡 방에 떴다. 남편이 즉시 답을 보내왔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입속이 마르면 어쩌나 싶다. 


그럼에도 합격 발표 소식에 가족의 격려와 축하, 그것도 코로나로 인해 얼굴 자주 못 보는 딸들의 격한 축하가 쑥스러운지 '여기까지'라는 메시지로 더 이상의 축하를 막았다. 하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도 아니니 더 이상의 축하 또한 예의는 아님직하다. 





나는 안전하게 64점으로 3급만 합격해도 괜찮다고 응원 치고는 다소 박한 응원을 했었다. 시험 다음날 답을 맞히는 남편이 두 개 맞을 줄 알았는데 2급은 무난할 것 같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까짓 한국사능력시험이 별거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들어넘겼다. 그러면서도 64점에 3급 운운했던 아내에게 남편은 아내가 남편을 지나치게 드문드문 겸손하게 보는 건 아닌가 서운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몇 문제는 잠시 생각이 헷갈려 틀렸다고 아쉬워하는 남편을 조금 찬찬히 보게 된 것도 사실이긴 하다.


남편이 시험을 치르고 나면 나도 한국사능력시험에 도전해 볼까 싶었다. 시험 끝났다고 바로 문제집을 분리수거함에 넣어 버리는 건 책값이 아까웠고 내 나이에 사회적으로는 아무 데도 쓸데없는 시험 급수이지만 공부해서 남 주나 하는 평소의 내 지론이 나를 부추겼다. 


남편의 문제집을 들춰 보았다. 이 정도면 내가 다시 봐도 괜찮다 싶게 깔끔하게 본 편이다. 부분 부분 붉은 펜으로 밑줄을 그어둔 데가 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은 나도 눈여겨볼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 우리나라 역사 어느 시기에 관심이 있는지 어느 시기에 특히 취약한지도 알 수 있을 터다. 그것을 알게 된다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약간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반면 어느 순간에는 다툼이 될 수도 있을 거리를 내가 먼저 선점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사와 세계사 공부를 참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국사 시험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만 공부해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었다. 나는 국사 선생님의 말씀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말씀들은 주된 뼈대에 붙은 살과 같은 것들이어서 국사 노트는 교과서의 주된 내용 옆으로 잡담 같은 글들이 빼곡했다. 쉬는 시간에 한 번 더 들여다본 그 잡담 같은 살들이 바로 국사 시험 문제로 나오곤 했으니 국사 시험 점수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 학생과 학생을 둔 학부모의 관심사였던 교육 정책도 소용돌이 속에 사라지고 새로운 정책이 관심사로 떠오르곤 한다. 한때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는 모토를 내세운 정부도 있었다. 그 시기쯤이었는지 그보다 앞선 시기였는지 세계사와 국사가 교과목에서 빠지게 되었다. 동시에 세계사와 국사 시험이 대학 입학시험에서 사라진 것은 당연했다. 그 시기 대통령이 누구였는지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전인적 교육을 내세우던 학교 교육은 학교에서부터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는 말이 가져온 결과는 내 어설프고 부족한 눈에는 아슬아슬 살아가는 날품팔이 같은 삶을 조장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 아픈 일들을 목격하게도 했다. 삶은 대학 입학이 목표가 아니다. 학교 교육이야말로 삶이란 죽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과정에 대한 모색인 동시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아이들은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학교 교육이 아무리 전인적 교육을 표방한다 해도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이 있게 마련이다. 유명한 발명가들이나 예술가나 과학자, 물리학자들 중에 그런 사람이 꽤 많다. 그러나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 간다'는 말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아이들까지 하기 싫은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중에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바로 세계사와 국사 과목이 학교 교육에서 사라진 점이다. 돌아보며 반면교사 삼아야 할 내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 앞날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백성에게 글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던 오래전의 위정자들이 그랬듯 국민들이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어떤 지론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지나친 비유가 되었지만 국사와 세계사가 교과목에서 사라진 그 시점의 나는 아쉬움을 넘어 화가 나기도 했었다.





남편이 한국사능력시험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겉으로는 웃었지만 마음속에서는 큰 박수를 보냈다. 제아무리 훌륭한 자격증이 있어도 이제는 나이라는 낡은 방패에 가려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격증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남편의 마음에 아내로서 큰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눈 수술을 이후 시력이 좋아진 남편과 달리 사실 나는 작은 글씨를 읽는 데 돋보기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책 몇 장 넘기기가 어렵다. 돋보기를 사용하다 보면 눈이 금세 피곤해진다. 따라서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나야말로 출근할 필요도 없으니 열심히 공부만 한다 해도 64점으로 겨우 턱걸이 3급에라도 걸릴 수 있다면 다행이 아닐까 싶어진다. 


남편이 쓰던 문제집을 몇 장 넘겨 봤다. 예전엔 그토록 열심히 국사 공부를 했건만 국사책을 놓은 지 얼마나 됐는지 뒤돌아보게 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문제를 읽으니 머릿속이 새까맣다. 드문드문 접하기는 했지만 국사책을 놓은 지 반 백 년이 흘렀다. 도전할까 말까를 반복하는 중에 큰딸이 야시꾸리한 옷을 만지작거릴 때면 딸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옷 입고 어디 가게?"


내 이런 말에도 그 야시꾸리한 옷을 기어이 입어야 했던 딸은 내가 들려주었던 말과 같은 폼으로 내게 되돌려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말이 무서워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나도 아니지만 말이다.

"엄마, 쉬세요. 한국사능력시험 3급 따서 어디 쓰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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